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시사고발 프로그램 이야기를 해보면...

얼마 전 저희 집으로 책 몇 권이 배송됐습니다. 

한국기자협회에서 최근 발간한 '김 기자, 어떻게 됐어?' 라는 책입니다. 제가 이런 저런 인연으로 이 책에 글을 하나 썼거든요. 주된 내용은 지난 2009년 제가 SBS<뉴스추적>팀에서 일할 때 이야기입니다.

1시간 짜리 시사고발 프로그램에서 근무했던 시간이 소중했기도 하고, 당시 고민들도 좀 소개를 할까해서 글을 올립니다.

이하는 전문입니다.

                              * * * * * * * * * * * * * * * * *

정치부에서 국방부 등 외교안보부처를 출입했던 나는 지난 2008년 2월 SBS시사보도 프로그램 <뉴스추적>팀으로 발령받았다.

매일 1분 반짜리 짧은 리포트에 매달려있던 내게 1시간짜리 시사보도 프로그램은 큰 도전이자 부담이었다. 1시간 방송, 정확한 방송시간은 52분. 앞뒤 광고와 프로그램 소개 영상 등을 제외하면 48분 정도가 취재 방송시간이다. 60분짜리 테이프를 최소 50개, 최대 100개 정도 인터뷰하고 취재해야 하는 분량이다. 

이런 긴 방송분량 때문에 시사보도 프로그램을 담당하는 기자나 PD들은 늘 방송 아이템을 발굴하는데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는다.

시청자가 생각하기엔 언뜻 방송할 수 있는 이슈나 문제점들도 제작진 입장에서는 단순히 몇 명의 말과 몇 곳의 현장만으로 이뤄진 사안이라면 선뜻 취재에 나서기가 쉽지 않다.

취재를 하다가 방송분량이 부족해지면 점점 무리한 취재와 의미 없는 인터뷰, 심지어 몰아가기 식 구성으로 방송 전체를 망치기도 한다. 이런 부담 때문에 점차 시사보도 프로그램들이 연성화(軟性化)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일부 제작진들이 아이템 선정 단계부터 취재원 대부분이 드러난 쉬운 이슈들만 취재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과도한 성형 중독'이나 '부동산 투기 열풍' 등의 주제는 시청자들도 쉽게 등장인물을 예상해볼 수 있고, 방송도 그들을 찾아가서 만나보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하지만 진정한 탐사보도, 시사고발 프로그램이라면 사건 이면에 숨겨진 진정한 핵심 인물들이나 각종 비밀 자료를 발굴하고 이들을 '뉴스(news)'로 전달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런 과정은 취재진들에겐 상상 이상의 고통을 안겨주기 일쑤다.

지난 2008년 5월 7일 방송됐던 <뉴스추적-중국발 사이버테러 2,000만 한국인을 노린다> 편이 그런 경우였다.

=> 이하는 당시 8시 뉴스



인터넷 쇼핑몰 '옥션'에서 한국인 1,800여만 명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사건이 터진 직후였다.

취재결과 이미 경찰과 국가정보원은 용의자를 중국인 해커로 지목한 상태였다. 상당수 팀원들은 아이템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우선 중국인 해커를 만날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다. 눈에 보이는 현장이 없다는 것도 문제였다. 방송영상 대부분이 컴퓨터 화면으로 채워질 것이라는 우려가 적지 않았다.

그래도 취재를 강행했다. 무작정 중국으로 떠났다. 손에는 어렵게 입수한 전직 중국 해커의 전화번호뿐이었다.

결론적으로 그 해커를 만나는데 성공했고, 그를 통해 한국인의 개인정보가 중국 인터넷에서 대량 유통되고 있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D외고의 총동문회 명단 등 눈으로 확인한 데이터베이스만 여러 개였다. 

옥션을 해킹한 중국인 해커가 산둥성 공안(경찰)에 체포됐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중국 취재 사흘째가 되던 날이었다. 하지만 그 전까지는 오늘 당장 누구를 만날지, 또 내일은 어디를 취재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상황이 계속됐다. 방송은 무사히 이뤄졌지만 취재기간 내내 악몽에 시달렸고, 밤잠을 설쳤다.

