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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법 VS 사법 대격돌

건국 당시 우리 선조들은 나라의 틀을 어떻게 짤지 놓고 고심했다. 대통령제, 의원내각제, 이원집정부제 등 다양한 형태가 논의됐겠으나 결론은 내각제 형태를 가미한 대통령제였다. 제헌국회는 이런 내용을 바탕으로 우리나라의 초를 잡은 헌법을 만들었다.

헌법은 "국가의 통치조직과 통치작용의 기본원리 및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근본 규범"이라고 정의돼 있다. 우리나라 헌법에 따르면 입법권은 국회에(헌법40조), 행정권은 대통령을 수반으로 하는 정부에(헌법 66조 4항), 사법권은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헌법 101조)에 속한다고 규정돼 있다. 나라의 골격이라 할 수 있는 권력 구조로 이른바 '3권 분립'을 채택하고 있는 것이다.

그 권력의 두 축인 입법부와 사법부가 충돌하고 있다.

시작은 입법부, 정확히 말해 여권에서 촉발됐다. 시국사건에서 예상 밖의 판결이 잇따르자 사법개혁 카드를 꺼내든 것이다.

한나라당 사법개혁특위는 지난 17일 법원 개혁방안을 발표했다. 먼저 법원 인사제도 개선방안의 핵심은 경력 법관제다. 10년 이상의 경력을 가진 검사, 변호사, 법학교수를 판사로 신규 임용하는 내용이다. 대법관도 현행 14명에서 24명으로 대폭 늘리고 3분의 1은 법관이 아닌 사람으로 임명하기로 했다. 

대법원에 법무부 장관, 대한변호사협회장 등의 추천 인사로 구성된 법관인사위원회를 두고 판사의 보직, 전보를 의결하고 연임을 심의하도록 했다. 양형위원회는 대통령 직속으로 두고 양형기준 기본법을 제정하기로 했다.

사법부의 수뇌부인 대법관 구성에서부터 인사권, 양형에 이르기까지 사법부 전 영역에 대한 대대적인 개편안인 셈이다.

대법원은 한나라당의 사법개혁안 발표 하루 뒤인 18일 이례적으로 공개 성명을 내놨다.

대법원은 박일환 법원행정처장이 발표한 성명서에서 사법부의 자율적 인사운영은 사법부가 독립성을 지키고 헌법상 책무를 다하기 위한 최소한의 전제조건이라며 이를 다듬고 고쳐나가는 일은 마땅히 사법제도의 운영을 
책임지는 사법부가 주체가 돼야 한다고 밝혔다.

국회나 행정부가 사법제도 개선을 논의할 때도 삼권분립  대원칙과 헌법이 보장한 사법부의 자율성을 최대한 존중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이다. 전국 법원의 운영을 책임지는 법원행정처 수장(참고로 법원행정처장은 대법관이 맡고 있다) 직접 나서 현안에 대한 성명을 발표한 사실상 처음있는 일이었다.

박 처장은 최근의 사법제도개선 논의는 개별적으로 제시된 주장의 당부를 굳이 따질 것 없이 사법부를 배제하고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진행방식 자체만으로도  매우 부적절하며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일이라고 여당을 직접 겨냥했다. 또 사법부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와 존중심마저 잃은 이러한 처사는 일류국가를 지향하는 우리나라의 품격에도 어울리지 않아,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지 않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한나라당이 마련한 제도개선안은 세부 내용의 타당성이나 적절성 여부를 떠나, 일방적으로 진행된 논의 방식만으로도 도를 넘어섰기 때문에 사법부로서 용인하기 어렵다는 뜻을 분명히한 것이다.

대법원의 유감성명이 발표되자 한나라당도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는 19일 원내대책회의에서 대법원의 성명 발표와 관련해 국민들은 30여년 간 개혁 무풍지대였던 사법부가 국민 뜻에 따라 개혁 되길 원하는 상황에서 사법부 기득권 지키려는 정치적 행위를 하고 있는 것 아닌가하는 우려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더구나 한나라당 추진안은 당 사법제도 특위에서 우선 논의 사항으로 국회 사법제도개혁특위에서 야당과 함께 더욱 공정하게 토론하고 처리해 나갈 사항들이라고 강조했다. 대법원이 주장한 법원측 의견도 국회 특위 논의 과정서 법원 입장이 반영될 것이라며 국회 절차를 거치기도 전에 사법 개혁은 법원의 몫이라고 하는 것은 국회가 사법제도 개혁 방안 마련할 때 대법원 승인 받으라는 것이냐고 비판했다.

반박에 재반박이 이어지면서 입법부와 사법부의 대격돌로 이어지지 않을까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여당이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는 가운데 법원 내에서도 일선 판사들까지 들끓는 분위기다.

사법개혁안은 국회를 통과하지 않는 한 현실화될 수 없다. 아무리 거대 여당이라 해도 야당의 반대를 무릅쓰고 수로 밀어붙일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는 말이다. 실제 야당들도 여당안에 일제히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당장 실현 가능성도 없는 일 때문에 제대로 된 논의도 해보기 전에 여당과 대법원이 감정싸움을 벌일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다.

사법개혁은 대법원도 필요성을 인정한 사안이다. 그렇다면 정치권인 입법부와 사법부가 격한 감정을 토해내기 전에 머리를 맞대고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 권력 충돌이 국민들에게 미칠 우려도 한 번쯤은 생각해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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