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촛불 1년: 무엇을 남겼나

"시민 주권적 운동" vs "법치 어지럽힌 폭동" 엇갈린 평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는 1987년 6월 민주화 항쟁 이후 20여년만에 가장 큰 규모의 시위로 발전하면서 우리 사회에 큰 파장을 안겼다.

그러나 이에 대한 평가는 보는 이의 정치적·이념적 성향에 따라 크게 엇갈리고 있다.

일반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목소리를 내면서 정부의 일방적 태도에 제동을 걸어 민주주의 발전에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 진보 성향 인사들의 평가다.

그러나 보수 성향 인사들은 불순세력의 선전선동에 놀아나 사회 질서가 어지러워진 `폭동'에 불과한 것이라며 확고한 법질서 확립을 통한 재발 방지를 주장했다.

◇ "광장 민주주의" & "시민주권적 운동" = 김호기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촛불 집회를 계기로 한국의 사회운동이 `시민 주권적 운동'으로 한단계 진화했다고 진단했다.

김 교수는 "그동안의 사회운동은 주최 세력을 중심으로 한 권위적인 모습에서 벗어나지 못했지만, 이번 촛불집회에서는 불특정 다수가 주인공이 돼 자발적인 운동을 펼쳤다"며 "이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권위주의를 통째로 흔들어 놓은 것"이라고 강조했다.

일반 대중이 기존 사회운동을 주도하던 세력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높은 수준의 `광장 민주주의'를 보여줬다는 것이 진보 성향 시민단체 관계자들의 평가다.

참여연대 주최로 최근 열린 `촛불 1년, 우리는 어디에 있는가'에 토론자로 나선 박영선 참여연대 기획위원장은 "집회 참가자들은 일상에서 느낀 고민을 민주적으로 풀어내는 데 성공했다"고 진단했다.

그는 "특히 참가자들의 획기적이고 기발한 의사표현 방식은 시민단체들이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였다"며 "세상을 바꾸는 힘은 시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를 다시 한번 일깨워 준 사건"이라고 찬사를 보냈다.

◇"법치주의 어지럽힌 폭동" = 그러나 보수 성향 인사들은 촛불 집회를 법치주의 질서를 어지럽힌 `폭동'이라고 규정하며 이를 민주주의의 발현으로 봐서는 안 된다고 평가했다.

김민호 성균관대 법대 교수는 지난달 보수단체 바른사회 시민회의가 주최한 `촛불 1년, 촛불에 가려진 시민인권 사각지대 진단토론회'에 참가해 "폭력으로 얼룩진 촛불 집회를 광장민주주의로 포장해서는 안된다"고 못박았다.

김 교수는 "목적의 정당성과 순수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폭력으로 인한 시민인권 침해를 정당화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김상겸 동국대 법대 교수 역시 이 토론회에서 "비록 집회와 시위의 자유가 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중요한 기본권이지만 더는 실정법을 벗어난 행위까지 보장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홍진표 시대정신 이사는 "적어도 후반부 촛불집회는 명백히 `광우병 대책회의'가 주도했다"며 "자발적 집회라는 주장은 환상"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 정부 후속 조치와 `공안 탄압' 논란 = 지난해 촛불 집회를 계기로 `소통'이라는 화두가 전면에 떠오르자 정부는 국민과의 소통을 우선하는 정책을 펴겠다고 선언하고 민심 수습에 나섰다.

대통령이 TV에 출연해 `대통령과의 대화'를 진행하고 라디오 연설에 나서기도 하고 여당은 `국민소통위원회'를 신설하기도 하면서 정부와 정치권이 국민과의 소통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긍정적인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노력이 오래 가지 않았고 얼마 있지 않아 `공안탄압' 등 권위주의적 행태로 되돌아갔다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 역시 "촛불 집회가 사그라진 후 정부가 주력한 부분은 `소통'이 아니라 `법치'"라며 "문제는 정부의 이런 대응이 권위주의를 강화하면서 촛불이 이뤄놓은 민주주의적 성과를 퇴색시키고 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민생민주 국민회의의 안진걸 정책팀장은 "촛불 집회 이후 정부가 비판세력을 대하는 모습을 보면 국민과 소통하겠다는 의지가 과연 있는 것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라고 혹평했다.

그는 "진보단체들에 대한 검찰의 압수수색이나 PD수첩 제작진 체포 등에서도 알 수 있듯 정부는 비판 세력의 의견을 포용하려 하지 않고 힘으로 찍어누르려 하고 있다"면서 "갈등이 해소되기는커녕 오히려 깊어진 상황"이라고 비판했다.

◇ "촛불, 사회 발전의 계기로" = 촛불 집회에 대해 긍정적·부정적 평가가 엇갈리는 가운데서도 "촛불이 남긴 교훈을 사회 발전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는 듯하다.

조대엽 고려대 법학과 교수는 "가장 중요한 것은 촛불 집회가 대중들의 욕망이 표현된 결과라는 것을 인정하고, 이를 한국사회의 질적 성장을 위해 이용하는 일"이라며 "특히 이번 촛불에서 사회문제로 떠오른 `소통의 부재'를 어떻게 해결할지 머리를 맞대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민경배 경희사이버대 NGO 학과 교수는 한국 사회의 성숙한 사회운동을 위해 시민단체의 역할을 다시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전망했다.

그는 "일부 시민단체들은 자신들을 '리더'로 여기고 대중과의 소통을 소홀히 하고 있다"며 "이제는 시민단체가 운동의 중심을 대중들에게 맡기고 자신들은 매개자의 역할에 집중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손호철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최근 한 토론회에서 사회 지도층이나 시민단체 등이 대중의 창구 구실을 제대로 수행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촛불집회 당시 대중은 엄청난 힘을 보여줬지만, 다른 중요한 사회 문제에는 여전히 수동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면서 "결국 대중은 새로운 사회운동의 가능성을 보여주고도 운동의 주체로 완전히 탈바꿈하지는 못한 것"이라고 이중적인 평가를 내렸다.

대중들의 에너지를 자발적이고도 건전하게 사회에 풀어낼 수 있도록 지도층이나 시민단체가 제도마련 등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 손 교수가 내린 결론이다.

(서울=연합뉴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많이 본 뉴스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댓글

    방금 달린 댓글
    댓글 작성
    첫 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0 / 300

    댓글 ∙ 답글 수 0
    • 최신순
    • 공감순
    • 비공감순
    매너봇 이미지
    매너봇이 작동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