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에는 65주년 '광복절'과 '경술국치' 100년이 몰려있었습니다.
덕분에 '일제 잔재를 찾아서'라는 의미있는 취재를 할 수 있었는데요, 어려서부터 '이것도 일제의 잔재다, 저것도 일제의 잔재다' 말은 참 많이 들었었죠. 그런데 방방곡곡 동네이름, 하천이름, 산이름까지.. 익숙했던 '지명'도 일제가 만들어 놓은게 참 많더군요.
'아니 이 곳도 일제가??' 하면서 놀란 지명도 많았는데요. 보도에선 다 다루지 못한 몇 가지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일본이 자주 하는 망언이 "우리가 조선을 근대화시켰다"죠. 그만큼 우리나라의 '근대화' 시기는 '일제 강점기'와 딱 겹치는데요. 그러다보니 지금의 행정구역 제도도 일제가 만들어 놓은 부분이 참 많습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 고유의 지명위에 일제가 만든 지명이 덧씌워진거죠. 일제가 지명을 새로 만드는 방법엔 크게 3가지 유형이 있더군요. 하나씩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1. 고을과 고을을 합쳤다!
전통의 거리로 유명한 인사동. '인사동'이란 명칭도 일제로부터 유래됐다고 하면 많은 분들이 놀라실겁니다. 일제가 통치를 시작하고 가장 먼저 한 것이 행정구역의 개편이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일제는 작은 고을들을 하나로 합쳐 지금의 '동'을 만들었는데요. 지금의 인사동 부근엔 연산군때까지만 해도 큰 절이 있었습니다. 이런 이유로 우리 선조들은 이 마을을 '절골' 또는 '대사동(大寺洞)'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또, 조선시대엔 지금은 없어진 '방(坊)'이란 행정구역이 있었는데요 ('동(洞)네방(坊)네'도 여기서 유래했다죠) '절골'은 여러 '방坊' 중에도 '관인방(寬仁坊)'에 속해있었습니다. 그런데 일제가 관인방(寬仁坊) 내의 여러 고을을 합친거죠. 그러면서 '관인방'의 '인(仁)'과 '대사동'의 '사(寺)'를 합쳐 지금의 '인사동(仁寺洞)을 탄생시킨겁니다.
서울의 대부분 동들은 이런 식으로 이름이 붙혀졌는데요. '옥인동'도 그런 예입니다.
혹시 옥인동에 가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옥인동(玉仁洞)은 세종대왕이 태어난 생가가 있던 곳 입니다. 지금도 그 곳에 가면 '세종대왕 태어난 곳'이란 비석이 있는데요. 우리 선조들은 이 지역을 원래는 '옥골(玉골)'이라고 불렀었습니다.
근처에는 인왕산 아래 있다고 해서 '인왕동'이 있었는데요. 일제가 이 두마을을 통폐합 하는 과정에서 '옥골'의 '옥(玉)'자와 인왕동(仁王洞)의 '인(仁)'자가 합쳐져 '옥인동(玉仁洞)'이 된 것이죠.
우리 글을 창제한 세종대왕이 태어난 곳마저 우리 고유의 이름을 잃어버린 채, 일제가 붙힌 지명으로 불린다는 사실이 씁쓸했습니다.
사실 서울시내 '동' 이름 대부분이 이런식으로 만들어 진 것인데요,
경운동(慶雲洞) / 경행방(慶幸坊)+운현궁(雲峴宮)
관철동(貫鐵洞) / 관자동(貫子洞)+철물교(鐵物橋)
관훈동(寬勳洞) / 관인방(寬仁坊)+훈동(勳洞)
궁정동(宮井洞) / 육상궁(毓祥宮)+온정동(溫井洞)
청운동(淸雲洞) / 청풍계(淸風溪)+백운동(白雲洞)
대충만 따져도 이정도입니다.
2. 일제 입맛 따라.. 제멋대로 붙힌 이름들!
관수동(觀水洞)은 조선시대 청계천의 수위를 관측하는 시설이 있던 곳입니다. 원래는 '너더리'라고 불리웠는데요, '넓은 들'이란 뜻이죠. 그런데 일제는 대대로 내려오던 고유 명칭은 완전히 무시한 채 자신들이 기억하기 편한대로 '청계천 관측 시설이 있는 곳'이란 뜻으로 '관수동'이라 이름 붙힌 거죠.
