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성을 정권의 최대 덕목으로 삼았던 참여정부의 골간이 흔들리게 됐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 핵심 측근들이 줄줄이 구속되고, 노무현 전 대통령 내외(정확히 권양숙 여사가 받았는지 또는 다른 가족이 받았는지 등은 여전히 의혹으로 남아있습니다)가 10억 원 또는 그 이상의 돈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게 되고 또 여기에 개입된 인사가 누구인지에 따라 사건의 폭발력은 가히 핵폭탄 수준에 이를 수도 있는 일입니다.
오늘은 이와 관련해 정치권 움직임을 들여다볼까 합니다. 그제(7일) 노무현 전 대통령이 홈페이지 글을 통해 권 여사의 금품수수 사실을 털어 놓았을 때 여야 정치권은 충격에 빠졌습니다. 물론 민주당만큼 충격을 받은 곳도 없겠지요. MB정부와 참여정부의 최대 차별성으로 부각시켜왔던 도덕성에 치명상을 입게 됐으니 말조차 제대로 잇지 못했습니다. 첫날 논평은 "모든 사실이 명백히 밝혀지길 바란다"가 전부였습니다.
어제부터 논조가 서서히 바뀝니다. 두 가지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우선, 철저히 수사하되 검찰수사는 여든 야든 공평하게 진행돼야 한다는 겁니다. 야권에 대한 편파 수사 의혹을 부각시키겠다는 뜻입니다. 또 한 가지는 자기 반성입니다. 차제에 털건 털고 가자는 의미로도 풀이됩니다. 오늘은 이종걸 의원이 지도부 사퇴와 조기 전당대회론까지 제기하고 나섰습니다. 이런 저런 여러 방향으로 대응해 나가고 있지만 충격이 워낙 큰지라 제대로 해법 찾기가 쉽지 않아 보입니다.
이번에는 한나라당을 들여다보겠습니다. 첫날인 그제는 대변인의 논평조차도 조심스러웠습니다. 철저히 수사해서 모든 것을 명백히 가려내라는 것이었습니다. 깨끗하다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겨우 이 정도였냐는 정도의 비판도 곁들여졌습니다. 그러나 선진당의 논평보다도 약했습니다. 선진당은 "빨치산의 딸이면 어떠냐더니 이제 부인에게 모든 것을 뒤집어 씌운다. 노 전 대통령이 이 정도니 그 밑의 사람은 어떻겠느냐. 구정내 나는 세상이다"는 식으로 강한 어조로 비난 전을 펴고 나섰습니다.
한나라당 지도부는 이틀째 말이 없었습니다. 그제 어제는 전주지역을 방문한 자리니 공연히 호남 사람을 자극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대변인 논평도 그제 수준보다 더 강해지지는 않았습니다. 한나라당으로서는 더없이 좋은 호재(?)일 터인데 왜 이리 절제(?)하는 것일까? 역풍을 우려했기 때문일 겁니다.
한나라당은 과거 노무현 대통령 재직시절 탄핵의 역풍으로 의석수가 반 조각으로 줄어드는 뼈저린 경험을 겪었습니다. 이명박 정부 초기 시절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이른바 '이지원' 공방을 벌일 때도 "노무현 전 대통령과 직접 대결할 경우 말려들지 모른다(?)"는 경계론도 나온 적이 있습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보입니다. 자칫 공세를 강화하고 나섰다가 친노 세력의 결집으로 이어져 MB정부가 참여정부를 탄압하는 모양새로 비춰질까 우려하는 모습도 보입니다.
오늘은 달랐습니다. 선봉에는 예상대로 홍준표 원내대표가 섰습니다. 오전에 열린 주요당직자 회의의 모두발언의 거의 전체를 노 전 대통령 공격에 할애했습니다. '포괄적 수뢰죄'의 적용이 가능하다며 검찰의 조속한 수사와 사법처리를 촉구하는 듯한 발언을 쏟아냈습니다. 이렇게 강공으로 돌아선 이유도 내비쳤습니다. 여의도 연구소의 긴급 여론조사 결과 노 전 대통령이 사과했으니 예우해야 한다가 31.8%, 도덕성을 강조해온 노 전 대통령이 거짓말을 해온 것이 드러난 만큼 일반 국민과 같이 수사해야 한다가 68.2%였다는 겁니다. 여론이 수사 쪽으로 기운 것을 파악하고 강공 발언을 쏟아낸 겁니다. 앞으로 여야간에 이 문제를 둘러싸고 치열한 설전과 공방이 이어질 것임을 예고하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이번 사건은 분명, 4.29 재보선에 영향을 미칠 겁니다. 민주당 내에서는 벌써부터 "재보선은 물 건너 갔다"는 체념까지도 흘러나왔습니다. 반면, 한나라당은 "호재가 될 것임에는 틀림없지만 친노 세력의 결집을 경계하기 위해 최대한 조심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감지됩니다. 재보선이 통상 40%전후의 낮은 투표율을 보이고 있는 만큼 작은 사건 하나도 큰 영향을 미칠수 있기 때문에 이번 같은 인화성 높은 사건이 불러올 결과를 누구도 쉽게 예측하기 어려울 겁니다.
