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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청년 야스나리君에게 (3)

국민이 배제된 '그들만의 정치' 이루어지는…'정치부재의 일본'

윤춘호 특파원의 도쿄 다이어리
오늘 일본 중의원이 해산됐습니다.

 

7월 21일 오늘은 일본 현대사에서 격변의 첫날로 기록될 것입니다.

의원내각제를 채택하고 있는 일본에서 중의원 해산과 총선거는 가장 큰 정치적 행사입니다. 중의원 선거 결과에 의해 집권당과 총리가 결정되니 한국으로 치면 대선과 총선을 더한 의미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번 중의원 해산은 지난 2005년 중의원 해산 이후 4년 만이고 2차대전 이후 21번째라고 합니다.

 

야스나리君.

저는 오늘이 일본 정치에서 격변의 첫날이 될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이번 선거를 통해 자민당의 54년 장기 집권이 붕괴될 것이라는 점과 새로운 인물들의 대거 등장을 통한 일본 정계의 세대교체 가능성을 염두엔 둔 표현입니다.

정권이 바뀌고 사람이 바뀐다!

저는 이것을 격변이라고 표현했고 4년 묵은 중의원이 해산된 오늘은 그 변화의 첫날이 될 것이라는 것이지요.

일본 정치의 격변의 첫날, 저는 야스나리군에게 일본은 '정치부재의 국가'라고 말하고자 합니다.

격변의 첫날이라 규정한 뒤 느닷없이 일본에는 정치가 없다고 단언하는 것이 모순처럼 느껴질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일본에는 정치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일본에 물론 '정치'가 있습니다.

신문은 말할 것도 없고 방송도 국회의 주요 움직임은 물론 수상의 작은 동정 기사까지 매일 보도합니다. 신문의 경우 수상의 일정을 분 단위까지 매일 상세히 보도합니다.

언론이 뉴스를 취급하는 비중으로 보면 정치 과잉이란  평을 듣고 있는 한국과 비교해도 일본 언론의 정치 뉴스 우선은 한국 언론에 지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일본은 정치 부재 사회라고 말하는 것은 평범한 일본인이 일상에서 그렇게 느낄 것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이지요.

지난 12일 도쿄도의회 선거가 있었습니다.

선거 운동 기간 후보자들의 가두 연설로 도쿄 시내가 떠들썩했습니다. 그런데 선거 운동은 후보자들만의 행사였습니다. 마이크를 통한 선거 방송은 떠들썩한한데 거기에 귀 기울이는 유권자는 없습니다.

후보자들의 유세를 듣기 위해 걸음을 멈추고 후보자들의 주장을 듣는 사람은 적어도 제 눈으로 본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혼자서 목이 터져라 유세를 하는 후보자가 하도 안돼 보여서 나라도 그 앞에 가서 좀 들어줄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정치적 비중이 크지 않은 지방의회 선거라서 유권자들이 무관심했을지도 모른다구요?

아닙니다. 재작년 있었던 참의원 전국 선거 때도 똑같은 풍경이었습니다. 장담컨대 이번 중의원 선거 때도 선거 유세는 후보자들과 몇몇 운동원들의 잔치가 될 것입니다.

물론 후보자들의 가두 유세에 귀기울이는 유권자들이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정치부재라고 단언할 수는 없습니다.

지난 번 도쿄도의회 선거 투표율은 54%였습니다. 높은 투표율은 아니지만 유세장의 한산한 분위기에 비하면 낮은 투표율도 아닙니다. 지방의회 선거라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한국 지방선거 투표율이 50%안팎인 점을 감안하면 유권자들의 선거 참여가 상당하다는 뜻으로 풀이될 수 있겠습니다.

정치권의 움직임이 언론을 통해 소상하게 전해지고 있고 유권자들의 투표율이 상당하고 정치인들의 움직임도 활발하다면 그 사회에 정치가 없다는 단언은 지나친 것일 겝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일본에는 정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일본에서 지낸 약 3년 반 동안 일본 수상이 세 번 바뀌었습니다.

고이즈미-아베-후쿠다-그리고 아소 총리까지 4명을 겪었습니다.

이 가운데 국민의 심판을 통해 최고 권좌에 오른 사람은 고이즈미 총리뿐입니다.

나머지 세 명은 당내 경선을 통해서 자민당 총재가 된 뒤 원내 1당 총재 자격으로 총리 자리에 오른 것입니다.

내각제 국가라는 점을 십분 감안해도 국민의 의사를 묻는 절차를 거치지 않고 세번씩이나 최고 권좌를 주고 받는 과정에서 국민의 존재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런 현상을 정치 제도의 결함이나 지도자들의 양식으로 해석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으나 저는 일본 특유의 '정치 부재'가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일본에 있는 동안 총리가 된 인사들의 면면을 한 번 볼까요.

모두 세습 정치인입니다.

아베, 후쿠다, 아소 총리는 모두 할아버지나 아버지가 수상을 지낸 인물입니다. 그것도 2차 대전 이후에 총리를 지낸 인물들을 아버지나 할아버지로 두고 있습니다. 정치가 가업인 인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이즈미 전 총리도 부친이 중의원과 대신을 지냈습니다.

다음 중의원 선거에서 민주당이 이긴다면 54년만에 정권 교체의 주역으로 차기 총리가 될 하타야먀 민주당 대표도 할아버지가 총리를 지냈습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절망을 느낄 것 같습니다.

'정치는 그들만의 것, 나와는 관계없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격변이 시작됐다고 서두에 말했지만 일반 국민들과는 상관 없는 '그들만의 격변'이 시작된 것은 아닐까요.

국민이 배제된 그들만의 정치가 이루어지는 곳, 그것을 저는 '정치부재의 일본'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런 국민 부재의 정치를 일반 국민들이 추인하고 있는 점이 저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부분입니다.

법적, 제도적으로 완벽한 민주국가인 일본에서 한 정당의 반세기가 넘는 일당집권이 가능하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자민당의 역사를 보면 부패와 부정와 무관할 수 없는 파벌 정치의 역사이고 수많은 흠결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 국민들은 지난 55년 동안 언제나 자민당을 원내1당으로 선택했습니다.

일본인 같은 선진민주국가의 국민들의 정치의식이 낮다고 말할 수도 없고...

도대체 이런 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이렇게 쓰고 나니 지금은 민주당 지지율이 자민당의 두배를 넘는다고 하지만 다음달 30일 일본 국민들은 다시 자민당을 선택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편집자주] 일본 사회를 관통하는 깊이있는 시각과 연륜이 느껴지는 윤춘호 기자는 2007년부터 SBS 도쿄 특파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1991년 SBS 공채 1기로 입사해 사회부와 정치부, 국제부 등에서 일했고 특히, 북한 관련 취재와 통일안보분야, 국회 정당팀에서 오랜 기간 활약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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