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정대는 마지막 캠프에서 정상까지 가는데 14시간 20분의 사투를 벌였다.
거의 완전 탈진 상태였다.
정상에 오르고 이틀이 지난 22일 베이스캠프 도착 예정이었다. 점심 시간이면 내려올 수 있을거라 다들 생각했는데 2시가 다 돼서야 도착했다.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베이스캠프에 있던 많은 원정대가 다 비슷한 때 정상에 올랐기 때문에 꾸물거리다간 철수하기도 힘이 든다. 베이스캠프까지 가져온 수많은 장비들을 내리려면 짐을 실을 야크가 필수적인데 서두르지 않으면 야크 가격이 확확 뛴다.
생각보다 철수는 신속했다.
3년에 걸친 도전에서 성공했기 때문인지 박 대장은 매우 기분이 좋아보였다.
루크라까지 8일에 걸쳐 올라온 길을 걸어 내려갈 땐 3일을 잡는다. 엄청난 강행군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헬기를 빌리기로 했다. 성공한 덕분이다. ^^
헬기 비용은 만만치 않았다.
베이스캠프까지 부르려면 16000$. 그나마 2명밖에 타지 못한다. 높은 곳이라 양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5명까지 타려면 4300미터 페리체까지 내려가야했다. 박 대장이 이래저래 딜을 해서 7500$에 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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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아침, 한국의 원정대 사무실에서 위성전화가 걸려왔다.
한국이 난리가 났다며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살했다는 소식을 전해줬다.
한국에서도 그랬겠지만 처음엔 아무도 믿지 않았다.
성공했더니 만우절도 아닌데 별 농담을 다 한다 싶었다.
근데 그게 아니었다. 사실이었다.
쿵...하는 충격이 밀려왔다.
그 한 달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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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베이스캠프를 떠났다.
셀파들이 남아 마무리를 하고 내려오기로 했다.
고락셉, 로브제...
올라갈 때 그렇게 힘겹게 올라갔던 길들인데 내려가는 발걸음은 가볍기만 했다.
가끔씩 나오는 언덕길 앞에서 숨을 헐떡거리며 지친 표정으로 쉬고 있는 올라가는 트래커들에게 나는 반갑게 '나마스떼~'라고 인사해줬다.
"ㅋ 나도 한 달 전에 그렇게 힘들었었지...좀만 참으면 오르막길 끝나니 힘내쇼~"
내가 저 길을 어떻게 올라갔을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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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오면서 우리는 모두 하늘의 동향만 살폈다.
하늘이 심상치 않았다. 좀처럼 구름이 걷히질 않았다.
숙소로 잡은 4380미터 딩보체 거의 다 와선 앞이 보이지 않을만큼 짙은 안개가 꼈다.
더 큰 문제는 안개가 물방울들의 모임이라는데 있었다.
우리는 안개를 뚫고 내려가야 했기에 안경에 물방울이 맺히면서 안 그래도 앞을 보기 힘든데 더욱 앞을 볼 수 없었다.
'아...역시 나에게 헬기는 사치품이란 말인가...'
사흘 열심히 걸어서 살 빼는 것도 나쁘진 않지만...그래도 얼른 돌아가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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딩보체엔 박 대장이 20년 가까이 친분을 맺어온 셀파 친구 '펨바'가 하는 롯지가 있다.
박 대장이 이번엔 성공했다고 하자 펨바는 오늘 저녁은 자기가 쏘겠다고 했다.
따로 주문하지 않아도 감자 조림과 야크 스테이크가 무제한으로 나왔다.
특별히 담은 김치도 있었다.
술도 특별히 준비해둔 것이라며 샴페인과 양주를 계속 내줬다.
4300미터에서의 양주라 과연 저게 제대로 된 술일까란 생각이 들기도 했다.
참 재밌는게 히말라야 산중에도 술집이 있다. 4300미터 쯤엔 셀파들을 상대로 하는 술집이 있다. 셀파 아가씨들이 술을 내준다고 한다.
그래서 베이스캠프에서 일하는 셀파들이 저녁 무렵 여기까지 1000미터를 내려와 술을 마시고 밤에 헤드랜턴을 키고 다시 베이스캠프로 올라간단다.
