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기사가 8문장 정도 되잖아요. 많으면 10문장, 적으면 7문장 정도.
그런데 단 한문장도 써지지 않는 날이 있습니다.
기자실에 앉아 몇시간 째 "SBS 정경윤입니다" 이것 말고는 머리도 손도 모두 정지하더라고요.
최근에는 초등학생 여자 아이를 학교에서 납치해서 성폭행한 김수철 사건이 있었습니다.
사건 관련해 취재를 마치고 수사가 어떻게 진행되는지에 대해 기사를 써야 하는데, 어떤 내용으로 써야 하고, 어떤 인터뷰를 쓸 것이며, 다 아는데 한 단어도 쉽게 내뱉어 지지 않아서 멍하니 몇 시간을 그냥 보내 버렸습니다.
지금은 자신이 어떤 일을 당한 줄도 모르는 그저 8살난 어린 여자아이가 나중에 커서 이런 일이 있었다는걸 뒤늦게 알았을 때, 하루가 멀다하고 쉴새없이 쏟아지는 기사가 오랜 시간이 지나 그 아이에게는 지워버리고 싶은 기록이 되겠지요.
어쨌든 전 김수철의 집에 찾아가 범행 흔적이 남아있는 방안을 보고, 집 주변의 음식점과 편의점에서 평소 그의 행적에 대해 듣고, 사건을 담당한 경찰로부터 필요한 정보를 수집하고.
그리고 하루하루 어떤 말로 시작해야할지 마감 시간이 다 될 때까지 고민하다…. 결국 그가 검찰로 가는 날까지 거의 매일 기사를 써 냈습니다.
기사를 써야 하는 순간, 사실 아직 제겐 그 순간을 결정할 권리가 많지 않습니다.
보도국의 방침이니, 사회 여론이나 보편적인 정서…. 뭐 이런 합리적(?) 이유 보다도 기자라는 이름 앞에는 기사를 써야 하는 의무가 더 많은게 현실이니까요.
몇 안되는 문장에 담아야 하는 그 '의무'가 시간이 갈수록 무거워지기 시작합니다.
고민이 극에 달하는 모든 순간에 명쾌한 답을 얻을 순 없겠지만, 그 의무가 기자인 제가 끝까지 가져갈 수 있는 사명감이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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