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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마스떼! 초모랑마!] ⑩ 1%의 가능성

매일매일 날씨 동향을 염탐하며 하늘만 쳐다본지 1주일...

갑자기 베이스캠프가 분주해졌다. 눈발이 계속 날리던 날씨가 드디어 좋아진 것. 5월말이 되면 장마가 오기 때문에 사실상 5월에서 딱 한 번 찾아오는 기회였다.

5월 15일 새벽 4시 30분. 모처럼 일찍 눈을 떴다.

베이스캠프에 들어온 지 열흘만에 처음으로 아침 두통에도 시달리지 않았다. 이제 몸까지 편해졌으니 군생활로 따지면 병장이 된 셈인데...

그렇다면 전역이 얼마남지 않았다는 말이 아닌가? 밖은 아직 어둑어둑하고 다시 잠은 안 오고, 혼자 이런 쓸데없는 생각들을 하고 있는데 주변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뭘까??

우리 캠프는 정상으로 가는 첫 관문 6,100미터 캠프 1으로 가는 아이스폴 바로 옆에 있었다. 어느 원정대라도 정상으로 출발하면 우리 캠프 지역 옆을 지나야 하는 셈이다.

나와보니...맙소사...

사람들이 줄지어 아이스폴을 오르고 있다.

아직 어둠이 채 가시지 않아 머리에 매단 헤드랜턴 불빛이 얼음 지대 사이로 줄지어있다.

똑딱이 디카로 찍은 관계로 사진엔 잘 표현되지 않았지만... 하늘엔 쏟아지는 별, 땅에는 헤드랜턴의 행렬, 그 사이론 설산... 장관이었다.

슬슬 날이 밝아온다.

아이스폴을 오르는 사람들이 개미떼처럼 보인다. 엄청난 개미떼가 움직이는 것 같다.

꿈쩍이지 않는 것 같던 상업원정대가 움직이기 시작한거다. 새벽 3시부터 한 팀 두 팀 베이스캠프를 출발했다고 한다.

왜 이렇게 일찍 움직이는걸까?

눈사태 때문이다.

이곳은 일교차가 심하다. 해가 뜨고 날이 따뜻해지면 밤사이에 어설프게 얼었던 눈과 얼음이 녹으면서 산 아래로 무너져내린다. 눈사태는 이곳에서 정말 무서운 일이다.

내가 베이스캠프에 있는 동안에도 아이스폴에서 큰 눈사태가 두세차례 일어났다.

모두 오전 10시를 전후해 일어났다. 한번은 근처를 지나던 다른 원정대 대원과 셀파가 눈사태를 만나 숨지는 사고가 일어나기도 했다.

후폭풍도 장난이 아니다.

엄청난 바람이 텐트를 덮치는데...휴...

이번 봄엔 히말라야에 눈이 예년보다 덜 온 편이라고 하는데 1차 실패 후 원정대가 베이스캠프에 머무는 동안 계속 눈이 쏟아졌기 때문에 아직 단단히 얼어붙지도 않은 상황이다.

눈이 온 직후 다 녹았으면 괜찮지만 조금씩 쌓였을 경우 눈사태가 일어나기 딱 좋은 조건이었다. 그래서 온도가 낮아 아직 눈이 단단히 쌓여있을때 아이스폴을 건너는 것이다.

우리 원정대도 드디어 정상 도전에 나섰다.

정상 도전일은 20일로 정했다.

15일 새벽 5시, 동민이형이 강기석 대원, 셀파 두 명과 함께 선발대로 2차 정상 도전에 나섰다.

16일엔 박영석 대장이 진재창 부대장과 함께 출발했다. 박 대장은 1차 도전 때 오른쪽 다리 근육이 약간 찢어져 내려왔다. 한국으로 박 대장이 자신의 주치의에게 전화해 상태를 물었더니 일단은 압박 붕대로 감고 있고 정상은 올라가지말라고 했단다.

하지만 박 대장은 자신이 올라가고자 하는 의지가 강했다. 결국 원정에 지장이 될 것 같으면 욕심을 버리겠지만 우선은 가는데까지 가보겠다며 '1%의 가능성만 있어도 갑니다'란 말을 남기고 출발했다.

난 다시 바빠졌다.

매일매일 리포트를 만드니 시간도 잘 갔다. 이젠 고소에 적응도 돼 맥주 한 캔 정도는 마실 수도 있게됐다.

캠프 2에 도착한 박 대장은 정상 도전일을 하루 앞당기겠다며 무전을 전해왔다. 올라와보니 상업 등반대가 18-19일을 정상 도전일로 잡고 있고 23일부턴 날씨가 나빠질 것 같으니 19일에 올라가겠다는 거다.

하지만 하루만에 정상 도전일은 다시 20일로 늦춰졌다.

8,500미터 캠프 5로 짐을 수송하기로 했던 셀파가 8,200미터 지점에서 뻗은거다. 2차 도전 직전에 눈이 갑자기 왔던 게 화근이었다.

올해 히말라야엔 거의 눈이 안 와서 4월말 원정대가 루트 작업을 하며 절벽을 오르기위한 로프를 설치할 땐 눈이 쌓인 곳이 거의 없었다.

그런데 2차 도전 직전 사흘 정도 눈이 내리면서 이 눈이 암벽들 위로 쌓였고, 그러면서 암벽에 설치했던 로프들이 얼어붙은거다. 이렇게 되면 얼어붙은 로프를 눈을 파헤쳐 다시 꺼내거나 최악의 경우엔 얼어붙은 부분은 잘라내고 새로 설치해야한다.

이 작업을 하다보니 셀파들은 오버페이스를 한 셈이고 이런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역시 원정이란 다양한 돌발 상황의 연속이다.

출발하기 전날 원정 성공을 빌며 우리는 삼겹살 파티를 벌였다.

박 대장이 '먹는 만큼 힘쓴다'는 생각을 갖고 있기에 이렇게 베이스캠프에 내려와 있을땐 푸짐하게 먹지만 정상 도전길엔 거의 아무 것도 먹지 못한다. 7,000미터를 넘어서면 산소가 평지의 1/3 수준으로 생존 자체에 필요한 최소량에 불과하기 때문에 음식을 소화하는데 쓰일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또 남서벽이란 곳이 6,500미터부터 정상까지 거의 2,000미터가 수직 절벽이기 때문에 텐트를 치기에도 여의치 않다고 한다. 캠프 3와 캠프 4는 박영석 대장 말에 따르면 1/3은 절벽에 떠있고  2/3만 바닥에 붙어있단다.

한 마디로 살 곳이 못 된다.

텐트 주변의 눈을 녹여 끓인 차와 비스킷 몇 조각만 먹으며 절벽에 걸쳐있는 텐트에서 새우잠만 자며 절벽을 올라야 하는 시간이 90시간 정도다. 세계 최고봉 정상에 새로운 루트를 통해 서기 위해선 이 정도 대가는 치러야 하는 것이다.

  [편집자주] 보도국 문화부의 젊은 피, 유재규 기자는 종교계와 대중문화, 문화재 분야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2005년 SBS에 공채로 입사한 뒤 국제부를 거쳐 사회2부 사건팀을 거쳤습니다.  따뜻한 시선과 섬세한 시선으로 현장의 이야기들을 전하는 유 기자는 최근엔 박영석 원정대의 에베레스트 남서벽 도전을 현지에서 동행취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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