** 방송 전체 링크 클릭

북한주민 소송사건을 접한 것은 이렇게 시사보도 프로그램에서 고생한 지 1년쯤 되는 때였다.

2009년 2월 말 북한 주민 4명은 6·25 전쟁 때 월남했던 아버지 윤모 씨의 유산을 나눠달라며 남한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윤씨의 남한 가족들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북한 주민들이 남한 내의 재산권을 주장하며 남한 법원에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방송 여부를 놓고 팀내 회의에선 격론이 벌어졌다. '소송을 제기한 북한 주민들을 만날 수 있는가?' '남한 내 가족들을 찾을 수 있을 것인가?' '현재 소송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섣불리 방송해도 되나?' '촬영할 현장이라는 것이 있기는 있나?' '이 사건의 의미를 어떻게 봐야 하나' '북한 문제는 시청률이 높지 않다'는 주장까지 터져 나왔다. 

확실하지 않을 때는 일단 사람을 만나봐야 한다. 당장 북한 주민들의 소송을 위임받은 남한 변호사를 찾아갔다.

첫 만남은 카메라 없이 이뤄졌다. 시사프로그램을 처음 시작할 당시만 해도 촬영 분량을 확보하기 위해 무조건 카메라를 들이댔지만, 그런 실수를 할 시기는 지났다.  인터뷰는 1시간 반 정도 이뤄졌다.

윤씨의 이야기는 대단했다.



북한에서 30대 젊은 의사였던 윤 모 씨는 6·25전쟁이 터지자 2남 4녀 가운데 장녀 하나만 데리고 급히 남한으로 탈출했다. 이후 10년 간 윤 씨는 남은 북한의 가족들을 데려오기 위해 엄청나게 애를 썼다.

하지만 불행히도 윤 씨의 노력은 북한에서 번번이 발각됐고, 북한 가족들은 더욱 곤경에 처했다. 윤 씨는 1959년 남한에서 새 장가를 들었다. 북한의 가족들은 마음에 묻었다.

그리고 서울 영등포구에서 유명한 내과 의사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다. 재산은 급격히 불러났다. 가난한 환자들을 위한 무료 진료와 지역 의사회를 위한 각종 기부 활동 등으로 덕망도 쌓았다. 함께 월남한 딸은 미국으로 유학까지 보냈다. 남한에서 얻은 아들딸들도 의대 교수와 사업가 등으로 훌륭히 길러냈다.

하지만 그 사이 북한 가족들의 어려움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월남자 가족이라는 이유로 윤 씨의 아내와 자식들은 북한 각지로 뿔뿔이 흩어졌다. 윤 씨는 60대 중반이던 1980년 건강이 갑자기 악화됐고, 오랜 기간 병원 신세를 지다 1987년 세상을 떠났다.

윤 씨는 병상에서 북한 가족들에게 재산을 남겨주겠다는 뜻을 여러 차례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윤 씨의 말을 실천한 것은 함께 월남했던 장녀였다. 그녀는 이후 20년 간 북한 가족을 찾았다. 노력은 헛되지 않았다.

2008년 북한 가족과 연락이 닿았다. 북한 어머니와 바로 아래 남동생은 병으로 숨진 뒤였다. 남은 1남3녀의 동생들을 위해서라도 뭔가를 해야 했다. 그녀는 북한 가족들을 무리하게 탈북시키기보다는 법률적으로 아버지의 남한 재산을 북한 동생들에게 남겨주기로 했다.

이렇게 소송이 시작됐다.

윤씨의 '남한' 가족들은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남한 변호사를 만나고 돌아와서 하루 종일 회의를 했다.

취재 포인트는 다음과 같았다. 

1) 우선 윤 씨가 남한에 남긴 재산 상황 2) 북한 가족들이 남한 변호사에게 소송을 위임한 과정 3) 북한 가족들이 과연 남한 법원에 소송당사자가 될 수 있는지 여부 3) 북한 가족들이 승소할 경우 남한 내 재산권을 행사할 수 있을까? 4) 또 헌법상 북한 주민도 우리 국민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가? 5) 반대로 남한 국민들이 북한 내 재산권을 주장할 수 있는지 여부 6) 그렇다면 남한 국민은 어떻게 북한 내 재산권을 주장할 수 있을까? 7) 마지막으로 통일 독일이나 대만·중국의 사례는 어떠할까?

