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의 위대한 발명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컴퓨터, 비아그라, 페니실린, 비행기, 나일론 등등 우리 생활을 획기적으로 바꿔놓은 많은 발명품이 있죠.
그러나 사회 모든 분야에 영향을 끼치면서 새로운 시대를 연 것이라면 뭐니뭐니해도 '인터넷'이 아닐까 합니다.
인터넷.
이젠 너무도 당연한 우리 생활의 일부분이 돼버렸죠.
근데 이 인터넷은 태생적 한계가 있습니다.
그 한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건이 지난 7월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DDoS 사건입니다.
포털이 다운되고 인터넷 뱅킹도 안 되고 청와대와 국정원 웹사이트까지 공격했던 그래서 때아닌 북풍 논란까지 일어났던 사건, 마치 전쟁이라도 벌어진 듯한 분위기였죠.
언론은 매일 대서특필하고 수사기관들은 합동 회의를 하고…. 과연 북한의 해커부대 소행이 맞을까요??
공격한 사람이 '내가 그랬소'라고 떠들지 않는한 역추적을 통해 그 실체를 가리는 건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인터넷이 기본적으로 그렇게 설계돼있기 때문입니다.
인터넷은 말 그대로 다양한 네트워크를 연결해 만든 네트워크의 네트워크입니다.
그런데 명시적인 구조를 갖고 그에 따라 발전한 게 아니라 몇몇 기본 아이디어 아래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지속적으로 확장돼 왔습니다.
따라서 현재 인터넷은 처음 설계했던 사람조차도 전체 구조를 파악하는 게 불가능합니다.
즉 인터넷의 구조가 완벽하게 '통제 불가능'의 상황에 있는 겁니다.
그렇기에 디도스 공격을 감행한 일당을 찾는 거는 여러차례 돈세탁을 거친 검은 돈을 찾는 것과 비슷합니다.
물론 이런 구조적 특성이 인터넷의 가장 큰 힘이기도 합니다.
69년 10월 29일 두 대의 컴퓨터를 이어 처음 '인터넷'이란걸 구현해낸 레너드 클라인락 교수는 인터넷의 힘이 '각 개인의 창의력을 공유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낸 것'이라고 했는데요.
이런 장이 마련될 수 있었던 건 인터넷은 '통제가 없는 곳'이라는 설계 철학이 있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7월의 디도스 사태에서도 볼 수 있듯 인터넷이 사회 인프라로 발전하면서 현재의 구조는 좀 문제가 있다는 인식이 생겼습니다.
설계 당시에는 연구용이었으니 모든 사용자를 '신뢰할만한 사람'으로 가정하고 설계했는데 사회 인프라가 되면서 디도스 공격이나 하는 '신뢰할 수 없는 놈'들도 자유롭게 노는 곳이 됐지만 구조적으로 이들의 놀이터가 되는 걸 방치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니 뭔가 개선이 필요한 셈이죠.
또, http 일변도에서 벗어나야할 필요성도 나왔습니다.
사실 지금 우리가 쓰는 인터넷은 http 기반이라고 보면 됩니다.
주소창을 보세요.http;// 이 꼭 들어가죠? 하지만 인터넷에 http, 즉 하이퍼텍스트만 있는건 아닙니다.
ftp도 있고요. IPTV, VoIP 등 다양한 응용이 있고요.
센서 기술이 발전하면서 네트워크가 엄청나게 커버렸고, 유선 뿐 아니라 무선 구간에 대한 수요도 계속되죠.
설계자들조차 꿈도 못 꿨던 '전자상거래'가 우리나라에서만도 지난해 630조 원이나 이뤄졌을만큼 시장이 커지면서 그에 맞는 보안성과 신뢰성도 갖춰야하죠.
현재의 인터넷으로도 물론 잘 써왔지만, 기본 구조는 놔둔채 땜질 처방만 계속 한 셈이니 근본적으로 구조 자체를 뜯어고쳐 이런 문제들에 대응하자는 논의가 생긴거죠.
이른바 '미래 인터넷'에 대한 논의입니다.
미국에서 가장 먼저 논의가 시작됐고요.
www를 처음 만들었으면서도 미국에 인터넷의 주도권을 완전히 뺏긴 유럽도 뒤질새라 열심입니다.
우리나라도 물론 열심히 논의하고 있고요.
'미래 인터넷'의 결정적인 화두는 '맞춤형 인터넷'입니다.
인터넷의 발전이 소수의 기술자가 아니라 다양한 사용자들의 창의력에 기반해 이뤄졌다는 것을 인정하고, 앞으로 더욱 다양해질 사용자들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선 사용자 각각이 자기가 원하는 인터넷의 구조를 디자인해 쓸 수 있는 유연한 맞춤형 인터넷 구조를 만들어보자는 거죠.
말이 조금 어렵죠?
현재의 인터넷 장비들은 처음 나올 때 설계된 기능만 수행할 수 있는 하드웨어죠.
그런데 이걸 소프트웨어로 통제할 수 있다면 사용자가 원하는대로 보다 손쉽게 수정하며 사용할 수 있겠죠.
이렇게 되면 인터넷의 원래 정신인 자유로움을 살리면서 디도스 사태같은 일을 근본적으로 막을 수 있는 두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습니다.
즉, 각자의 목적에 따라 네트워크를 다르게 설계하는 거죠.
활발한 정치적 토론이 일어나는 게시판이 있는 네트워크나 싸이월드 같은 인간 관계를 관리하는 네트워크는 개방적이고 자유로운 현재의 구조를 그대로 유지하되 보안성과 신뢰성이 더욱 요구되는 금융기관이나 공공망은 보다 엄격한 보안성을 가진 네트워크를 꾸미는거죠.
지금도 그렇지 않냐?라고 반문하실 수 있는데요.
현재는 똑같은 인터넷 구조 아래서 이런 저런 장치를 해서 보안성을 꾀하는 것이고 미래 인터넷은 아예 구조적으로 해결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이런 예도 가능합니다.
어린 학생들을 인터넷의 음란물이나 적절하지 못한 정보에서 지켜주고 싶다고 했을 때 현재는 사실상 불가능하죠.
하지만, 미래 인터넷은 어린 학생들이 갈 수 있는 네트워크 자체를 따로 만들어서 부적절한 정보가 아예 유통되지 못하도록 원천 차단해버리는 겁니다.
이렇게 다양한 네트워크들의 네트워크로 인터넷을 꾸리는 겁니다.
인터넷이 사회 패러다임을 아예 바꿀 수 있었던 건 인터넷 안에만 들어온다면 누구나 쉽게 정보에 접할 수 있었던 구조 때문인데요.
다양성과 편의성을 추구한다는 '미래 인터넷'이 이런 흐름을 계속 이어갈 지, 아니면 현재 인터넷에서 힘들었던 인터넷에서의 계층화를 가속화할 지 아무도 알 순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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