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시라야나기(白柳誠一) 추기경님을 아는지요.
아마도 모를 것 같아 이 분에 대해서 간단히 설명드리면 일본 천주교의 최고 어른입니다.
1928년생이니까 올해 82세가 됩니다.
전직 도쿄대교구장이셨고요, 올해 선종한 한국의 김수환 추기경처럼 일본의 상지대학교를 졸업했습니다.일본인으로 세번째로 지난 1994년 추기경에 서품됐습니다.
지금은 고령으로 병원에 입원 중인데 연세가 연세인만큼 상당히 병환이 위중하다고 들었습니다.
저 개인적으로 이 분을 취재하거나 뵌 적은 없습니다.
다만 올 2월 김수환 추기경 장례 미사를 공동집전했다는 뉴스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시라야나기 추기경 이야기를 야스나리군에게 하는 것은 종교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한일 두나라 관계 발전을 위해 묵묵히 노력한 많은 일본인 가운데 한 분으로 이 분을 소개하기 위해 이 글을 씁니다.
도쿄에는 한인성당(韓人聖堂)이 한 곳 있습니다.
도쿄 시내 유서 깊은 사적지 가운데 하나인 친잔소 바로 옆에 있는
도쿄 카테도랄 성당 안에 한인성당이 있습니다.
카테도랄 성당은 한국으로 치면 명동성당 같은 곳입니다.
도쿄 대교구가 자리잡고 있는 성당이면서 도쿄에서 가장 큰 성당으로 일본을 대표하는 성당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공중에서 보면 십자가 형상을 한 독특한 외양으로 2차대전 후 일본의 3대 건축물 가운데 하나로 가톨릭 신자보다도 건축학도들이 더 많이 찾는다는 말도 있습니다.
한인성당은 이 성당 건물을 일본 세키구치 성당과 함께 사용하고 있습니다.
같은 성당 건물을 일요일 아침 10시 미사는 세키구치 성당이, 정오 미사는 한인성당이 사용하는 식으로 공동으로 사용하는 것이지요.
하느님 안에서 모두 한 가족으로 지냅니다.
그렇지만 사실 한나라를 대표하는 성당을 외국인들에게 내주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야스나리군과 함께 이 글을 읽을 한국 분들에게 설명하자면 한국의 명동 성당을 일본인이나 필리핀인 또는 태국인들이 상주하면서 공동 사용한다고 상상해보면 이해가 빠를 겁니다.
미사를 드리는 대성당을 공동 사용하는 것은 물론 올해부터는 성당 부속 3층 건물 가운데 2층과 3층을 한인성당이 사무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고 주차장을 비롯한 모든 시설을 함께 씁니다.
제가 일본 사람이라면 한국인들과 성당을 함께 사용하는 것에 대해 조금 반감을 느낄 것 같습니다.
아무리 신앙 공동체라고 하지만 말이 다르고 문화가 다르고 행동 양식이 다른 외국인이 자신의 공간을 함께 사용하는 것은 어지간히 너그러운 사람도 견뎌내기 어려운 법입니다.
마치 자기 집의 거실을 함께 사용하고 집의 절반을 내주는 것이 쉽지 않은 것처럼 말이지요.
그런데 일본 천주교회는 이렇게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럴 수 있도록 결단을 내린 분이 다름 아닌 시라야나기 추기경이라고 합니다.
일본 가톨릭 신자와 성직자들도 처음에 한국 신도들과 성당을 함께 쓰는 것에 대해 반대가 심했다고 합니다.
당연히 그랬을 겁니다.
그런데 이 때 시라야나기 추기경이 앞장서서 반대하는 성직자와 신도들을 일일히 찾아다니며 설득했다고 합니다.
서명을 받기도 했다는 말을 여기에서 오래 지낸 한 성당 교우에게서 듣기도 했습니다.
그 분이 뭐라고 설득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이 분의 주요 활동 이력 가운데 종군위안부 재판을 지원하는 기금 설립에 앞장섰다는 내용이 있는 것을 보면 아마도 가돌릭의 형제애에 더해서 한국에 대한 그분 나름의 특별한 관심과 애정도 있지 않았을까 미루어 짐작하고 있습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고 김수환 추기경과 이 분의 각별한 우의도 한인성당이 일본을 대표하는 카테도랄 성당 안에 자리는 잡는데 도움이 됐다고 합니다.
야스나리君.
특정 종교에 관련된 이야기이긴 하지만 한국과 일본, 일본과 한국이 평화롭고 우애있게 지내는 곳, 말 그대로 공존공영하는 것이 도쿄 한 복판에 있는 셈입니다.
그리고 그 공존공생의 자리를 마련하는데 애쓴 분이 시라야나기 추기경입니다.
사실 이 글은 일본 청년 야스나리군보다는 한국인들에게 먼저 읽혀졌으면 좋겠습니다.
병마와 싸우고 계시는 그 분을 위해 기도해달라는 당부의 글이 한인성당 주보에 몇 달째 실려있습니다만 종교를 떠나서 한국과 일본의 진정한 우정과 이해를 위해 평생 애쓰신 그분의 건강을 한일 두나라 국민 모두가 한 마음으로 기원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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