이번에 재보선이 치러지는 곳은 모두 5곳입니다. 인천 부평을, 전주 덕진과 완산 그리고 경주와 울산북구 등입니다. 이 중 가장 관심을 끄는 곳은 인천 부평을 지역입니다. 이번 노 전 대통령측의 금품 수수 문제가 가장 크게 반영될 것으로 예상되는 곳입니다. 한나라당으로서는 당 대표가 출마를 저울질하고, 공천 신청자들을 물리치고 이제훈 전 지경부 차관을 전략 공천할 만큼 쉽게 승리를 장담하기 어려운 곳입니다. 민주당은 18대 총선때 이 지역에서 낙선한 홍영표 후보를 내세웠습니다. 민주당으로서는 GM대우가 위치해 노동계의 입김이 센 곳이고, 호남출신과 충청출신 유권자가 절반을 넘은 53%를 차지하는 곳이어서 나름대로 승리할 수 있는 지역으로 꼽았던 곳입니다.
이번 사건으로 민주당은 일단, 상당히 어려워질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MB정부의 무능과 실정을 부각시켜 표를 결집시키겠다는 전략은 참여정부의 도덕성 타격으로 그 효과가 반감될 수밖에 없게 됐습니다. 강부자 정권이라고 공격해온 것도 이제 빛이 바라게 된 꼴입니다. 마땅한 선거 전략 찾기가 쉽지 않게 됐습니다.
다만 민주당은 어제 치러진 경기도 교육감 선거결과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현 교육감인 김진춘 후보를 제치고 공교육 내실화를 기치로 내건 김상곤 후보가 당선된 것에 고무돼 있습니다. 즉, 현 정부의 교육정책에 대한 반발표가 작용했다는 겁니다. 민주당은 특히, 지역별로 볼 때 여주 이천 등 농촌지역에서는 여당표가, 과천 의왕 등 도시지역에서는 야당표가 작용했다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노 전 대통령 수사 향방이 이번 재보선에 엄청난 악재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야권에 대한 표적 수사 또는 토끼몰이식 수사라는 이미지만 형성된다면 오히려 역풍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겁니다.
한나라당이 부자 몸조심 하듯 최대한 반응을 자제해가면서 여론 눈치보기를 하는 것도 같은 맥락일 겁니다. 정동영 전 의원과 정세균 대표와 기세 싸움을 벌이면서 민주당이 내분을 겪고 있고, 여기에 노 전 대통령측의 금품 수수 의혹까지 터지면서 선거전의 바탕은 유리하게 형성됐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경제가 여전히 살아나지 못하고 있고, 추경안 처리도 4월 말에야 가능하게 돼 경기 부양이 녹록치 않은 점은 부담이 되고 있습니다.
4월 국회는 벌써 물 건너 갔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가뜩이나 재보선 때문에 제대로 국회가 되겠냐는 얘기가 나오던 차에 이번 박연차 사건과 노무현 전 대통령 사건이 터지면서 4월 국회 내내 공방과 설전이 펼쳐질 것으로 보입니다. 연말연시를 뜨겁게 달군데 이어 4월 국회에서도 최대 이슈가 될 것으로 예상됐던 쟁점법안들도 이제는 한가한 얘기가 돼 버린 느낌입니다.
나비효과라는 기상용어에서 유래된 말이 있습니다. 뉴욕 나비의 날개 짓이 남미에 엄청난 폭풍우가 될수도 있다는 겁니다. 또, 경제용어중에 부메랑 효과라고 있습니다. 개도국의 현지 생산이 선진국에 역수출되어 해당산업과 경합을 벌인다는 뜻입니다. 세무조사 무마 청탁에서 시작된 수사가 전직 대통령을 정면으로 향하게 된 나비효과는 정치권 전체에 일파만파의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부메랑이 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4월을 잔인한 달이라고 합니다. 민주당에게는 분명 잔인한 달로 기억될 겁니다. 그렇다고 한나라당에게 기쁜 달로 남게 될지는 아직도 모를 일입니다. 벚꽃 축제가 한창인 4월의 여의도의 여유로움과 달리, 여와 야의 지도부의 머리와 마음은 누구보다도 복잡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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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10년전 '출동 코끼리 기자' 또 '박병일 기자의 현장출동!' 등에서 맹렬하고 거침없는 시사고발 취재로 이름을 날렸던 박병일 기자는 현재 차장이 되어 정치부 여당팀의 현장팀장으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특유의 날카로운 시선에 이제는 연륜까지 더해진 깊이있는 정치 기사가 기대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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