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쌍끌이어선 금양98호

해군 초계함 천안함이 침몰한 지 벌써 보름이 더 됐네요.

사고가 난 이튿날 저는 바로 백령도에 다녀왔습니다.

섬에서 돌아온지 한참 지나서야 (여전히 진행 중인) 이야기가 생각나 블로그에 들어왔습니다.

(천안함) 실종자를 찾는 해군의 수색작전에 보안이 필요하긴 하지만 취재를 하러 섬에 간 입장에서는 매일 별다른 성과 없이 밤을 맞는 일이 답답했던 시간이었습니다.

실종자 가족들만큼 애가 타지는 않았을지 몰라도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처음 언론에 보도된대로 69시간이란 숫자에 마음을 졸이던 것도 같았고요.

하지만 시간은 무심히도 흘렀고, 바다에 나가서 현장을 보고 싶어도 궂은 날씨 탓에, 그리고 해군의 통제 탓에 바다에 나가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쌍끌이어선 12척이 사고해역으로 왔죠.

4월 1일의 일입니다.

그 날은 물때가 사리를 지난 시기였지만 날도 흐리고 바람 때문에 파도도 높았던 날입니다.

파도를 피해 (선창이 더 큰) 대청도로 피항해 있던 배는 4월 2일 사고해역 근처에 모여 해군이 설정해준 반경 5km에서 그물을 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무작정 대청도로 가서 쌍끌이어선 선장님께 사정사정을 하고 어선에 올라탔습니다.

 

함수나 함미가 가라앉아 있는 지역 근처에 수심 100m까지 칠 수 있다는 그물을 펴면 유류품이라도 건질지 모르니까요.

 

선원 분들과 이야기하다 보니 해군이나 해경에서 와달라고 한 것도 아닌데, 국민들과 똑같이 답답한 마음에 '우리한테 이런 장비도 있는데 우리가 한 번 훑어보면 뭐라도 나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마음 맞는 선장들끼리 뜻을 모아 먼저 오겠다고 했다고 하더군요.

 

실제로 조업을 하다 보면 쌍끌이 어선에 몇 년 전에 가라앉은 조각배를 비롯해 별의 별 게 다 걸려올라온다고 합니다.

 

 

많은 기대를 갖고 시작한 작업이지만 성과는 없었습니다.

 

사고해역 근처가 저인망 해역이 아니었기 때문인데요.

 

양식장이나 바위, 암초도 있는 곳이고, 그걸 다 피해서 그물을 내렸다 올렸다 하는 일이 사실상 불가능했었습니다.

 

제가 탔던 배의 그물도 내린지 30분도 채 안 돼 다 찢어졌습니다.

 

저와 취재진은 허탈한 마음으로 배에서 내렸고, 쌍끌이어선들도 힘없이 사고해역을 떠났죠.

 

문제의 사고는 그날 밤 터진 겁니다.

 

제가 타고 있던 배가 금양 501호였는데요.

 

캄보디아 화물선과 부딪혀 침몰한 배는 금양 98호. 주선과 종선은 아니고 선주도 달랐지만 같은 회사 소속으로 금양 98호도 이번 일에 선뜻 참여했던 배입니다.

 

501호에서 옆에 떠가는 배들을 스케치한 화면을 보니까 금양98호도 있더군요.

그렇게 바로 옆에서 이런 일에 힘을 보탰던 배입니다.

사고 경위야 해경에서 밝힐 일이고, 캄보디아 국적 선박의 뺑소니 사고로 잠정 결론이 난 것 같습니다만 제가 안타까운 건 정부의 태도입니다.

 

처음 발표 때부터 '수색작업을 지원하다가 조업구역으로 돌아가는 길에' 사고가 났다고 했죠.

 

맞는 말입니다.

그물이 찢어졌을 때 이미 수색작업은 중단됐고, 누구 돈 받고 수주 받아 작업에 참여했던 배도 아닌데다 해저 저질이 안 좋아 다음날도 작업이 여의치 않아보여 철수하기로 하고, 원래 저인망 조업구역으로 돌아가던 길이죠.

 

작업 중에 난 사고는 아니지만 작업을 도우려 왔다가 난 사고입니다.

 

누가 치켜세우지 않더라도 충분히 국민들의 슬픔과 위로를 함께 받을 만한 사람들인 거죠.

 

하지만 대통령이 애도의 뜻을 표한 것 말고는 별다른 대책이 없어 보입니다.

 

이미 언론에 금양98호 실종선원 가운데 시신으로 발견된 두 분의 썰렁한 빈소 모습은 여러 차례 보도가 됐죠.

 

나머지 실종선원들도 차디찬 바닷속 어딘가에 있을 겁니다.

 

천안함 속에서 묵묵히 작전을 수행하던 장병들과, 아들 같은 전우를 살리려 차디차고 캄캄한 바닷속을 쉼없이 드나들었던 고 한주호 준위와 똑같이 힘이 들 겁니다.

 

천안함 실종 장병이나 고 한 준위와의 대우 차이를 따지려는 건 아닙니다.

 

사고 경위야 다를 수 있겠지만 모두 다 소중한 생명이고, 우리 국민들에겐 기적적으로 살아돌아온다면 똑같이 반가울 사람들 아닐까요?

 

벌써 며칠 지난 이야기지만 민주노동당 강기갑 의원이 금양98호 실종선원 가족들을 만나러 왔다가 인천시에서 대책위원회를 꾸렸다는 이야기를 전해주자 가족 분들이 대책위원 코빼기도 못 봤다며 속상해 하셨다더군요.

 

그제서야 부랴부랴 관할 구청장을 비롯한 구청 공무원들이 가족들을 찾아왔다고 합니다.

 

선거가 얼마 안 남았으니 바쁠 수도 있겠지만 이보다 중요한 일이 있을까요?

 

해경과 지자체가 보상 문제를 놓고 서로 책임을 미루고 있다는 얘기가 있는데 그것 때문에 일부러 얼굴 비추기를 꺼려하신 걸까요?

 

제가 탔던 그 배에도 동남아시아 어느 나라 출신으로 보이는 선원들이 두 명 있었습니다.

 

만선을 기대하며 조업 때 내리던 그물은 아니었지만 생면부지의 형, 동생들을 찾는 데 조금이라도 힘이 되어보려고 뱃길도 낯선 백령도 앞바다까지 달려온 친구들입니다.

 

이미 일어난 사고야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적어도 우리들 마음 속 깊은 곳으로는 쌍끌이어선 금양98호를 쉬이 흘려보내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많이 본 뉴스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댓글

    방금 달린 댓글
    댓글 작성
    첫 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0 / 300

    댓글 ∙ 답글 수 0
    • 최신순
    • 공감순
    • 비공감순
    매너봇 이미지
    매너봇이 작동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