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친부모를 찾기 위해 연주하는 세계적인 기타리스트가 있습니다. 3년간 벨기에와 한국을 오가면서 무대에 서고 있는 드니 성호 씨를 취재했습니다.
이재철 기자입니다.
<기자>
우아하고 부드러운 기타 선율이 공연장을 감싸고 돕니다.
서정적이면서 애잔한 슬픔과 그리움이 짙게 묻어 나옵니다.
이번엔 현란한 손가락 움직임에 따라 거칠면서도 생동감있는 연주곡이 울려 퍼집니다.
관객들은 여섯 줄의 현이 연출하는 감미로운 세계에 푹 빠져듭니다.
[김은숙/관객 : 처음부터 끝까지 굉장히 열정적으로 이끌어 가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여운이 남아서 일어나지 못하게 했어요.]
기타 연주자는 드니 성호 씨.
한국계 벨기에 입양인입니다.
34년 전 부산에서 난지 사흘만에 고아원에 맡겨졌고, 돌이 되기 전 벨기에로 입양됐습니다.
자라면서 자기 모습과 다른 사람들이 사는 세상에서 겪게 된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성호 씨는 그러다 8살 때 처음 기타를 만났습니다.
새로운 세상이었습니다.
그는 외로움을 달래려고 이 둘도 없는 친구에게 매달렸습니다.
성호 씨는 14살 때 벨기에 콩쿠르 영재부문 우승을 시작으로 각종 대회를 휩쓸었습니다.
지난 2004년에는 유럽 콘서트홀연맹으로부터 떠오르는 스타로 선정돼 세계적인 기타리스트로 인정받기에 이릅니다.
[드니 성호(34) : 음악은 제 인생이에요. 제 인생의 이유죠. 음악은 제 본질이고 음악을 사랑해요. 매우 깊이 정신적으로. 기타는 하나의 도구에요. 제 2의 목소리라고 할까요.]
성호 씨는 하지만 가슴 깊숙히 애절함이 남아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자신을 낳아준 친부모를 만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그리움과 희망을 안고 서른 한 살 때인 지난 2006년부터 지금까지 한국을 네 차례 찾았습니다.
자신의 한국 이름이 신성호란 것 외에는 이렇다할 단서는 없었지만 방송에 출연하고 연주회도 갖는 등 백방으로 노력했습니다.
아직 그리운 얼굴을 만나기에는 이른 때일까 친부모와 연락이 닿지 않습니다.
성호 씨는 하지만 절망하지 않습니다.
[드니 성호(34) : 만약에 부모님이 제 콘서트를 볼 기회가 있다면 전 무척 행복할 거예요.]
성호 씨는 요즘 모국을 더 이해하기 위해 한국어를 배우고 있습니다.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입양인들을 돕기 위해 자선 연주회도 가졌습니다.
[이은경/관객 : 엄마 입장에서 가슴이 뭉클하더라고요. 눈물이 났어요. 얼마나 마음이 저렸으면 기타로 달랬을까 하는 마음에 가슴이 정말 아팠고 저렸어요.]
성호 씨는 앞으로 친부모 찾기에만 매달리지 않기로 했습니다.
대신 세상과 음악을 나누며 많은 이에게 희망을 주는 연주자가 되겠다고 말합니다.
가슴 속 응어리를 여섯 줄 아름다운 선율에 실어 저 멀리 날려보내고 이젠 따뜻한 꿈을 모든 이들에게 선사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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