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부정 대대적 철퇴?… 열혈 기자의 일장춘몽
수시에 합격하고도 다른 대학 정시에도 등록하는 이른바 불법 이중등록. 앞서 2차례 취재파일을 통해 취재기를 써 올린 바 있습니다. 이중등록 학생들에게 ‘대입무법자’라는 애칭(?)도 붙여줬습니다. 하지만 대입무법자에 관대한 교육당국의 관행은 올해도 개선되지 않았습니다. 처음 사회적 경종을 울린 기자로서 씁쓸한 마음이 듭니다. 덕분에 또 한 번 특종 기회를 잡을 수 있었던 건 사실이지만 말이죠.
지난 5월 취재당시, 교육당국의 최근 6년간 관련 자료를 보고 있자니 한 해 평균 천 2백여 명의 수시-정시 불법 이중등록자가 발생한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올해 역시 그 정도가 되겠거니 짐작을 할 수 있었죠. 그래서 한국대학교육협의회와 교육과학기술부의 위반자 처리 실태를 꾸준히 확인했습니다.
'결자해지'의 마음이었을까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지난 5월 첫 보도 이후 교육당국이 실제로 올해 이중등록자를 전원 입학취소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미리 했습니다. 사상 초유의 입학부정과 대규모 입학취소 사태라니요. 하지만, 모든 게 기우였습니다. 사회적 의제 설정을 노렸던 한 기자의 ‘일장춘몽’일 뿐이었습니다.
예상대로 올해 이 같은 불법을 저지르고도 버젓이 입학한 학생은 천2백 85명에 달했습니다. 그러나 입학취소를 해야 할 한국대학교육협의회는 면죄부를 남발했단 사실도 취재됐습니다. 모든 게 두 달 전과 같았습니다. 입시 원칙의 근간을 뒤흔드는 심각한 불법행위라며 경고음을 마구 발산한 보람도 없이 올해도 관행이 되풀이됐으며, 실제 입학이 취소되는 학생은 극소수에 불과하다는 똑같은 고발기사를 써야 했습니다.
관행은 가깝고 원칙은 멀다
취재도중 저는 A4용지 2장짜리 문건을 입수했습니다. 지난번 진보신당 조승수 의원실을 거쳐 자료를 빼낸 것과 달리 이번엔 직접 문건을 손에 쥘 수 있었죠. <대입지원 위반자 심사위원회 결과 보고서>가 제목입니다. 대교협이 작성한 이 문건에 따르면, 수시에 합격하고도 다른 대학 정시에 합격한 학생이 천2백85명. 4년제 대학 이중합격자는 648명, 전문대가 637명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가운데 입학이 취소된 학생은 고작 58명에 불과했습니다.
이중등록은 고등교육법상 원천 금지된 불법입니다. 고등교육법 시행령 42조는 수시모집에 합격한 학생은 정시에 지원 자체를 금지하고 있습니다. 대교협은 해마다 심사위원회를 열고
입학취소를 해야 하는데, 95%에 해당하는 천2백27명에게 면죄부를 준 것입니다.
면죄부를 남발한 대교협은 이런 결정을 하고도 어쩔 수 없었다는 입장이었습니다. 이 심사위원회는 대교협 사무총장을 위원장으로 입학전형실장, 전문대교협 관계자 등 9명 가운데 6명이 대학 측 관계자들로 구성됩니다. 때문에 대학의 이해관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비판을 받아왔습니다. 이들은 ‘학생 입장에서 교육적인 고려를 하다 보니 입학 취소를 최소화할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했습니다. 학생이 학생 자신이 아니라 가족 또는 선생님이 이중등록을 했다는 '소명서'를 내기만 하면 무조건 구제를 해 주는 식입니다.
소송 당하느니 욕먹고 말자?
