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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의 추억

그 생성시기와 연유를 자세히 알 수 없는 '길'은 헤아일 수 없는 먼 옛날부터 인간의 생활에 있어왔을 게 분명하다.

하지만 길의 존재 자체를 사고(思考)의 대상으로 여겼던 적은 없는 것 같다.

막연히 思考라 함은 그것을 두고 생각할 수 있는 범위가 꽤나 넓거나 두고 이야기를 풀어갈 단초가 그래도 어느 정도는 되는 대상을 두고 하는 것이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이런 고정관념 속에서 길이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길은 예부터 인간과 물자의 이동통로 기능뿐만 아니라 마을과 마을을 이어주고 문화와 이야기가 전해지는 가교역할을 해왔다.

그 속에는 무수히 많은 인간사의 단면들이 엮이고 엮여 큰 이야기를 품고 있기도 하다.

지금껏 인식하지 못했던 이런 이야기에 귀가 귀울여지고 그것을 갈구하는 마음이 생겨나는 것은 아마도 빠르게 흘러가는 현대사회에서 쪼그라든 마음에 조금이나마 여유를 불어넣어주려는 인체의 본능이 작용한 것은 아닐까...?

나에게 길은, 굳이 추억이 있는 따뜻한 정서의 길을 생각해내자면 어린 시절로 되돌아가야 한다.

사실 지금 도시생활속에서 느낄 수 있는 길에 대한 관념은 흙 한 줌 찾아볼 수 없는, 차들로 가득찬 '답답함' 일 뿐이다.

나의 고향은 강원도 정선군 임계면 도전리, 강원도 중에서도 아주 첩첩산골이었다. 당시만해도...

당시 아이들의 놀이라는 것은 여름이면 개울에서 '빤스 바람'으로 멱감고 겨울이면 얼어붙은 개울에서 *'씨게또' 를 타고 눈싸움하는 일이 전부였을 정도니까...
(*씨게또-일본어의 영향인지 우리 동네만의 사투리인지는 모르겠으나 어릴적 나와 친구들은 나무로 만들어 앉아서 타는 스케이트 비슷한 놀이도구를 이렇게 불렀다)

마을에 하나 있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30리 정도 떨어져 있는 면 소재지의 중학교를 다녀야 했는데 도시 고등학교로 나오기 전까지 나의 중학 3년 생활은 매일 이 30리 길을 오가는 일상의 반복이었다.

지금이야 널직한 왕복 2차선의 포장도로가 훤하게 뚫려 있지만 그때만해도 비포장에 버스는 하루 3~4대가 전부, 아침 7시에 찾아오는 등교버스를 놓치거나 비나 눈이 많이 와서 버스가 못오는 날엔 어린 걸음으로 1시간 반은 족히 걸어야 하는 만만치 않은 통학 길이었다.

10년 넘게 우리 마을만 드나든 강원여객 버스기사 아저씨는 아이들 얼굴 하나하나 다 기억해 아이들이 다 타지 않으면 "누구 오늘 학교 안가나?", 아이들에게 물어 10분이고 기다렸다가 모두 태우고 출발할 정도로 친숙했다.

하지만 강원 산간지방이라 겨울에 1미터 넘는 눈이 오는 날엔 버스가 들어올 도리가 없다.

장마철 폭우가 져 다리가 넘치는 날에도 마찬가지다.

이런 날엔 학교를 못가는 날도 많았지만 이를 핑계로 학교에 안가겠다고 하기 멋적은 날엔 옆집 효만이와 아랫동네 어규 등 내 친구들과 함께 30리 길을 걸어 3교시가 끝나갈 오전 11시쯤 학교에 도착하곤 했다.

도시 아이들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이야기일 런지도 모르지만 내 어린 시절은 이랬다.

걷다가 다리가 저려올 쯤이면 비포장 도로에 차가 많이 다녀 생겨난 웅덩이 가에 앉아  머리를 빼곰 내밀고 있는 고추개구리를 꼬챙이로 찌르며 놀다가 다시 걷고, 장터에 나가는 어느 마을 아무개 아저씨의 쌔래쓰(기아에서 나온 시골에서 가장 많이 쓰는 4륜 트럭) 라도 발견하면 얼른 뒷칸에 자리잡고 앉아 편하게 등교하는 횡재를 누리기도 했다. 

이런 기억의 단상이 서려있는 그 길은 내 어린 시절 사진에서나 간혹 찾아볼 수 있을까?

지금은 없다.

사람들이 요즘 이런 길을 찾고 있다. 이야기가 있고 추억이 있고 따스함이 있는, 쉽게 말하면 걸을 만한 길이다.

세상이 좋아지면서 걸을만한 길은 하나둘 사라져갔다. 차가 다녀 사람 이동이 편해지고 산업이 발전했지만 그 속에서 마음은 여유를 잃었다.

나같은 시골 출신들은 그런 길에 대한 향수가 있을 터이고 그렇지 않은 도시 출신이라도 좋은 길 위에서는 마음의 여유와 안락을 느낄 것임은 분명하다.

길을 없애고 더 넓은 길을 만들고 사람길을 찻길로 새로 닦고 흙길을 포장하고 보전과 경제적 가치 사이에서 무엇을 취해야 할 지에 대한 고민이 더 필요한 시점이다.

지난 한 달 남짓  '길, 사람을 품다'는 제목으로 길의 가치를 재조명하는 연속보도를  마련해 방송을 모두 마쳤습니다.

길 관련 기획보도물 홍수 속에서 나름 저희 '기획취재팀'에서 전국으로 발품 팔아 제작한 보도물이니 미쳐 보지 못하신 분들은 다시보기로라도 보시면 좋을 듯 싶습니다.

특별한 감흥이면 더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더라도 예쁜 영상 보면서 조그만 즐거움이라도 느끼시면 그 보다 더 한 보람이 있을까요? ^^ 

[SBS 연속보도] 길, 사람을 품다

10.15 새롭게 부활하는 옛길(조제행)

10.22 옛길, 배움의 길(한지연)

10.28 문학을 걷다(김흥수)

10.30 도심속 문학길(조제행)

10.31 도심 생태길 인기(유병수)

11.6 길이 자원이다(유병수)

11.7 걷기자세, 잘 걸어야 보약(한지연)

11.20 사라지는 옛길(김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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