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존파'란 이름도 제가 지었어요. 34년 청춘을 경찰에 다 바쳤지요."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지존파' 사건을 비롯해 굵직한 강력사건을 해결하며 이름을 날린 베테랑 형사였던 혜화경찰서 고병천(60) 경정의 말이다. 그는 34년간의 경찰 생활을 뒤로하고 지난달 30일 정년퇴임했다.
허리 디스크 수술로 병원에 입원 중인 고씨는 12일 기자와 만나 "긴 세월 경찰에서 일하며 때로는 고뇌에 빠지기도 하고 보람을 느끼기도 했다. 경찰 일을 계속하게 해준 모든 이들에게 고마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28살에 경찰에 투신한 그는 `온보현 택시 살인사건', `앙드레김 권총 협박 사건' 같은 엽기적인 강력 범죄를 수두룩하게 해결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으로는 6명의 조직원이 부유층을 골라 잔인하게 살해했던 `지존파 사건'을 꼽았다.
고씨는 "강력반장으로서 직원들을 독려해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나 자신도 큰 충격을 받았다. 지금은 `사이코패스'라는 말도 널리 퍼졌고 살인범들의 심리에 대해 많은 연구가 진행됐지만 당시로선 나도 이들의 범행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다"라고 당시를 떠올렸다.
그는 "사건을 추적하는 내내 일종의 처절함을 느꼈다. 그들은 1인당 10억원이라는 목표를 달성하려고 밥값 말고는 일절 지출을 하지 않을 정도로 돈에 집착했던 사람들"이라며 "지존파 사건은 세간에 알려진 것보다 더 애절하고 슬픈 사건"이라고 평했다.
고씨는 `지존파'의 이름이 탄생한 내역도 들려줬다.
"원래 일당은 자신들의 조직을 `야망'이라는 뜻의 희랍어 `마스칸'으로 불렀습니다. 하지만 야망을 위해 타인을 희생시킨다는 뜻으로 읽혀 제가 바람직하지 않다고 판단해 이름을 바꿔 버렸죠. 당시 무협지가 유행하던 때라 `지존파'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치열했던 범죄 현장을 추억속에 남겨두고 떠난 고씨는 현재 경찰 수사연수원에서 한 달에 한두번씩 강연을 하며 후배들에게 자신의 경험을 물려주는 등 아직도 마음은 경찰에 있다.
고씨는 "최근 경찰이 국민의 신뢰를 잃었다는 말도 들리지만 무엇보다 부조리와 손을 끊고 정의의 편에서 묵묵히 일하면 자연히 신뢰도 돌아오고 경찰로서 자부심도 느낄 수 있을 것"이라며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후배들이 돼 줬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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