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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 감독, 임덕윤 씨의 2막 인생

마음으로 찍는 영화...조금 불편할 뿐인

임덕윤 씨가 시각장애인 감독으로서는 첫 작품을 내놨다. 제목은 '조금 불편한, 그다지 불행하지 않는'이다.

임 씨의 평소 생활을 담백하게 그려냈지만 다른 영화와는 확연히 다른 부분이 있다. 바로 시각장애인이 느끼는 대로 체험하는 영화라는 것.

평범한 길거리가 펼쳐지고, 임씨가 등장하자 곧바로 조명이 꺼지듯 세상은 암흑천지가 된다. 임씨가 만지는 물건만 어렴풋이 흑백으로 나타난다. 임씨에게 말을 걸면 사람의 형상도 나타난다. 누군가 임씨를 돕기 위해 다가와 팔을 잡았을 때, 임씨는 독사가 자신의 팔을 무는 판타지 영상으로 표현했다. 시각장애인에게 다가설 땐 먼저 말을 건네고 팔을 잡아달라는 메시지다.

그의 인생 2막을 활짝 연 '조금 불편한, 그다지 불행하지 않는'은 올해 부천국제 판타스틱 영화제와 서울국제뉴미디어 페스티벌, 장애인인권영화제 등 여러 영화제에 초청받아 호평을 받았다. 이하는 그와의 인터뷰 요약.

● 영화와의 인연은?

대학에서 연극을 전공하겠다는 목표를 정한 1987년 고3시절, 연극영화학과 입시학원에 다니다 영화 ‘그 마지막 겨울(1988년작)’ 촬영 현장에 현장실습을 나갔다가 영화 단역을 맡은 게 영화와 인연을 맺은 계기였다.

당시 주인공 최민수 씨의 친구 역할을 맡았고, 그해 입시에 실패한 뒤 바로 영화계로 진출했다. 이동훈 감독과 인연이 닿아 주성 영화사 연출부로 활동했다. '빵아 빵아 빵아', '동거일기', '몸값' 등 단편을 찍기도 했다.  96년도엔 삼호필름에서 1년 8개월 정도 일하다 뒤늦게 공주영상대학 정보영상편집과에 진학했다.

● 시력을 잃은 사연은?

임 씨가 시력을 잃기 시작한 것은 2003년. 고향인 전북 군산에서 시나리오 작업을 하던 중 망막에 구멍이 나면서 출혈까지 생겨 수차례 수술을 했지만 결국 오른쪽 눈의 시력을 잃고 말았다. 만성신부전증까지 겹치면서 2007년 초 왼쪽 눈마저도 시력을 잃었다.

당시 몸에서 오는 신호를 무시한 것을 아직도 후회하고 있다. 술은 많이 안 마셨지만 담배를 매일 두 갑씩 피웠다. 당뇨 진단을 받은 뒤 운동요법과 식이요법을 하라는 의사 처방을 받았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 시각장애인 감독에 도전한 계기와 영화 제작 방법은?

시각장애인 생활이 익숙해지면서 눈으로 보는 게 아니라 만지면 보이는 현상을 체험하기 시작했다. 상상력의 발로겠지만 실제 보는 것처럼 화면으로 펼쳐진다. 보이지는 않지만 상상 속의 화면이 이처럼 뚜렷이 존재한다면 나도 영화를 찍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촬영 현장에서는 사람처럼 관절이 움직이는 특수인형을 통해 배우들의 자세와 동선을 지시하며 영화를 찍었다.

관절이 움직이는 인형으로 동선이나 화면 구성을 한다. 카메라 앵글은 물론이고 소품의 재질과 위치까지 스태프들에게 세세하게 설명한다. 머릿속에 있는 이미지를 고스란히 전달하는 것은 어려워 스태프와의 ‘신뢰’가 중요하다. 함께 단편을 찍었던 친구들의 전폭적인 지지 덕분에 영화 제작이 가능했다.

제작비는 6천만 원. 6백만 원 정도면 충분히 만들 수 있는 영화지만 거의 대부분이 교통비와 숙박비, 식비 등이다. 부모님 도움이 컸다. 감사한다.

전문 3D 업체에서도 전폭적으로 지원해 후반작업을 할 수 있었다.

"내가 만든 영화, 볼 수는 없어도 느낄 수 있다. 사랑하는 사람은 멀리서도 느낄 수 있지 않은가. 느끼면 보이는 것과 같다. 특히 영화를 상영할 때 객석에서 의도한 부분에서 ‘헉’ 하고 반응할 때 기분이 너무 좋다."

● 임덕윤 씨 인생에서 영화란?

"영화란 제 삶 그 자체에요. 나를 살아있게 만드는 유일한 존재?"

장애를 입고 나서 수도 없이 자살 생각을 했지만 앞을 못 보는 상황에서 그것마저 맘대로 실행에 옮길 수 없었다는 임 씨. 포기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던 영화에서 다시 희망을 찾았다.

"참 아이러니에요. 그러니까 장애를 통해서 세상을 등졌다고 하면 또 다른 장애를 통해서 다시 세상에 나오게 되는 계기가 된다는 게. 세상을 만든 누군가가 있다면 저를 20년 가까이 영화를 하게 해놓고서 이렇게 만드신 목적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는 앞으로도 시각장애인 대하는 방법, 청각장애인 대하는 법, 지체장애인 대하는 방법을 쉽게 전달하며 공감을 살 수 있는 영화를 계속 만들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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