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둘째 주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금리를 연2.0%로 동결하기로 결정했다.
평소 1시간 남짓 걸리던 금통위 회의는 이번엔 100분 정도 이어졌다. 금통위원들 사이에 의견차가 컸던 것 아니냐는 질문에 대해 한 참석자로부터 "시장에 보다 정확한 시그널을 주기 위해 통화정책 방향 결정문을 다듬느라 시간이 걸렸다"는 답이 돌아왔다.
통화정책 방향 결정문을 보자.
"...향후 성장의 하향 위험도 매우 큰 것으로 판단됨...앞으로 통화정책은 경기의 과도한 위축을 방지하고 금융시장 안정을 도모하는 데 주안점을 두고 운용해 나갈 것임"
금통위 회의가 끝난 후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가 기자실로 내려와 결정의 배경을 설명하고 질의응답이 이뤄진다. 이 때부터 기자들은 타자수가 된다. 총재의 발언을 토씨 하나하나 그대로 옮기는 작업. 신중하기로 잘 알려진(그래서 이따금 모호한) 이 총재의 말 한마디 뉘앙스에 따라 해석이 천양지차로 갈릴 수 있기 때문이다.
"수출도 상당한 폭의 감소율이 계속될 것을 봐서 경제성장률이 낮아질 위험이 상당히 큰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작년 10월 이후에 아주 짧은 시간에 빠른 속도로 기준금리를 낮춰 왔습니다. 그래서 일단 금융시장에서는 어느 정도 효과가 나타나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번 달에는 기준금리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그동안 취해진 금융 완화 시책이 전반적으로 효과가 어떻게 나타나는지 점검해 보면서 앞으로 정책을 운용하겠다, 이런 결론에 이르게 됐습니다"
이어지는 일문일답.
Q. 경기가 올해 저점을 맞고 반등할 수 있을까?
"...세계 경제도 그렇고 우리도 그렇고 큰 움직임에 영향을 받을 것이라는 말씀을 드릴 수 있겠고요, 나라에 따라 경기 저점 시기가 먼저 오고 나중에 오는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작년 11월,12월에 예상했던 것보다는 경기 하강이 깊고 조금 더 길어지지 않냐는 예상이 강한 편입니다"
올해 안에 경기 반등이 어려울 수도 있다는 언급으로 해석.
Q. 최근 불안한 환율 움직임이 이번 결정에 영향을 줬는지, 또 경기침체 장기화에 대비해 금리인하 카드를 비축한 것이라고 해석해도 되나?
"...외환시장 움직임하고 경기 침체 장기화 가능성하고 연결돼 있느냐,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기준금리도 우리 경제의 여러 현상과 연결돼 있기 때문에 외환시장 움직임이라든가 경기 전망의 변화라든가 당연히 어느 정도는 영향을 주고 감안이 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그 때 그 때 어느 요소가 크게 영향을 미치는가는 때에 따라 다릅니다만, 경기 전망의 변화라든가 외환시장의 움직임은 금리 정책을 결정하는 데 당연히 감안해야 하는 요소라고 보고 있습니다"
연초부터 환율이 뛰고 그로 인해 2월 소비자 물가 상승률이 예상보다 높게 나온 점을 감안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얘기로 해석.
이 쯤 되면 해석은 비교적 명확해진다.
경기 상황은 예상보다 더 않 좋아지고 있다.
그렇다면 금리를 내려야 하지만 왜 안 내렸느냐?
지난 5개월 동안 여섯 차례에 걸쳐 3.25% 포인트나 기준금리를 내리는 급격한 조치를 취해 왔기 때문에 이번에 한 번 쉬면서 그 효과를 점검하겠다.
환율이 급등하고, (앞으로는 둔화되겠지만) 그로 인해 물가가 뛴 것도 고려했다.
하지만 추가 금리 인하 가능성은 열어 놓겠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 물론 현재로서는 아주 소수 의견이다 - 앞으로 금리를 내리기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하는 분석가들도 있다.
먼저 기준금리가 1%대에 진입하는 데 대한 부담감. 물론 다수의 전문가들이 기준금리의 하한을 1~1.5%로 보고 있지만 그래도 이 부담감은 어쩔 수 없다. 선진국과의 금리 차 축소로 인한 외국인 투자자금 이탈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시각에서는 추가 인하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는 사실에도 그리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어느 나라의 중앙은행이든 "앞으로 금리인하 없다"고 자기 발에 족쇄를 채우는 어리석은 짓을 하지는 않을테니까. 기준금리의 하한은 언제나 사후적으로 확인되는 것일 뿐이다.
또 하나. 한국은행으로서는 exit policy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정치적인 상상력을 덧붙이면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의 임기가 1년 정도 밖에 안 남았다는 사실과도 결부돼 있다. 금융위기에 대처해 역대 최저 수준으로 기준금리를 끌어내려 왔지만 언젠가 원상회복 시켜야 될 의무도 한국은행이 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는 이미 지난 1월말 한 강연에 나가 "현 시점에서는 금융안정과 경기회복이 무엇보다 중요하나,금융시장 불안이 해소된 이후를 미리 대비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런 관점에서 위기대응 과정에서 도입된 각종 정책 수단을 효과적으로 정리하는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경제 대통령으로 각광받다가 금융위기의 주범으로 몰리고 있는 앨런 그린스펀 前 미국 FRB 의장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 총재로서는 이른바 '원상회복'의 계획을 짜고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추가적인 금리 인하는 exit policy에 부담을 주게 된다. 이 총재 개인으로서도 '돈만 풀어놓고 자리를 뜬' 중앙은행 수장으로 기억되고 싶지는 안을 테니까. 금융시장 안정의 역할도 짊어지고 있지만, 그래서 한은법 개정이 거론되고 있지만, 그래도 현재 한국은행 본관 1층 로비에 걸린 문구, 한국은행의 존재 이유는 '물가 안정'. 금리가 앞으로 더 떨어질 것이라는 다수의 기대에 다소 엉뚱하지만 한 번 회의를 품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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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치밀한 분석력이 돋보이는 박민하 기자는 현재 한국은행과 금융업계를 출입하고 있는 경제부의 핵심전력입니다. 2003년 SBS 보도국에 둥지를 튼 뒤 사회부와 경제부에서 활약해왔습니다. 생활에 직접 도움을 주는 알기쉬운 금융기사들과 경제전반을 이해할 수 있는 심도깊은 글들을 기대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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