이런 구제관행은 원칙을 무너뜨리는 동시에, 수많은 피해자를 만들어 냅니다. 수시에 합격한 학생이 다른 대학 정시에 합격해서 가버리면, 수시에 합격했어야 할 다른 학생 누군가가 피해를 보기 때문입니다. 두 달 전 저는 재작년과 지난해 이 같은 불법 이중등록 학생이 2천 7백여 명에 달한다고 보도한 바 있습니다. 당시 앞서 말씀드린 문제제기를 했고 비판 여론이 일었습니다. 당시 대교협은 입학취소 기준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는데요. 실제론 ‘말 따로 행동 따로’였습니다.
부정인 걸 알고도, 부정을 일소할 의지를 가졌으면서도 대교협은 왜 이번에도 불법을 묵인할 수밖에 없었을까요. 취재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입학 취소에 반발한 학생들이 집단적으로 불복 소송을 낼까 우려해 불법을 묵인한 사실을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지난 5월 보도이후 교육과학기술부는 곤욕을 치렀습니다. 국회 상임위 교육위원회 소속 의원들의 질타가 빗발쳤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당초 올해 위반 학생은 되도록 입학을 취소시킨다는 입장을 정했습니다. 하지만 실행으로 옮기지 못했습니다.
대교협이 법률 자문을 받은 결과, 이중등록을 원천적으로 제재하지 않은 교육당국이 구제 또한 일상적으로 해 준 탓에 행정적인 신뢰에 반한다는 의견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학생들이 소송을 낼 경우에 교육당국이 이기기 힘들다는 것이죠. 관행은 가깝고 책임은 멀리 있죠. 결국 관행대로 소명서를 낸 학생은 전원 구제해 줬습니다.
이해관계에 얽매인 선진화
추가모집이 없는 수시 특성상 불법 이중등록 학생 숫자만큼 피해를 보는 학생이 생기는 거라고 볼 수 있습니다. 대교협과 교과부는 이제는 이런 피해를 막을 때가 됐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지난달 뒤늦은 대책이 내놨습니다. 온라인 원서접수 대행업체와 대학으로부터 수시 등록자를 실시간으로 확인한 뒤, 이 정보를 다시 대학에 통보해 이중 지원 자체를 막겠다는 계획을 내놨습니다. 내년 대학입시부턴 수시 역시 5일 간 추가모집 기간이 주어지기 때문에 피해는 좀 더 줄어들 걸로 보입니다.
하지만, 이런 결정은 언제든 마음만 먹었다면 할 수 있는 조치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실행이 옮기지 않았습니다. 대학과 대학들의 협의체 입장에선 직접 손해 보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죠.
대교협은 오랜 연구 끝에 수시제도 역시 '선진화'했습니다. 골자는 '수시 추가모집 도입'이죠. 그러나 함께 검토돼 온 수시지원 가능회수를 5회로 제한하는 방안은 끝내 제도화되지 못했습니다. 원서비 부담은 학부모의 걱정거리일 뿐이고, 회수 제한이 없는 덕분에 원서비 수입이 쌓이는 건 대학들의 이익이기 때문이죠. 대학 불법이중등록 관행 역시 대학의 이해관계라는 잣대로 봤을 땐 그리 심각한 일이 아니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지난 6년간 교육당국은 '학생들 입장에서 생각해야 한다'며 불법을 저지른 학생들의 온갖 변명을 다 들어줬습니다. 이제 성인이 될 19살 학생이 ‘저는 몰랐고 부모님이나 선생님이 저 몰래 이중지원을 꾸몄어요’라며 소명서만 내면 그대로 인정해 줬습니다. 소명서를 안 낸 학생만 취소를 하곤, 책임을 다했다고 착각해왔습니다. 그 결과 지난 6년간 만여 명의 이중등록 학생이 구제돼 버젓이 입학할 수 있었습니다.
대교협이 강구한 대책 역시 저는 기사에 실었습니다. 이번 대책으로 이제는 이런 불법이 인정되는 일이 없길 바라는 마음이었습니다. 하지만 기사는 이런 말로 마무리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중 등록자에게 면죄부 주는데만 급급했던 대교협이 불법을 막을 의지와 능력은 있는 건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비판은 미래에도 계속돼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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