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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무역은 보호무역?

미국의 보호무역 회귀 움직임이 심상치 않습니다.

커크 미 무역대표부 대표지명자가 한미 FTA 재검토를 시사한 데 이어, 상무장관 지명자인 개리 라크는 상원 인준청문회에서 "자유무역보다는 공정무역을 신봉한다."고 말했습니다.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개리 라크 상무 장관 지명자

라크 지명자는 "미국과 세계 각국의 교역관계는 미국 기업들에게 번영으로 나아가는 문호를 열어주는 것이며 또 미국의 국익을 보호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미국의 무역적자 해소와 일자리 창출이 자신의 할 일 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미국의 경기부양책에 바이 아메리칸 조항을 마련한 데 이어 고위직 지명자들의 잇단 이런 발언은 다른 무엇보다 미국의 이익이 우선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런 경향은 미국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세계은행은 G20 가운데 미국, 러시아, 중국 등 17개국이 보호무역조치를 취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세계은행 보고서는 이런 추세가 다음달 2일 런던에서 열릴 예정인 G20의 위기대응을 위한 공조노력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고 경고합니다.

보호무역조치는 대개 개발도상국들이 수입금지 품목을 설정한다든지, 높은 관세를 물린다든지 해서 자국 산업을 보호하려던 것이었습니다.

선진국이나 초국적기업은 이런 폐쇄적 정책을 무너뜨리기 위해 자유무역을 내걸며 수입개방 압력을 가하곤 했습니다. 특히 미국은 무역적자가 큰 교역 대상국 즉 일본이나 한국에 수입개방을 거세게 요구하곤 했습니다. 쌀 시장 개방협상을 기억하시는지요. 당시 대통령은 『대통령직을 걸고 쌀 시장 개방만은 막겠다.』고 했지만 결국 물러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밖에 미국이 한국이나 일본에 대해 자주 요구했던 것이 자동차 시장 개방입니다.

요구가 잘 먹히지 않을 경우엔 무역보복조치로 악명 높았던 이른바 수퍼 301조를 동원하기도 했습니다. 주로 80년대말에서 90년대 자주 써먹던 수법입니다.

자유무역을 위해 우루과이 라운드에 이어 WTO 협정이 체결됐고 국가별로 FTA 협정도 마련됐습니다.

자유무역을 내거는 쪽은 주로 수출을 늘리기 위한 것이고, 보호무역을 하는 쪽은 수입을 제한하기 위한 것이죠. 그래서 과거엔 선진국들이 자유무역을 요구했고, 개도국들은 보호주의의 빗장을 하나 둘씩 풀어야 했습니다.

그러던 것이 이제 역전되기 시작했습니다. 자유무역의 전도사였던 미국이 멕시코 차량의 미국 진입을 막고 나서는가 하면, 상무장관 지명자는 미국의 일자리를 지키고 무역적자를 해소하는 것이 목표라고 선언했습니다. 얼핏 보면 장관으로서 당연한 말 같기도 하기만, 자유무역보다는 공정무역을 신봉한다는 말과 병렬시켜보면 결국 보호주의를 강행하겠다는 말이나 다름없습니다.

공정이란 말은 말 본래의 뜻으로 보자면 관련 당사자 모두가 불만이 없도록 평등하게 대우한다는 뜻이겠지만, 라크 지명자의 말은 “미국에게 공정한” 것이라는 의미, 다시 말해 미국이 손해 보는 일은 안된다는 뜻으로 읽힙니다.

이젠 오히려 한국이나 일본에서 자유무역을 지켜야한다는 말이 나옵니다. 한국은 수출의존도가 70%나 되는 나라니 주요 수출 대상국인 미국과 중국이 보호무역주의로 돌아서면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반면 미국은 무역의존도가 세계에서 가장 낮은 나랍니다. 지금까지는 많은 무역적자를 내더라도 그 돈이 다시 미국의 금융시장 등으로 돌아오는 구조여서 큰 문제가 없었지만, 미국 금융시스템이 무너진 이제 미국의 무역적자구조는 심각한 위기요소이지요.

세계은행이 무역전쟁 가능성을 거론하며 이런 보호무역주의 회귀를 경고하고 나섰지만 당장 추세를 되돌리기는 힘들 것으로 보입니다. 어느 나라나 내 코가 석자인 만큼 양보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지요. 따라서 경기회복의 조짐이 확산되고 바닥을 쳤다는 확신이 들 때까지 무역 분쟁이 해소되기는 그만큼 어렵다는 전망이 나오게 됩니다.

 

[편집자주] 깊이있는 분석과 통찰력이 느껴지는 이은종 기자는 그동안 사회.국제 이슈와 경제 현장에서 오랫동안 현장취재와 데스크를 거치고 현재 SBS 보도국 특임부장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경험과 연륜에서 뿜어나오는 해박한 지식과 함께 일본의 정치.경제에 대한 식견으로 핵심을 짚어주는 글을 보내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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