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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고곤의 선물'

아무런 정보가 없어도 보고 이해 할 수 있는 연극이 있는가 하면 - 비단 연극만은 아니겠지만 - 때론 작품을 이해하는데 일정 정도의 지식을 필요로 하는 연극이 있다. 물론 사전 지식이 없어도 느낄 수는 있지만 영국의 극작가 피터 쉐퍼의 작품 '고곤의 선물'은 알고 보면 더 깊이가 느껴지지 않을까 싶다. 피터 쉐퍼는 '에쿠우스''아마데우스'를 쓴 유명한 극작가이다. 그리고 '고곤의 선물'은 그가 지난 1992년에 발표한 희곡으로 그의 역작이라고 평가 받고 있다. 

먼저, 이 작품의 줄거리는 간단하다. 에드워드 담슨이라는 극단적 예술주의 극작가가 사망한 후 한 남자가 미망인 헨렌을 찾아온다. 이 남자는 담슨의 유일한 아들로 젊은 시절 우연히 생긴 자식이지만 생전 한 번도 보살피지 않은 아들이었다. 희곡 전공 교수인 아들은 아버지의 평전을 쓰고 싶어서 헨렌에게 허락을 구하지만 헨렌은 쉽게 허락하지 않다가 돌연 마음을 바꿔 반드시 출판을 해야 한다는 조건으로 에드워드 담슨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녀는 세상이 잘 모르는 에드워드 담슨의 폭력적 극단성을 낱낱이 얘기하고 그 과정에서 그녀가 남편을 얼마나 좋은 방향으로 도와줬는지, 그렇지만 결국엔 자신의 극단적 예술주의를 주장하고 자신과 갈등을 일으키다 자살을 선택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헨렌의 말을 들은 아들은 아버지의 명예를 훼손할 이 숨겨진 이야기를 도저히 출판하지 못하겠다고 하고 헨렌은 반드시 에드워드 담슨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을 알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헨렌은 그것이 자신이 담슨에 대한 복수라고 울부짖고 그 과정에서 담슨의 죽음을 담보로한 치밀한 계산에 더욱 치를 떤다. 연극은 헨렌이 그녀의 평소 주장대로 복수하지 않기로 결심하면서 끝을 맺는다.

피터 쉐퍼는 이 작품을 통해 인간의 신념에 대한 화두를 던졌다고 나는 본다. 작품에서 에드워드 담슨은 '피의 복수'가 진정한 정의라고 주장하고 반면 헨렌은'평화'라고 반박한다. 두 극단의 개념을 대립시켜 놓고 이를 담슨과 헨렌이라는 부부로 구체화 시켰다. 담슨은 헬렌의 도움을 받으며 희곡을 완성한다. 그리고 작가는 다시 담슨과 헨렌의 상징물로 그리스 신화 속 인물인 페르세우스와 아테네 여신을 등장시켰다. 페르세우스는 아테네 여신의 도움을 받아 고곤이라는 괴물 - 메두사로 이해하면 무리가 없다 - 을 죽인 신화 속 영웅이다. 작가는 이렇게 담슨 부부와 희곡 그리고 페르세우스, 아테네 여신과 고곤이라는 등치되는 상징물을 놓고 현실과 신화를 오가며 복수와 평화에 대한 신념 이야기를 펼친다.
 
그리스 신화에서 페르세우스는 고곤을 죽인다. 하지만 극중에서 페르세우스는 아테네 여신의 도움을 받아 고곤을 죽이기 전까지 가지만 결국에 그는 아테네 여신의 도움을 거부하며 고곤을 죽이지 않는다. 에드워드 담슨은 초기 헬렌의 조언을 받아들여 희곡을 완성한다. 하지만 마침내는 자신의 예술적 정의 - 피의 복수 -를 포기하게끔 하는 헬렌의 조언을 거부한다. 결국 극중극 형식으로 나오는 그리스 신화는 즉 담슨과 헬렌의 생각의 변화를 상징하는 이야기다.

