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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정 6자협의 "겉과 속이 달라요"

지난달 29일, 노·사·정 대표 6인이 담판을 벌이는 이른바 '6자협의'가 개최됐습니다.

노동계는 양대노총인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위원장, 경영계는 경총과 대한상의 회장, 정부에서는 노동부 장관과 노사정위원회 위원장이 각각 대표로 나왔죠.

이번 모임은 지난 10월 8일, 한국노총 장석춘 위원장의 제의를 민노총과 노동부가 받아들이면서 성사됐습니다.

좀처럼 접점을 찾기 힘든 '복수노조 허용/전임자 임금지급 금지'에 대한 일괄타결을 보기 위해, 이해 당사자가 한 데 모여 끝장 협상을 벌이자는 의도였습니다.

첫 자리인 만큼, 언론의 관심은 지대했습니다. 

마치 '북핵 6자회담'을 연상시키듯, 6각형으로 배치된 석상에 각 대표들이 착석했고, 카메라 기자들은 여기 저기 책상이나 휴대용 사다리 위에 올라가 연방 카메라 플래시를 터뜨렸습니다.

 회담의 진행은 김대모 노사정위 위원장이 맡았습니다.

[김대모/노사정위 위원장  :  노동계 대표부터 인사말씀 하시겠습니다. 한국 노총 장위원장님.]

다부진 표정이 트레이드 마크인 한국노총 장석춘 위원장의 모두발언은 간단했습니다.

[장석춘/한국노총 위원장  : 정부가 밀어붙이기식으로 복수노조 허용/노조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를 강행한다면 노동계도 대항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어 발언기회를 가진 임성규 민주노총 위원장은 작심한 듯 노골적인 조롱으로 포문을 열었습니다.

[임성규/민주노총 위원장 : 오늘 아침 뉴스를 못봤는데, 어제 재보선 결과 어떻게 됐죠? 한나라당이 5석 얻었나요? 아니면 4석? 아, 대답 없는 것 보니까 3석인가보네? 아닌가? 2석이에요? 어이구. 여기 있는 분들 상당수가 속상하시겠네.]

전날 재보선에서 한나라당은 수도권과 충북 3곳에서 모두 패하고, 텃밭인 강원 강릉과 경남 양산에서 두석을 얻는데 그쳤죠.  한나라당 정책위 의장 출신인 임태희 노동부 장관을 직접 겨냥한 비아냥이었습니다.

그후로도 발언은 이런 톤으로 약 20분간 더 이어졌습니다.

[임성규/민주노총 위원장 : 장관 인상은 참 좋은데, 요즘 발언을 보면 경제계를 대변하는 사람 같아요. 요즘 자꾸 복수노조 허용/전임자임금 지급 금지를 내년 1월 1일 강행하겠다는 말이 노동부에서 흘러나오는데, 새로 취임한 임 장관님 뜻은 아니겠죠? 노동부를 장악 못해서 그런건지 모르겠지만 그렇다면 관련 국장들 몇명 자르셔야겠습니다.]

결국 결론이 나왔습니다.

[임성규/민주노총 위원장 : 개정 노조법은 한나라당의 전인인 민자당이 날치기 통과시켰던 법이기 때문에 그 법을 없애는 걸 전제로 해서 논의를 했으면 좋겠습니다.]

임태희 장관은 동요됨 없이 특유의 간접 화법으로 맞받아쳤습니다.

[임태희/노동부 장관 : 우리 국민은 금융실명제도 엄청난 우려에도불구하고성공적으로 정착시켜온 능력이 있습디다. 이 능력을 바탕으로 해서 복수노조/전임자 문제의 해법을 만들 수 있습니다.]

이에 반해, 경영계를 대표하는 이수영 경총회장, 손경식 대한상의 회장은 노, 정과의 대립은 가급적 피하려는 듯 말을 아끼는 분위기였습니다.