심지어는 티벳쪽 베이스캠프에도 술을 파는 찻집이 있단다. 티벳쪽은 베이스캠프까지 차가 갈 수 있는 도로가 닦여 있기 때문이다.
셀파들은 '렉시'라는 막걸리 비슷한 술을 즐겨 마신다. 그런데 이곳 히말라야에서 유통되는 렉시 중엔 당국에 의해 유통이 금지된 것들이 다수 있었다. 또 가짜 술도 심심찮게 돌아다녔다. 심지어는 가짜 담배도 있었다.
그래서 내가 베이스캠프에 머무는 동안 가짜 술을 마신 셀파 1명이 죽고 1명이 중상으로 헬기에 실려가기도 했으며 가짜 담배를 피우다 2명이 실명했단 소문이 나돌기도 했다.
한참 술잔이 돌고 있을 때 펨바는 멋진 케이크를 만들어왔다.
그렇게 저녁 5시부터 새벽 2시 반까지 기나긴 자축 파티가 이어졌다.
날이 개면 아침 일찍 언덕 하나를 넘어 페리체로 내려가 헬기를 타는 거고 헬기가 못 뜨는 날씨면 푹 자고 걸어내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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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4시 반... 원정대가 잠을 깨웠다.
날이 갠 걸까?? 거짓말 같이 하늘은 맑아져있었다.
11kg이나 되는 짐을 메고 낑낑거리며 언덕을 넘었다.
헬기가 온다지 않는가...
저 멀리 보이는 '아마다블람'이 그렇게 예뻐보일 수 없었다.
한 달전 고산병에 쓰러졌던 페리체...
그땐 정신이 없어 제대로 구경도 못 했는데 이제 보니 히말라야의 설산들은 너무도 아름다웠다.
'아 드디어 한동안 너무도 익숙했던 이곳과 헤어지는구나...'
설산과 한껏 짐을 실은 야크들 그들을 부리는 셀파들...
그 낯익은 풍경들이 새삼 감동적으로 다가왔다.
그동안 못찍었던 히말라야의 풍경을 카메라에 담느라 바빴다.
헬기는 쉴 새없이 오갔다.
전날까지 날씨가 안 좋아 모두 발이 묶여 있다 이제 모두들 자신의 터전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3시간을 기다려 헬기를 탈 수 있었다.
헬기는 페리체 길 한복판에 앉았다.
루크라까지 이틀에 걸려 내려갈 길을 15분만에 내려왔다.
네팔 사람들은 비행을 할 때마다 목에 노란 천을 매달아줬다.
행운을 기원하는 의미라며...
끝내며...
히말라야에 간다고 했을 때 난 '오지'라는 생각을 제일 먼저 했다.
물론 히말라야는 서울과는 딴판인 곳이다.
하지만 박영석 원정대처럼 산악인만 갈 수 있는 곳은 아니다.
물론 정상까지 가려면야 많은 훈련과 적응이 필요하지만 베이스캠프까지 다녀오는 것은 시간만 충분하면 누구나 할 수 있다.
출장 기간 중간 중간 때론 너무 몸이 힘들기도 했고 때론 너무 시간이 안 가 지겹기도 했지만 왜 많은 이들이 히말라야 트래킹을 '순례'라고 하는지 알 수 있을 것도 같았고 빙하와 설산...그리고 셀파들, 우리 산악인들과 함께 어울릴 수 있었던 건 분명 행운이라고 표현할 수 밖에...
그래서 헬기가 히말라야를 떠날 때 난 정말 속이 시원하면서도 섭섭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안녕~ 초모랑마! 딴네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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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보도국 문화부의 젊은 피, 유재규 기자는 종교계와 대중문화, 문화재 분야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2005년 SBS에 공채로 입사한 뒤 국제부를 거쳐 사회2부 사건팀을 거쳤습니다. 따뜻한 시선과 섬세한 시선으로 현장의 이야기들을 전하는 유 기자는 최근엔 박영석 원정대의 에베레스트 남서벽 도전을 현지에서 동행취재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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