뉴스

재미있는 국정감사 이야기

큰 웃음 주신 의원님, 제발 여기까지만

매년 이맘 때면 국정감사가 있습니다. 입법부인 국회가 행정부인 정부를 대상으로 감사를 벌이지요.

제가 출입하고 있는 검찰과 법원 역시 감사를 받습니다. 좋게 말하면 <꼿꼿>, 나쁘게 말하면 <뻣뻣>하신 판검사 분들이 이 때는 참 나긋나긋해 지십니다. 적어도 일년에 한 번씩은 말이죠.

뭐, 감사 내내 무섭기 그지없는 국회의원 분들도 법정에서 재판을 받을 때면 한없이 작아지고 부드러워지시긴 합니다만. 세상에서 자기가 가장 잘난 줄 알고 사는 기자들 역시 분명 어떤 경우에는 할 말 못하고 조용조용 부들부들 해질텐데.. 그 격차가 너무 크지 않도록 스스로를 돌아보며 잘 살아야겠습니다. ^^;

..........

법조기자인 저는 평소 판검사 분들을 주로 만나기 때문에 국정감사 때가 아니면 국회의원 분들을 만날 일이 별로 없습니다. 가끔씩 검찰에 소환 되시거나, 법원에 나와 재판을 받으시는 분들을 빼고는요.

국감장에서 의원분들은 크게 세 부류로 나뉩니다.

1) 시종일관 언성을 높이며 상대방을 몰아부치는 <호통형>

2) 화를 내지는 않지만, 난처한 내용을 조목조목 따져 묻는 <추궁형>

3) 날선 비판과 지적보다는 이해와 칭찬에 시간을 더 많이 할애하는 <두둔형>

1번과 2번이 합쳐지면 가장 이상적이겠습니다만 경험상.. 그런 경우는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좀 아쉽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번 국감에서는 앞서 언급한 세 부류로는 구분짓기 힘든 분이 등장하셨습니다. (이 자리에서 굳이 실명을 거론하지는 않겠습니다)

헌법재판소 국정감사 자리에서 "판결이 이게 뭐예요! 당장 원상복구 시키세요!!"라고 호통을 치신다거나 서울고검 국정감사 자리에서 "검찰이 지금 법에 금지된 <포올리바게닝>을 하고 있습니다"라고 외치시는.. 아니.. 헌재 판결을 어떻게 취소한단 말입니까. 법사위 의원님께서 플리바게닝을 모르시는 것도 그렇고요. 당연히 국감장은 웃음바다가 됐습니다.

피감기관 분들이야 대놓고 웃을 수 없으니 억지로 웃음을 참으셨지만 방청하던 방청객들과 기자들은 별로 꿀릴 게 없으니(?) 키득키득 웃었습니다. 문제는 사람들이 그렇게 웃고 있는 와중에도 계속 호통을 치셨다는 것. 본인 때문에 웃는다는 사실도 잘 모르시는 듯 했습니다.

기자석과 방청석에서 터져나온 웃음은 사실 재미있어 웃는 웃음이라기 보단 쓴웃음에 가까웠습니다. 감사를 받는 분들이 속으로 어떻게 생각했겠습니까. 상황이 저렇다면 제대로 된 감사를 기대하긴 어렵지 않을까요.

........

지난 18일 대검찰청 국정감사가 있었습니다. 그 날도 역시나 국감 시작 2시간 전에 국감장에 들어갔습니다. 속기사 마냥 하루 종일 타이핑을 해야하는 기자들은 보통 두어 시간 전에 미리 가서 좋은 자리를 찜해 두거든요.

그런데 국감장에는 기자석이 14석 밖에 없었습니다. 출입하는 언론사가 30곳도 넘는데다가, 보통 회사당 기자 2명씩 들어와 서로 번갈아 가면서 타이핑을 하기 때문에 14석은 '말이 안되는' 자리였습니다.  자리를 늘려 줄 것을 요구했지만, 결국 한 석도 늘어나지 않았습니다.(물론 국감장 내 자리는 아주 많이 남았고요)

결국 국감장에 들어가지 못한 기자들은, 따로 마련된 기자실에서 국회방송 생중계를 보며 타이핑을 했습니다. 나중에 이유를 알아보니 법사위에서 기자석을 줄여달라고 요청을 했다더군요."국감 도중 기자들이 자꾸 웃는 바람에 분위기가 어수선해진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오전 10시부터 자정 무렵까지 내내 타이핑 하기 바쁜 기자들이 웃는 이유는.. 뭐. 설명 드렸고요. 문제의 의원님은 다른 의원님이 질문하시는 도중에 주무시다가 그 모습이 생중계 카메라에 잡혀 기자실에 또 다른 웃음을 주시기도 하셨습니다. 또 해당 의원님의 질문 순서가 돌아오면 어김없이 타닥타닥 시끄럽던 기자실이 순간 조용해 지더군요. 모두 타이핑을 멈추고 물을 마시거나, 다른 일을 하기 때문이지요.

.........

물론 해당 의원님 여러 면에서 훌륭하신 분입니다. 하지만 적어도 법원과 검찰을 감사하시는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으로는 제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신 것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이런 종류의 웃음은, 그리고 법사위의 그런 종류의 요구는 이번 한 번으로 그쳤으면 좋겠다는 게 개인적인 바람입니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많이 본 뉴스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댓글

    방금 달린 댓글
    댓글 작성
    첫 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0 / 300

    댓글 ∙ 답글 수 0
    • 최신순
    • 공감순
    • 비공감순
    매너봇 이미지
    매너봇이 작동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