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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으로도 어둠으로도 말한다"

<권영호의 카메라>

뤄양 (洛陽)은 아주 오래된 도시다. 이 도시 곳곳에서 시간이 켜켜이 쌓여 내는 냄새가 물씬 풍기는 듯 하다. (p9)

사진을 찍는다고 주장하면서 사람을 찍지 못하는 것은 비극이다.

여행만 가면 그 고장의 소재들을 빠짐없이 카메라에 담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수백장의 사진을 안고 돌아오지만 마음에 드는 한 장을 건지지 못하는 경우다.

이를테면 상하이에 가서 푸동과 와이탄과 신천지의 볼거리들을 다 촬영했는데 정작 사람 얼굴은 온데간데 없다는 사실을 서울에 돌아와서야 깨닫는 참담함이다.

권영호는 애초에 사람을 찍는 사진작가이다. 그의 사진에는 사람 냄새가 가득하다.

얼굴은 커녕 발 뒤꿈치도 보이지 않는 작품에서도 사람의 향기는 여전하다.

곧 주저앉을 것 같은 삼륜 자전거의 바퀴만 보고도 낡은 도시의 일상을 살아가는 얼굴들이 떠오른다.

피사체는 거리를 지나가는 자전거지만 그 피사체를 향해 셔터를 누르는 순간 작가의 멈춘 호흡에는 거리를 분주히 또는 여유롭게 오가는 사람들이 살아 있기 때문이리라.

 

 

도대체 사진을 어떻게 찍어야 잘 찍었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냐는 내 질문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내가 보고 마음에 남는 사진이면 잘 찍은겁니다.

실망스러웠다.

아마츄어 중에도 초보자급의 사진 동호인에게 무슨 말을 해줄 수 있겠나 싶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내 나름 맘에 든다는 사진들을 보여주고 평을 구했다.

사진들이 교과서적인 구도에 맞추려고 애쓴 흔적은 보이는데 외롭고 뭔가에 갖혀 있는 것 같다면서 던진 한마디였다.

그는 내게 여행의 자유를 말했다.

어디를 가든 화보사진 찍듯 셔터를 눌러대야 하는 편집증에 대한 역설적인 충고로 들렸다.

여행자의 시간은 다가오는 순간을 그냥 그대로 즐기면 되는 시간이다. (p23)

뭘 꼭 촬영해야 한다는 부담을 털고 사람들이 숨쉬는 거리를 걷다 보면 뷰파인더가 아닌 가슴 속에 결코 지워지지 않는 한 장면이 떠오른다는 뜻이다.

그런 자유가 만들어 주는 프레임은 이런 식이다.

중국다운 색깔을 칠한 트럭, 녹슨 범퍼와 찌그러진 번호판, 그리고 바닥에 뚝뚝 떨어지는 냉각수.

뤄양의 거리를 숨쉬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을 그런 소재를 통해 담아내는 것이다.

 

 

나를 위해 먹을 것을 만들어 주는 숙소의 주방 (p59)

고도 (古都)에 갔다고 해서 고색창연한 건물의 정면만 찍고 다닐 일이 아니다. 이면에 가려 있는 구석구석을 찾아가는 자세가 중요하다.

나는 사진을 통해 어떤 순간을 기록하기 보다 사진에 반영된 앞뒤의 시간을 압축해 놓고 싶다. (p147)

고풍스런 건물의 정면은 과거의 한 순간이다.

그 건물의 뒷자락 돼지기름 냄새가 물씬나는 허름한 주방은 현재의 한 순간이다.

그리고 주방에서 나를 위해 밥을 해주는 아줌마와 아저씨, 화로와 밥 그릇들은 순간을 넘어 오래도록 내게 고마움으로 남을 것이다.

사진 한 컷에 시간을 압축할 뿐 아니라 나를 위하는 사람들에 대한 애정까지도 압축해 놓는 재주다.

 

 

우리에 갖혀 있는 돼지는 처연하다.

녹슨 철근과 지저분한 돼지의 몸뚱아리는 황허와 함께 흘러온 도시의 영욕에 눌려사는 삶들을 대변한다.

하지만 혼자 삐죽나와 파리를 쫓듯 흔들거리는 돼지꼬리는 웃음을 자아낸다.

그게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이다.

가난, 피로, 속박감.

이런 것들에 치어 살다가도 경칩날 개구리가 튀어 나오듯 이따금 마음 한 구석을 툭 건드리는 유쾌함에 잠시 고단을 잊는 것이다.

 

 

정지의 순간이 겹겹이 쌓이다 어느 순간 반짝, 불이 켜진다. 상상은 끝나고 내 손에는 카메라가 들려 있다.셔터를 누른다.  머릿 속이 환하게 밝아온다. (p46)

어둠 속. 먼지 쌓인 전구의 한 가운데서 빛이 터져 나오는 순간 땟국이 흐르는 벽이 모습을 드러낸다.

마치 그를 만나기 위해 수천년을 기다렸다는 듯이. 이 낡은 도시가 그에게 찰나를 선물한다.

그 찰나의 희열을 권영호는 느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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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인용 출처: <권영호의 카메라> 2010 / 권영호 / 앨리스

중앙대 사진학과를 졸업한 권영호는 사람에 대한 독특한 시선으로 주목받는 사진작가이다.

SKT의 TTL 사진으로 광고 사진의 새로운 트랜드를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았고 엽기적인 그녀, 미녀는 괴로워 등의 영화 포스터와 이효리, 원빈, 권상우 사진집 등으로 이름을 알리고 있다.

중국의 뤄양, 카이펑, 정저우를 여행하고 최근 첫 사진 에세이집 <권양호의 카메라>를 출간했다.

작품의 무게와는 대조적으로 유명 작가로서의 권위라고는 한치도 찾을 수 없는 편안함과 소탈함, 인간미를 가진 40대 남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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