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이상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는 근로자들은 비정규직 보호법에 따라 자동적으로
정규직으로 전환됩니다. 기업이 정규직 전환을 막으려면 이들을 해고해야 합니다. 법 적용을 유예하자는 개정안이 정부와 한나라당에 의해 추진되고 있지만, 시한인 7월 1일을 넘겼습니다. 이날 SBS 뉴스는 정치권이 해고대란을 불러온 데 대해 반성해야 한다고 분석했습니다. 이와 같은 논조는 SBS 뉴스에 일관되게 나타납니다.
SBS 뉴스는 하루 전인 6월 30일에도 여야의 정치력 부족으로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대량해고의 위험으로 내몰리게 됐다고 비판했습니다. 현행법 아래에서는 비정규직의 대량해고가 불가피하고, 대량해고의 큰 책임은 현행법의 개정을 한사코 저지하려는 야당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는 주장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근본적인 의문에 부닥칩니다. 해고대란이 올 것인가, 그리고 대란이 온다면 그 책임은 정치권에 있는가 하는 의문입니다. 해고대란 걱정은 기업이 정규직 전환보다는 해고를 선호할 것이라는 점을 불변의 조건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옵니다. 그러나 정규직 전환이냐 해고냐 하는 갈림길에서 기업의 선택은 경우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날 것입니다. 합리적인 선택을 하는 기업이라면 업무에 꼭 필요한 근로자를 정규직 전환을 피하려고 해고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반면에 정리해고의 대상은 비정규직 보호법과 관계없이 해고할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기업이 당장 꼭 필요한 근로자라고 해도 7월 1일 이전처럼 다루기 쉽고 비용이 덜 드는 비정규직 상태로 두기를 원한다는 점입니다.
이 법이 그대로 적용되면 대량해고 사태가 일어날 것이라는 언론의 전망은 기업의 다양한 대응을 고려하지 않은데서 왔습니다. 두 번째 의문은 해고대란의 책임은 정치권에만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적절한 대책을 내놓지 못했다는 점에서는 정치권은 무한책임을 져야 합니다. 반면에 국회가 비정규직 보호법 개정안을 제때에 통과시키기 못했기 때문에 대량해고를 막을 수 없게 되었다는 주장은 논리적 비약입니다. 이번 개정안은 기업의 근로자 해고를 막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정규직 전환이냐, 해고냐 하는 기업의 선택을 일정기간 유예하자는 것일 뿐입니다. 개정안과 상관없이, 현행법이 비정규직의 대량해고로 이어지지 않도록 개입하는 일차적인 책임은 정부에 있습니다. 또한 개정안 불발이 곧 대량해고라고 단정 짓는 언론도 책임의 일부를 떠맡을 수밖에 없습니다.
언론은 비정규직법 파동을 보도하면서 이 법의 적극적인 측면을 부각시키지 않았습니다. 법이 잘 운용되면 비정규직의 상당수가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길이 열린다는 부분입니다. 언론은 반대로 대량해고 위험이라는 법의 부작용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 결과 언론은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기업이 이 법의 적용을 사실상 유예하거나 무력화시킬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 조성에 기여하고 있는 셈입니다.
지난 6월 24일 SBS 뉴스는 우리나라의 사회갈등지수가 0.71이라는 삼성경제연구소의 분석을 보도했습니다. OECD 27개 회원국 가운데 4번째로 높은 지수였습니다. 뉴스는 높 은 갈등지수의 사례로 구조조정을 둘러싸고 한 달 이상 멈춰선 쌍용자동차 생산라인, 4대강 살리기를 놓고 벌어진 정부와 환경단체의 논쟁, 그리고 노·사·정·여·야가 타협점을 찾지 못하고 있는 비정규직법 개정안 등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연구소가 설명하는 사회갈등지수는 의미가 달랐습니다. 소득불평등과 민주주의 성숙도 등을 수치화해서 만들었다는 설명입니다. 분석 결과 한국은 소득불평등 정도는 중간이었지만, 민주주의 성숙도는 꼴찌였다는 것입니다. “사회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갈등도 가끔씩은 필요하다”는 앵커의 클로징 멘트는 사회갈등으로 표출되는 이해관계자들의 충돌빈도와 사회갈등 자체를 혼동하고 있음을 드러냈습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사회적 갈등의 뿌리를 소득불평등과 민주주의 미성숙에서 찾고, 해결의 열쇠도 정부가 쥐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SBS 뉴스는 이해관계자들의 충돌을 부각시킴으로써 책임소재를 불분명하게 만들고 말았습니다.
SBS 뉴스는 한동안 쌍용차 사태에 대해 소극적인 보도로 일관했습니다. 그러나 6월 26일 정리해고에서 살아남은 임직원 3천여 명과 공장에서 농성중인 정리해고 대상 근로자 1천여 명 사이의 이른바 노-노 충돌 상황은 상세히 보도했습니다. 노사문제도 사건 중심으로 보도하는 언론의 관행 그대로였습니다. SBS 뉴스는 6월 26일과 28일 쌍용차의 회생가능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매출 손실이 누적되고, 영업망이 붕괴되는 상황에서 점거 농성을 오래 끌면, 법원이 쌍용차의 회생절차를 중단시킬 수 도 있다는 것입니다. 쌍용차 파산의 책임이 결국 농성사태에 있다는 점을 암시하는 보도였습니다. 언론은 파산이냐 회생이냐 하는 쌍용차의 운명이 농성사태에 달려 있다는 결론을 내리기에 앞서 정부가 쌍용차 지원의 조건으로 내세운 구조조정이 유일한 해법인가 하는 점을 검증했어야 합니다.
쌍용차 사태의 핵심은 뉴스가 강조하듯이 쌍용이 정부가 요구하는 대량 정리해고를 할 수 있느냐 아니냐가 아닙니다. 그것은 1천명의 동료들을 희생시키고, 살아남은 3천 명이 정부지원을 받아내느냐, 아니면 4천 명 전원이 허리띠를 졸라매면서 함께 살기로 결의하고 정부지원을 받는 길을 선택하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사태의 핵심을 놓치지 않는 뉴스를 기대합니다.
[뉴스비평] 비정규직법 개정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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