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곳 워싱턴에서 특파원으로 있으면서 가장 중요하게 다뤄지는 사안은 다름 아닌 북한입니다. 북한은 미국에게도 필요한 존재라는 생각이 시간이 갈수록 단단해 집니다. 1940년대에 제 2차 대전, 1950년대에는 한국전쟁, 1960년대에는 베트남 전쟁(1970년대까지 이어졌죠.패전이라는 굴욕을 안았고요) 1990년대에 이라크 전쟁, 2000년대에 이라크, 아프간 전쟁... 이렇게 미국은 10년 주기로 전 세계를 무대로 끊임없이 전쟁을 해온 나라입니다. 작게는 미국의 이익과 크게는 민주주의와 자유의 가치 수호를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말이죠. 그런 전쟁을 통해 미국은 첨단 무기를 활용하고,석유등의 자원을 확보하고, 엄청난 물자 투입을 통해 경제를 활성화 시키곤 했겠지요.
서론이 길었습니다. 북한이라는 존재는 미국이 주도하는 비핵화 정책의 당위성을 입증하는 핵심입니다. 이란과 함께 말이지요. 국무부 크롤리 대변인이 매일같이 쏟아내는 북한 관련 발언은 워싱턴 특파원들이 아주 긴요하게 취급하는 뉴스의 샘입니다. 때로는 국무부에 가서 직접 듣고 때로는 지국 사무실에서 인터넷을 통해 확인하지만, 크롤리가 어떤 날 북한 관련 발언을 하지 않으면 웬지 맥이 풀리곤 한답니다.
천안함이 침몰된 이후 크롤리나 스타인버그 국무부 부장관, 캠벨 차관보가 쏟아내는 북한 관련 멘트는 더더욱 그랬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아,미국이 정말 한국의 동맹, 맹방, 가까운 친구이구나"라는 사실을 실감할 정도로 끊임없이 한국을 지지하고,한국의 조사결과는 엄정한 것이라는 발언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오바마 대통령까지 나서서 주요 8개국 정상회의의 성명을 통해 천안함은 북한의 공격으로 인한 것이라며 개탄하고,북한에 대해 한국을 향한 위협,공격행위를 중단하라는 요구를 할 정도였으니까요.
그런데 정작 우리 정부가,또 미국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유엔 안보리의 천안함 관련 움직임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사태 이후 중립적 자세를 고수하는 듯한 모양새로 사실상 북한 편을 들어주고 있는 중국은 물론,주요 8개국 정상회의 성명 채택에 동의했던 러시아가 우리 편을 들어줄 것으로 단언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며칠 전,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은 " 한국을 방문해 자체적으로 천안함 조사결과를 검증했던 러시아 전문가들이 보고서 작성작업을 거의 마무리했다. 곧 지도부에 보고할 것이고, 러시아 정부는 보고서 결과에 따라 앞으로의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고 발표했습니다. 그리고 인테르 팍스등 일부 러시아 언론은 "러시아 전문가들은 천안함이 북한의 소행이라고 단정할 만한 증거를 찾아내지 못했다."고 보도하고 있습니다.
아침 뉴스로 이 내용을 소화하면서 당일 8시 뉴스에도 이 사실을 전하기 위해 이런 저런 취재를 했는데요, 그 날 저녁 한덕수 대사의 움직임이 좀 심상치 않았습니다. 미국에서 열린 1970년대 남북 대화의 진실을 찾기 위한 세미나에 참석했던 한국 교수들과 전직 관료들을 초청해 저녁식사를 함께 하면서, 거의 식사를 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바로 러시아의 움직임 때문이었는데요, 그 자리에 참석했던 한 교수의 전언에 따르면 "한대사는 저녁내내 전화통화를 하느라 바빴다. 그리고 들려오는 전화 내용은 러시아 정부가 발표를 하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것 아니냐, 중국 뿐 아니라 이제는 러시아도 문제다."는 요지였다고 합니다. 결국 러시아 정부의 임박한 발표 내용이 우리에게는 유리하지 않을 것이라는 하나의 암시가 되는 대목이죠.
그리고 오늘 또 하나의 관련 내용을 들었는데요, 그 것은 중국정부의 움직임입니다. 구체적인 내용까지는 확인하지 못했지만, 유엔주재 중국 대사가 개인적으로 어떤 조건을 내걸고 그 조건이 받아들여진다면 문안 작성까지는 동의할 수 있다, 하지만 북한을 적시하는데는 반대라고 했다고 하는 발언이었습니다. 앞으로 조금 더 취재가 필요한 대목입니다만, 이렇게 제가 글을 쓰는 이유는 우리 정부가 미국과 손잡고 추진하고 있는 유엔 안보리 차원의 천안함 관련 대응(결의안도 아니고 그 보다 격이 낮은 의장 성명 정도로 이미 방향은 잡혔습니다. 천안함이 침몰된 이후 우리 국민들이 받았던 충격,가족들이 겪어야 했던 아픔, 미국과 스웨덴등 여러나라를 참여시킨 가운데 진행된 조사등등을 생각하면 의장 성명으로 가닥이 잡힌 것만도 도무지 성에 차지 않고 이해가 되지 않는 대목입니다만) 이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것 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이 천안함을 침몰시켰다고 볼 수 있는 확실한 증거가 없다고 반대한다면 유엔 안보리의 천안함 관련 성명은 말 그대로 팥없는 찐빵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1번이라는 글자등을 전 세계에 내보이며 북한 잠수정이 천안함을 몰래 타격하고 기지로 돌아갔다는 우리 정부, 아니 국제조사단의 조사결과가 공인받지 못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만일 그런 결과가 나온다면 그 때 가서 우리 정부는 어떤 대응을 해야 할까요? 중국과 러시아를 설득하지 못한 조사결과를 내놓은 책임은 누가 져야 하는 걸까요?
아직은 유엔 안보리의 결론이 나지 않았으니까 이렇게 얘기하는 게 성급할 수도 있습니다. 다만 지금 돌아가는 국면이 그럴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입니다. 북한의 소행임을 확인하고 북한을 규탄하며, 앞으로는 그런 행동을 되풀이하지 말 것을 요구하고, 그런 행위가 반복된다면 북한이 얻을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성명이 나오기를 바랍니다만, 혹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미 국내에서도 조사결과를 전폭적으로 신뢰하지 못하겠다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상황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불순하게 여겨질 수도 있겠지만, 조사결과가 확실하다면 중국과 러시아를 설득할 수 있어야 하겠지요.
한국일보 칼럼의 한 대목을 소개하면서 이 글을 마치겠습니다.
"우리의 전쟁이 어디 그뿐(아프간) 인가. 우리는 지금 정전협정 상태에서 당한 천안함 침몰과 이 도발의 진실을 둘러싼 내부의 전쟁을 치르고 있다. 북한 소행이라는 증거가 제시된 상황에서 이에 대한 불신의 논리적 귀결점은 '증거의 조작'일 것이다. 불신이 증명된다면 현 정권은 존립할 수 없다. 우리 사회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매일, 매일 스스로에게 묻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고태성 국제부장
UN 안보리 결의문에 북한이 빠진다면..
긴박한 국면…책임은 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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