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펜실베이나주에 있는 돼지 농장. 말이 농장이지 실은 공장에 가까웠다. 돼지를 빨리 키우고 육질을 좋게 하기 위해 갓 태어난 돼지의 생식기와 꼬리를 잘라내 버린다.
태어날 때부터 허약했던 돼지들은 그대로 '폐기처분' 된다. 살아있는 돼지라 하더라도 평생 악몽이다. 자기 몸집에 딱 맞는 크기의 우리에 같혀 살만 찌운다. 사람의 먹이가 되는 날만 기다리는 모습이다.
닭의 삶도 비슷하다. 닭 사육장에서는 닭의 부리를 일찌감치 잘라버린다. 비좁은 공간에서 살고 있는 닭들이 스트레스를 받으면 서로를 쪼아 상처를 주기 때문. 상처 탓에 닭이 다칠까봐 자르는 게 아니다. 오로지 상품 가치 하락의 우려 탓이다.
병아리가 부화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은 알을 낳지 못하는 병아리들을 선별해 분쇄해 버린다. 갓 태어난 병아리들의 삶은 이토록 짧았다. 생명이라기보다는 공산품에 가까웠다.
이런 가축들이 행복할 리는 없다. 인간이 제공한 이들의 불행. 하지만 이들의 불행은 머지 않은 시기에 인간의 스트레스로 돌아오고 만다. 스탠포드대 의학박사 패트릭 리 씨는 "지난 50년간 음식 시스템은 우리가 먹는 음식들에게 더 심한 스트레스를 받게 했다. 그러면 그 음식을 먹는 사람도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동물들에게 남아있는 스트레스 호르몬은 음식으로 가공되더라도 남아있기 때문이다. 인간들은 동물들의 스트레스 호르몬을 그대로 돌려받게 되는 셈이다.
(SBS인터넷뉴스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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