윤 씨 재산은 예상보다 훨씬 많았다. 영등포 일대에 몇 채의 건물이 있었고, 수도권의 토지까지 따지면 100억 원 가량 되는 듯했다. 

다음으론 어떻게 남한 변호사가 또는 윤씨의 장녀가 북한 가족들을 접촉할 수 있었냐는 것이었다. 남한 변호사는 북한 가족들의 신변 안전을 위해 그 부분을 절대 공개할 수 없다고 했다.

또 다른 취재원을 찾아야 했다. 백방으로 뛰어다녔다. 그렇게 해서 어렵게 동영상 하나를 입수할 수 있었다.

북한 주민들이 남한 변호사에게 위임장을 써주는 장면을 담은 영상이었다. 취재진은 모두 흥분했다. (구체적인 입수 경위는 취재원의 안전을 위해 밝히지 못하는 점을 이해해주기 바란다) 

위임장 작성은 북한의 한 허름한 주택에서 이뤄졌다. 위임장에 적힌 북한 가족들의 주소를 볼 때 이들은 북한 전역에서 흩어져 살다가 위임장 작성을 위해 한 자리에 모인 듯했다.

여행이나 이주가 통제돼 있는 북한에서 이들은 어떻게 한 곳에 모인 것일까? 동영상 속 이들은 남한에서 유전자 검사에 사용될 손톱과 머리카락을 잘라 조그만 봉투에 넣었고 있었다. 

그런데 동영상 후반부에 낯선 남자가 등장했다. 

이 남자는 북한 가족들의 위임장을 수거했고, 위임장 작성 과정을 공증하는 역할을 했다. 익명의 취재원은 이 남자는 북한 당국자라고 말했다.



취재는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북한 주민들은 남한 법원에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법적 지위가 있을까? 숭실대 법학과 윤철홍 교수님과 고려대 법학과 신영호 교수님께 자문을 구했다.

두 분들의 의견은 일치했다.

헌법 제3조에 따라 북한 지역도 대한민국 영토의 일부이며 북한 당국의 북한주민 관할권을 불법이다.

결국 북한 당국이 부여한 북한 국적은 인정되지 않으며 북한 주민은 대한민국 국민으로 인정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북한 가족들이 소송에 승리하면 정말 남한 내 재산권을 행사할 수 있을까? 서울 영등포구청 부과 과 재산세 담당자를 찾아갔다. 남한 내 재산이 있다면 남한에서 재산세를 내야 할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부과 과 관계자는 북한 가족들에게 남한 내 재산관리인이 있다면 가능하다고 했다. 재산관리인이 세금 문제를 챙겨주면 재산권 유지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제 이 남한 내 재산관리인, 즉 실질적인 재산권 행사 주체가 누가 될 것인가가 문제였다.

이즈음에 윤 씨의 남한 가족들을 접촉했다. 가족 대표인 큰 아들은 직접적인 인터뷰를 사양했다. 대신 자신들의 변호사를 만나보라고 했다.

남한 가족 측 변호사는 북한 가족들이 직접 남한 재산권을 행사해 돈을 가져갈 가능성은 없다고 했다. 대신 북한 당국이 이들을 꼭두각시로 내세워 남한 재산을 좌지우지할 수 있고, 또 남한 내 재산관리인이 부당한 이득을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설득력이 있었다. 동영상에 나온 북한 당국자의 모습도 떠올랐다. (이번 사건은 소송 중이었기 때문에 이후 편집 과정에서 양측 변호사의 주장과 내용, 그리고 인터뷰 길이까지 섬세하게 조정했다)   그런데 이런 사연은 윤 씨뿐이 아니었다. 남한에서 번 돈을 북한 가족들에게 남겨주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취재진은 그 가운데 한 명인 김 씨 할아버지를 어렵게 만날 수 있었다. 김 씨 할아버지는 6·25 전쟁 전 월남해 각종 사업으로 수십억 원의 재산을 모았다. 그는 북한에 자녀 3명을 남겨뒀고, 남한에서 여섯 명의 새 자녀를 뒀다. 80살에 가까워진 김 씨는 유산으로 남한의 큰 아들에게 12억 원을, 그리고 딸 다섯 명에게는 1억 원씩 나눠줬다. 이후 남한 자녀들에게 "남은 재산 일부를 북한 가족들을 위해 남겨놓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남한 자녀들의 불만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남한 자녀들과의 갈등과 북한 자녀들 생각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윤 씨나 김 씨와 반대로 북한 재산권을 행사하고 싶다며 북한 토지대장 등을 보관 중인 이산가족들도 적지 않았다.