이와 비슷한 경우로 이름이 붙은 곳도 상당히 많은데요. 지금의 '태평로'는 외국 사신이 묵던 '태평통'이 있던 길이라고해서 일제가 붙힌 이름이고요. '북창동(北倉洞)은 서울 북쪽의 쌀 보관 창고가 있는 곳이라해서 '북미창정(北米倉町)'이라 부르던 일제 지명이 그대로 굳어진 것입니다.
몇가지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회나뭇골(槐洞.檜木洞) → 공평동(公平洞) / 법을 집행하는 의금부가 있다고 해서
잣골(柏洞) → 동숭동(東崇洞) / 崇敎坊의 동쪽에 있다고 해서
수문골(農圃洞) → 권농동(勸農洞) / 이 곳의 채소를 권장하는 농포서(農圃暑)가 있다고 해서
탑골(塔洞) → 낙원동(樂園洞) / 서울의 가장 중심가인 탑골이 마치 '낙원'같다고 해서
상삿골(相思洞) → 원남동(苑南洞) / 비원(秘苑) 남쪽에 있다고 해서
3. 일제와 군국주의를 찬양하기 위한 이름
가장 악랄하고 못된 방법이죠. 아무런 근거없이 일제, 천황, 군국주의등을 찬양하는 이름을 붙히는 겁니다. 다행이 이런 경우는 많이 제자리를 찾았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전국 곳곳의 산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천황봉(天皇峰)'입니다. 원래는 '천왕봉(天王峰)'이었던 것을 일본의 '천황'을 숭배하는 의미에서 모조리 '천황봉'으로 바꾼 것이죠. 많이 되돌린다고 했지만 아직도 속리산 등 여러곳에는 천황봉이 남아있습니다.
요즘은 많이 복개가 됐지만, 그래도 아직도 동네 곳곳에서 실개천을 볼 수 있죠. 이런 실개천엔 유난히 '욱천'이란 이름이 많은데요. 이 '욱'자가 일제가 가장 좋아했다는 '旭'자입니다. '욱일승천기'할때 바로 그 '욱'이죠. 이 욱자를 곳곳의 실개천에 마구잡이로 가져다 붙힌건데요. 얼마 전 복개공사가 끝난 원효대교 인근 '욱천고가도로'가 그 대표적인 예라고 볼 수 있습니다.
한동안 한참 논란이돼 이제는 제자리를 찾은 '인왕산(仁王山)'의 '왕'자도 일제가 '旺'으로 고쳐썼었죠. 王자 앞에 日자가 붙은 글자로 말입니다.
그런가 하면 아예 대놓고 자신들의 군함이름을 갖다 붙힌 곳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인천의 '송도(松島)'인데요. 송도란 사실 러일전쟁 승전의 주역인 일본 송도호, 즉 마츠시마호의 이름을 그대로 갖다 붙힌겁니다.
당시 인천은 일본 해군의 전진기지로 쓰였는데요. 이런 이유로 일본은 승리를 기원하며 인천 곳곳의 지명을 모두 일본의 장군이나 제독, 또는 '송도'와 같이 군함의 이름으로 대체한 것입니다.
다행히 다른 모든 곳은 다 고쳐졌지만, 송도만은 아직도 그대로 불리고 있기 때문에 많은 분들이 정정을 요구하고있는데요. 송도가 인천의 대표도시로 자라나고있는 만큼 철저한 고증을 거쳐 바로잡아야 할 것입니다.
지명이야기는 이 정도입니다.
사실 이번 취재를 하면서 많은 전문가들을 만나봤는데요. 이제와서 모든 지명을 다시 예전으로 돌려놓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 모두의 일치된 목소리였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일제가 지은 이름이라해도, 그 뿌리는 원래 우리 고유 명칭에 있는 것도 많고요.
다만 몇 백년 전부터 우리 선조들이 자연스럽게 불러오던 '무슨골', '무슨골' 식의 친근한 명칭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도 모르게 사라져가는 현실이 안타까웠습니다.
그래서 일제가 어떤식으로 지명을 만들었고 현재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를 짚어봐야만 할 것 같았습니다. 그래야만 원래 우리의 이름은 뭐였는지를 알 수 있을거고, 그래야만 다시 살리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더이상 잊혀지진 않게 할 수 있을테니까요.
<자료: 배우리의 땅이름 기행>
동영상 기사
동영상 기사
동영상 기사
동영상 기사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