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가 내리던 13일 오전 7시55분.
예정보다 조금 일찍 도착한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한국은행 총재 접견실에 들어섰다.
1997년 한국은행법 개정 이후 재정부 장관으로서는 12년만의 한은 방문. 그것도 취임 나흘 만에. 참고로 그 이전에는 재경부 장관이 금융통화위원회 의장이어서 수시로 한은을 드나들었다고 한다. '재경부의 남대문 출장소'라는 매우 치욕적인 별명을 한은에 안기면서.
터지는 카메라 플래시.
"어이쿠, 이렇게나 많이 오셨나?" (윤증현/기획재정부 장관)
별로 놀랍지 않으면서 놀랍다는 멘트를 날려주는 센스.
.....(이성태/한국은행 총재)
한은 스타일.
두 기관의 수장은 한은 총재 방으로 옮겨 약 30분간 독대했다.
그동안 허경욱 차관 등 기획재정부 간부들과 이승일 부총재 등 한국은행 간부들은 15층 식당에 마련된 테이블에 마주보고 앉아 그다지 흥미롭지 않은 이야기를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
15층 식당에 다시 나타난 장관과 총재, 다시 터지는 카메라 플래시의 세례.
"난 밥 앞에 놓고 사진 찍는 게 제일 그렇던데...(이성태/한국은행 총재)"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 기자들이 묻자,
"요새 (경제) 상황이 그러니까 서로 협력해서 일 잘해 나가자, 장관님이 그런 말씀 하시데요. 그래서 나는 뭐 좋습니다, 했죠(이성태/한국은행 총재)"
뭐, 이 정도 준비된 멘트야 윤 장관에게는 기본.
한마디로 시장에 정부와 중앙은행이 아낌없이 협조하겠다는 메시지를 주겠다는 것이 오늘의 주제로 확인되는 순간이다. '강만수 장관 때처럼 껄끄럽지 않다, 더 이상 정부와 한은 사이에 갈등은 없다, 미증유의 위기 상황에서 삐걱거리지 더 효과적으로 일 할테니, 믿어주시라' 뭐 이런 메시지 말이다.
한 마디라도 더 듣기 위해 밥 다 먹을 때까지 기다리는 기자들, 엘리베이터 앞에 포진. 그러나 앞장 서서 식당을 나온 이 총재, 그대로 엘리베이터로 직행한다. 윤 장관도 엉겁결에 따라 타면서 포토라인은 금세 무너지고 만다. 한바탕 소동. 기다린 시간이 있지... 닫히는 엘리베이터 문을 막아 선 기자들, 질문을 던진다. 사실 한은 일부 출입 기자들이 세가지 정도 물어 보자고 약속하고 당번도 정해 놓은 상황이었다.
- 추경 예산 편성과 관련해서 국채 매입 논의하셨나요?
"그런 문제들은 필요한 때가 되면 그 때 가서 구체적으로 논의하겠습니다(윤증현)"
오늘의 주제와는 다소 거리가 있다는, 논의되지 않았다는 의미.
- 한은법 개정 관련해서 어떤 말씀 나누셨나요?
이 대목에서 이 총재가 무거운 입을 열었다는 데 주목해야 한다. 특히 '충분한 시간을 두고...'라는 멘트에. 국회의원 나리들, 가만 좀 있어봐, 뭐 이 정도 얘기가 아닐까 한다.
- 최근 환율 움직임이 불안한데, 환율 방어 안 하시나?
"환율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 게 정답입니다(이성태/한국은행 총재)"
이런 걸 우문현답이라고 한다.
현 상황에서 정부로서는 각종 경제 정책을 수행하는 데 한은의 발권력이 절실하다. 한은으로서는 원하는 방향으로의 한은법 개정을 위해 정부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서로의 필요가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위기 극복에 효율적인 도구를 제공하는 대승적인 결론으로 이어지길. Show나 Event는 이 쯤에서 마무리하시고...
|
[편집자주] 치밀한 분석력이 돋보이는 박민하 기자는 현재 한국은행과 금융업계를 출입하고 있는 경제부의 핵심전력입니다. 2003년 SBS 보도국에 둥지를 튼 뒤 사회부와 경제부에서 활약해왔습니다. 생활에 직접 도움을 주는 알기쉬운 금융기사들과 경제전반을 이해할 수 있는 심도깊은 글들을 기대합니다. |
동영상 기사
동영상 기사
동영상 기사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