극 후반부, 담슨과 헬렌은 작품의 완결을 놓고 다툰다. 물론 피의 복수를 해야한다는 담슨과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헬렌의 주장이 부딪힌다. 술에 취한 에드워드 담슨은 헬렌이 자신을 면도칼로 난도질하게 만든 뒤 알몸인 상태로 절벽으로 투신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극의 핵심은 이 마지막 부분에 있다. 담슨은 그렇게 몸을 던져 그의 부인 헬렌에게 피의 복수가 곧 정의라는 것을 보여준다. 왜? 헬렌은 담슨의 의도대로 희곡이 완성돼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고 그리고 그것을 막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담슨을 난도질 하던 그녀의 모습은 바로 그녀에게 내재된 폭력성이며 담슨은 그 폭력성을 그녀로부터 끄집어 냄으로써 자신이 주장하는'피의 복수' 즉 폭력적 복수가 정의임을 그녀가 인정하게끔 했다.

헬렌은 처음 담슨의 이런 이야기를 말하지 않으려다 돌연 마음을 바꿔 세상에 알리려 했다. 순간 그녀는 죽음으로써 자신의 주장을 끝까지 밀어붙인 담슨에 대한 복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복수 역시 '평화'를 주장하던 자신의 신념에 배치되는 즉 담슨의 주장에 동조하게 된다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 결국 그녀는 그 복수를 포기함으로써 자신의 원래 신념을 지킨다.

연극은 두 사람을 놓고 신념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렇다면 작가가 제목으로 한 고곤의 선물은 무엇일까?  고곤을 세 자매 괴물이다. 그중 으뜸이라 할 수 있는 게 바로 메두사다. 메두사는 그녀를 보는 사람을 돌로 만들어 버린다. 페르세우스는 아테네 여신의 도움으로 투영의 방패를 얻어 메두사를 직접 보지 않고 방패를 통해 봄으로써 괴물을 죽일 수 있었다. 고곤의 머리를 베면 두 가지 피가 나온다. 하나는 독이 되는 피요, 또 하는 생명을 살리는 피다. 고곤은 생과 사를 동시에 안고 있는, 즉 복수와 평화를 동시에 안고 있는 괴물이다. 그것이 고곤이다. 작가는 아마 그것이 현실이자 진실이라고 보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서 작가는 인간은 오직 투영의 방패를 통해서만 진실을 볼 수 있다고 말한다. 또 작가는 말한다. 연극은 죽었다고. 담슨의 입을 통해 거울을 통해서만 진실을 볼 수 있다고 말하고 그 진실을 볼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인 연극의 죽음을 말한다. 그리고 이런 말도 한다.

"사람들은 연극이 필요 없다고 하지. 영원하리라고 생각했던 관객들이 그렇게 돌아선 거야.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어. 그들 모두 지금 스크린 속에 홀딱 빠져 있어. 자신의 영혼이 강간당하고 굶어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하면서 말이야. 상상력도 없는 일차원적인 어둠의 날개가 온 지상을 뒤덮고 있어"

극중에서 고곤은 예술적 지향점 또는 그 반대로 예술을 위해서는 죽여야 할 대상이자 현실이고 진리다. 나는 고곤이 저마다의 신념이고 그 신념은 동시에 모순된 두 가지 개념을 안고 있다고 본다. 그것이 현실 아니겠는가. 그래서 나는 생각한다. 그것이 고곤이 주는 선물이라고.'너 자신을 보라'

이 연극을 보면서 나는 다시 한 번 아리스토텔레스를 생각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연극은 삶은 투영한 모방이라고 했다. 연극이 곧 우리네 삶이다. 어쩌면 피터 쉐퍼는 갈수록 기울어가는 연극의 현실을 말하기 연극이란 무엇인지를 이 극을 통해 보여주고자 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인간은 오직 투영의 방패, 현실을 비춰주는 거울 즉 연극을 통해서만 진실을 볼 수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고 본다.

끝으로 이 작품의 연출역시 상당히 뛰어났다고 본다. 현재와 과거가 교차되는 장면들을 - 영화로 치면 현재에서 플래쉬 백으로 넘나드는 장면들 - 무대 위에서 자연스럽게 그려낸 점이며, 여신의 말을 앙상블들의 합창으로 표현해 울림과 권위를 표현해 낸 점이며, 조명을 통해 공간을 나눠 쓴 점 등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끝>

  [편집자주] 문화부에서 영화.연극.뮤지컬 등을 담당하는 주시평 기자는 오랜 공연예술.문화 분야 취재 경험으로 통찰력있는 문화 비평 기사들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1997년 SBS 보도국에 입사한 뒤 사회부와 정치부, SBS스페셜 등을 거치며 긴 호흡의 제작을 선보였습니다. 특히, 뮤지컬 분야에 대한 깊은 전문성으로 좋은 정보들을 보내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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