이후 두시간가량 이어진 비공개 협의에서 여섯 대표들, 하지만 결국 이날 나온 성과는 '11월 25일까지 결론을 낸다'라는 짧은 합의뿐이었습니다.

대략, 이날까지 대외적으로 비춰진 노·사·정의 입장은 다음과 같습니다.

**대외 입장**

노동계: 복수노조->찬성,  전임자 임금 금지->반대

경영계: 복수노조->시기상조,  전임자 임금 금지->찬성

정부: 복수노조->조건부 찬성(창구 단일화 전제), 전임자 임금 금지->찬성


대략, 이런 상황이라면 공통분모를 만들기가 쉽지 않습니다.  단순 도식에 의한다면 <복수노조 허용>과 관련해서는 노동계와 정부의 입장이 한 묶음으로 묶이고, <전임자 임금 금지>에 대해서는 경영계와 정부의 입장이 또 한 묶음으로 묶이네요.

이 경우라면, 노, 사 양쪽에 한발씩 걸쳐놓고 있는 정부의 중재가 약발이 있을 가능성이 있어보입니다.

하지만 노·사·정의 속내를 들춰보면 얘기는 달라집니다.

물론 당사자들이 공개적으로 인정하기는 힘들어보이지만, 대략 기자가 내부 인사들의 얘기를 취합한 것을 토대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내부 입장**

 노동계: 복수노조->시기상조, 전임자 임금 금지->결사반대

 경영계: 복수노조->결사 반대, 전임자 임금 금지->양보 가능한 찬성

 정부: ?

이젠 오히려 노동계와 경영계 사이의 공통분모가 도드라지는군요.

이렇게 겉과 속이 다른 이유를 짚어보면요, 우선 노동계의 양대 산맥인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은 복수노조가 전격 시행될 경우 충돌이 불가피합니다.

한 사업장에서 민노총과 한국노총 산하 지부가 서로 주도권을 다투는 상황을 상정해본다면 쉽게 이해가 되시겠죠.

몇달전 민노총을 탈퇴하고 한국노총에 가입한 인천공항공사노조의 경우 예를 들어봅시다.

당시 한국노총은 '극단 투쟁을 일삼는 민노총 보다 합리적인 실리노선을 걷고 있는 한국노총을 선택한 것은 당연한 이유'라며 대대적인 선전에 나섰습니다.

이에 대해 민노총은 '한나라당과 정권에 아첨하는 한국노총이 민노총 탈퇴 공작을 부추겼다'며 분개해했습니다.

이런식의 하위 노조 쟁탈전이 벌어질 경우, 양대 노총의 정면 충돌은 노사, 노정간 충돌보다 격해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국제 기준에 맞게 복수노조 무조건 허용'이라는 양대노총의 주장은 상당부분 명분에 의한 선전표어에 불과하다는게 한국노총, 민주노총 일부 간부들과 학계의 공통된 분석입니다.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의 경우는 민노총, 한노총 노조 간부들의 생계가 달린 문제이므로, 양대노총이 손쉽게 합의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노동계의 속내는 '복수노조 허용 유보를 지렛대로 전임자 임금 지급 관철'로 정리가 가능하겠군요.

경영계도 표리부동하긴 마찬가지입니다.

기업들이 한 해 노조 전임자들에게 지급하는 임금은 4천억원 정도 됩니다.

하지만 복수노조가 전격 허용될 경우 지불해야 하는 비용은 몇 곱절이 될겁니다.

삼성전자만 따져봅시다. 올해 매출 100조원, 영업이익 10조원 달성을 눈앞에 두고 있는 이 한국 IT기업의 트레이드 마크엔 정상적인 노조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노조 가입 움직임이 생기면 언제든지 사측과 친한 노조를 결성해 미리 인가신청을 해버릴 수 있다는 '무노조경영'을 이어오고 있는데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 조정법 부칙>에서 명시 하고 있는 '복수노조 금지' 조항을 교묘하게 이용하고 있는거죠.