취재는 막바지로 접어들었다. 해답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답을 가진 사람을 찾기 위해 여러 곳을 수소문했다.

그 가운데 한 곳이 법무부 통일법무과였다. 통일법무과는 남북한 사이의 각종 법률문제를 연구하는 곳으로 대부분의 문서가 '비밀 2급' 이상으로 규정돼 있다.

하지만 담당 과장(부장검사)은 오히려 최근 상황에 대해 곤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북한 주민이 남한에서 소송 주체가 될 수 있는지, 재산권은 행사할 수 있는지 등 모든 질문에 대해 '판사가 판단할 일'이라고만 답했다. 

해외에서 답을 찾아봤다. 그렇게 해서 찾아낸 것이 바로 '대만지구와 대륙(중국본토)지구 간의 국민관계조례(臺灣地區與大陸地區人民關係條例)'였다. 중국과 대만이 양측 재산권 분쟁의 해법을 담은 법령이었다. 담당 부처는 대만 대륙위원회(우리 통일부와 비슷)였다.

방송일자가 촉박해 국제전화 인터뷰로 대신하기로 했다. 영문 공문을 몇 차례 보내고, 중국어 인터뷰를 대신해줄 중국인 유학생을 섭외하는데도 며칠의 시간이 걸렸다. 어렵게 얻어낸 대륙위원회 측의 설명은 다음과 같았다. 조례에 따르면 중국 본토인이 대만 유산을 상속할 경우 3년 안에 상속 사실을 등록하지 않으면 상속권을 인정받지 못한다.

또 상속을 받더라도 중국 본토로 가져갈 수 있는 돈은 최대 2백만 대만 달러, 우리 돈 8,000여만 원으로 제한돼 있었다. 이렇게 전체 취재에 2주 정도 걸렸고, 원고 작성에 이틀, 편집에 또 이틀 이상이 걸렸다. 보도 이후 일반 시청자들의 반향은 크지 않았지만, 많은 분들의 칭찬과 격려를 받았다.

특히 법조계의 관심이 컸다. 법학 계 내 북한법연구회는 잇따른 발표회를 통해 '북한주민의 월남자 재산상속권 청구 문제'에 대한 토론회를 벌였다. 대법원 산하 특수사법제도연구회는 2009년 연구 대상 주제로 북한 주민의 재산상속권 문제를 다루기로 결정했다.
법무부 통일법무과도 보도 이후 북한 주민의 상속권 문제뿐 아니라 북한 주민들의 남한 가족관계등록부 신청문제 등 보도에서 드러난 각종 법률문제에 대한 검토와 연구 작업에 착수했다. 

북한 주민들의 소송위임 동영상과 이번 사건에 대한 우리 정부의 입장, 중국-대만 사례 등을 충실히 보여줌으로서 남북 재산권 분쟁의 해법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았고, 지난 2009년 4월 제223회 이달의 기자상까지 받을 수 있었다. 

인기 없는 북한 아이템의 가치를 알아준 심사 위원과 시청자들, 그리고 시사보도 프로그램 근무자의 고민과 고통을 이해하고 격려해준 많은 선후배들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 * * * * * * * * * * * * * * * *

업무 중에 간간히 쓴 글이라서 썩 매끄럽지는 않습니다만...시사고발 프로그램을 담당하는 기자나 PD들의 고충을 이해하는데 조금 도움이 될까 해서 올립니다.

지금도 고생하는 SBS<뉴스추적> 기자들과 <그것이 알고싶다> PD들 모두 파이팅 하시길 빕니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많이 본 뉴스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댓글

    방금 달린 댓글
    댓글 작성
    첫 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0 / 300

    댓글 ∙ 답글 수 0
    • 최신순
    • 공감순
    • 비공감순
    매너봇 이미지
    매너봇이 작동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