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전 국방부를 맡고 있을 때 한 공군 중령과 군인의 명예에 관해 얘기를 하다 입씨름을 벌인 일이 있었습니다.
그 군인은 계급 또는 계급의 상승이라는 의미로 군인의 명예를 설명했고, 저는 명예란 깨끗함, 순수함, 다른 사람들의 존경을 받을 만한 태도를 의미하는 것이지 어떻게 계급 그 자체가 명예가 될 수 있는가라고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상당히 오랜 시간 말을 주고 받았지만 명예의 개념에 관한 의견차는 좁혀지지 않은 채 중단됐습니다.
오랜 시간 전 일이 생각난 것은 요즘 몇 가지 사건을 보면서 명예라는 개념을 다시 생각하게 됐기 때문입니다. 하나는 어느 배우가 자살하면서 남긴 글로 인한 파문이고, 또 다른 하나는 법원장의 재판 개입 논란건입니다.
배우의 자살이후 유가족들은 사자의 명예에 손상을 줄 수 있는 만큼 이 글을 공개하지 말 것을 바랐고 불에 태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경위인지 아직 확인되지 않았지만 결국 글이 공개됐습니다. 이 글에는 숨진 배우가 당한 이런 저런 불미스런 일이 기록돼 있었습니다.
법원장의 재판 개입 논란은 대법원의 조사 결과 개입으로 볼 수 있다는 판단이 나왔고, 지금은 대법관이 된 해당 법관의 사퇴 여부가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해당 법관은 윤리위원회에 회부됐지만, 법관의 신분 보장을 규정한 법률에 따라 해임할 수 없게 돼 있습니다. 탄핵 규정이 있지만 국회에서 탄핵안이 통과될 가능성은 적기 때문에 야당이 탄핵안을 낼 것인지도 의문입니다. 결국 자진사퇴할 것인가가 논란의 초점인데 이 대목에서 명예란 무엇인가라는 문제에 부딪히게 됩니다.
명예란 무언인가?
엣센스 국어사전에 명예는 이렇게 풀이돼 있습니다.
① 세상에서 훌륭하다고 일컬어지는 이름 (예) 명예를 회복하다.
② 도덕적 존엄에 대한 자각 또는 도덕적 존엄이 남에게 승인되고 존경·상찬되는 일.
③ 사람의 사회적인 평가 또는 가치.
④ 지위나 직명을 나타내는 말위에 쓰여서, 그 사람에게 경의를 표하고, 또 그 공로를 찬양하기 위해 증여되는 칭호. (예) 명예 총재 / 명예 시민
앞의 군인의 명예에 관한 얘기에서 공군 중령이 말한 명예는 ③의 뜻으로 사용한 것이라고 볼 수 있고, 제가 말한 명예는 ① 또는 ②의 뜻으로 볼 수 있습니다. (입씨름은 헛수고였던 셈이네요. 그래도 저는 군인의 계급 그 자체가 사회적 평가 또는 가치에 해당하는지 의문이 남습니다.)
이렇게 보면 별로 상충되거나 문제될 게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불미스런 일과 연관될 경우 그 판단이 어렵습니다. 위에 말한 법관이 자진사퇴하는 게 명예를 지키는 일라고 볼 수도 있는 반면에, 자진사퇴할 경우 불명예를 인정하게 되는 셈이라는 시각도 있을 수 있습니다.
사무라이라는 말로 불리는 과거 전국시대와 도쿠가와 막부 시대 일본의 무사계급도 명예를 소중히 여겼다고 합니다. 전쟁이 끊이질 않던 전국시대 무사들은 전쟁에서 질 경우 명예를 지키기 위해 할복을 했다고 하지요. (물론 전쟁에서 진 모든 무사가 그런 것은 아니고 영주나 최고 지휘관급 무사의 얘기입니다.)
또 투서나 비리혐의를 받을 경우에도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할복을 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기가 문제입니다. 진짜 결백했는데 무고로 인해 명예가 손상돼 자살을 택한 것인지, 당사자가 자살함으로써 파문을 확산시키지 않고 주변을 보호하려한 것인지가 불투명하다는 점입니다. 결국 명예를 지킨다고 하지만, 정말 지키려는 게 누구의 명예인지가 불투명한 해결 방법이지요.
두 사건은 내용이나 성격은 전혀 다릅니다. 하지만 두 사건 모두 이번 사태를 어떻게 마무리하느냐에 따라, 연예계와 법원이라는 집단이 앞으로 이미지를 개선하고 신뢰를 받을 수 있는지 여부가 판가름 나게 될 것입니다.
|
|
[편집자주] 깊이있는 분석과 통찰력이 느껴지는 이은종 기자는 그동안 사회.국제 이슈와 경제 현장에서 오랫동안 현장취재와 데스크를 거치고 현재 SBS 보도국 특임부장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경험과 연륜에서 뿜어나오는 해박한 지식과 함께 일본의 정치.경제에 대한 식견으로 핵심을 짚어주는 글을 보내주고 있습니다. |
동영상 기사
동영상 기사
동영상 기사
동영상 기사
동영상 기사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