그런데 복수노조가 허용된다면? 국내외의 위상에 걸맞게 한국노총과 민노총이 서로 깃발을 꽂으려 경쟁하게 될 것입니다.

또, 연구원 노조가 결성될 가능성도 농후합니다.

삼성전자의 엄청난 이익은 R&D 인력의 눈부신 연구성과가 뒷받침한 것이지만, 이들 연구원들의 연봉은 다른 직무와 별반 다를바 없는 1억원 안팎 수준으로 나름대로 불만이 팽배하다는게 삼성 안팎의 분석이죠.

이렇게 된다면, 삼성전자 한 곳만 쳐도 한해 4천억원을 넘는 비용이 노사관계 정리작업에 들 수 있습니다.

이렇기 때문에 경총의 한 간부는 "복수노조문제만 해결된다면 전임자 임금 정도는 양보할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고 귀뜸해주기도 했습니다.

결국 경영계의 입장은 '전임자 임금 금지 문제를 지렛대로, 복수노조 허용 불가 관철'로 정리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노사의 협상 여지는 충분히 있는 것이 되겠군요.

문제는 정부입니다.

임태희 노동부 장관은 '노사의 공통 이해'를 이미 간파하고 있다는 듯이 "13년간 유예돼 온 복수노조/전임자 문제에 대해서는 더 이상 유예는 없다", "노사가 합의해도 강행한다"는 원칙론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FTA 등으로 국제 무역의 폭이 점점 확대되고 있는 지금, 국제적인 기준인 '복수노조 허용'을 따르지 않을 경우 해외 상대국들에게 불공정한 무역으로 인식돼 불이익을 받을 수 있는데다, 전임자 임금을 금지할 경우, 투쟁 일변도 성향의 노조가 조합원들의 조합비에 의존하게 돼 자연히 실리노선으로 선회하게 된다는 계산에서입니다.

또, 가만히 놔두기만 해도 개정 노조법이 내년 1월 1일이면 자동시행되는 상황에서 굳이 노,사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는 유리한 입장도 이런 강행방침에 힘을 실어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역시 이런 노동부 장관의 입장과 노동부 내부의 속마음은 조금 차이를 보일 수 있다는 의견이 노동부 안팎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13년째 유예돼온 복수노조 허용/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조항을 어떤 형태로든 내년 시행한다는 명분만 얻으면 의외로 유연해질 수 있다는 분석이죠.

복수노조는 허용하돼, 창구 단일화를 엄격히 관철시킨다면 노,사 양쪽의 이해에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데다, 전임자 임금지급을 금지하돼, 정부와 기업들의 그에 상응하는 기금을 마련하는 형태로 노조 전임자들의 수입을 보장하면 노동계의 반발도 수그러질 수 있다는 판단입니다.

결국 노,사, 정의 겉과 속이 다른 상황에서, 결과를 예측하는 셈법 또한 복잡해질 수 없는 상황인데요, 하지만 공통분모 마련의 가능성이 아얘 없어보이는 것도 아닙니다.

이에 대해, '6자협의'의 래퍼리 역할을 맡고 있는 김대모 노사정위원회 위원장이 어제 방송기자들과의 술자리에서 한 마디 하더군요.

[김대모/노사정위원회 위원장 : 데드라인(11월 25)까지 잘 하면 결론이 나올 수도 있을 것 같아]

이 발언에 대한 가능한 해석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1)데드라인까지 타결

2)데드라인까지 어느정도 공통분모를 좁힌 뒤 데드라인 연장 선언

물론, 김 위원장의 예측이 틀려 본격적인 '冬鬪'가 일어날 수도 있겠지만, 현재로서는 2)정도에 무게를 두고 싶은 것이 기자의 솔직한 심정입니다.

여러가지 경우의 수에 대한 예측이 가능한 가운데, 과연 '솔로몬의 해법'이 도출될 수 있을지 취재 일선에서 정신차리고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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