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미디언이 먼저 웃어버리면 관객들을 웃길 수가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을 기자들에게 적용하면 아무리 기가 막히는 상황이라도 이를 전달하는 기자는 냉정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뜻이 됩니다. 7명의 여성을 살해하여 암매장한 것으로 드러난 강호순에 대해서는 '살인마'라는 호칭이 아니고는 부를 말이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이 사건을 전하는 뉴스를 보면서 기자가 너무 흥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자가 먼저 흥분해버리면 이번 사건에 대해 우리 사회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를 치열하게 모색하기 보다는 감정적 표현들이 뉴스를 지배하고 맙니다. 강호순이 실종 여성 7명을 살해했다고 자백한 지난 1월 30일과 31일에 이어 지난 3일 SBS 뉴스는 전문가들이 그를 피도 눈물도 없는 전형적인 사이코패스, 즉 반사회적 인격 장애자로 본다고 보도했습니다. 사회적 규범을 지키지 못하며, 충동적이고 공격적인데다가 죄책감 없이 다른 사람을 해치는 것이 사이코패스의 전형적인 증상이라는 것입니다. 뉴스는 같은 사이코패스이지만 연쇄살인범 유영철은 사회에 대한 화풀이가 주목적이었던데 비해 강호순은 개인의 성적욕구 해소를 위해 범행을 이어갔다는 점이 다르다고 거듭 설명했습니다. 지난 4일 뉴스는 우리 청소년 100명 중 1명 정도가 지금대로 방치된다면 사이코패스가 될 위험이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고 보도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뉴스는 사이코패스에 의한 끔찍한 범죄를 예방하고, 사이코패스 발병 자체를 줄이기 위해 무슨 조치들이 필요한가에 대해서는 추적하지 않았습니다.
더욱이 SBS 뉴스는 반성하지 않는 것이 사이코패스의 전형적인 증상이라고 설명했으면서도 강호순이 반성의 빛을 보이지 않는다고 되풀이하여 나무랐는데, 그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태도입니다. 지난 1일 뉴스는 현장검증에 앞서 기자들과 마주친 강호순이 10분에 걸친 일문일답을 하는 동안 그의 표정은 후회하거나 참회하는 기색과는 거리가 멀었다고 보도했습니다. 3일 뉴스도 그가 검찰 송치에 앞서 기자들 앞에서 유가족 등에게 죄송하다는 표현을 다섯 차례나 했지만 진정으로 참회하는 모습은 볼 수 없었다고 보도했습니다. 뉴스에 따르면 그는 모자를 눌러써 얼굴이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기자들이 그의 표정을 면밀히 관찰하기 어려웠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뿐만 아니라 사이코패스로 진단된 그에게 참회를 기대하는 것이 바로 기자가 냉정을 유지하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SBS 뉴스가 국민의 알권리 차원이라고 밝히면서 피의자 강호순의 실명과 함께 얼굴을 공개한 것은 공개 전에 신중한 논의과정을 거친 것으로 보이고, 따라서 잘한 결정입니다. 그런데 경찰과 일부 의원들이 이참에 이른바 반인륜적 흉악범죄 피의자의 얼굴 공개를 법제화하자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에 대한 논란은 뉴스가 좀 더 적극적으로 보도할 필요가 있습니다. 극단적인 사건 하나를 들어 제도를 쉽게 바꾸려는 태도는 경계해야 합니다.
SBS 뉴스는 지난 4일 요즘 소재가 자극적이고, 줄거리 전개가 비현실적인 텔레비전 드라마들이 높은 시청률을 보이며 안방극장을 점령하고 있다고 보도하면서 이를 최근의 경제상황과 관련시켰습니다. 경제 불황이 계속되고 드라마 보다 더욱 꼬인 현실을 살아가야 하는 민초들에게 강렬한 자극을 주는 이런 드라마들은 일종의 대리만족이라는 카타르시스를 주면서 인기가 꺾이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뉴스에 따르면 한 심리학자는 이런 드라마의 제작 동기에 대해 "우리는 막장드라마야" 라면서 그냥 수위 없이 다 보여주는데, 그런 부분에서 "쿨 하다"고 평하는 시청자들도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주요뉴스 시간에 이런 이야기를 보도하려면 이와 같은 드라마와 사회현상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필요합니다. 비판적 시각이 없이 단순 소개로 끝나면, 건강하지 않은 드라마를 정당화 하려한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자본시장 통합법, 이른바 자통법이 시행된 지난 4일과 하루 전인 3일 SBS 뉴스는 이 법을 소개하면서 투자자들의 입장에 지나치게 치중했습니다. 뉴스는 자통법 시행으로 은행과 보험을 제외한 금융 업종들의 겸업이 허용되고 취급 상품에도 제한이 없어 투자자들의 선택 폭이 넓어졌으며, 투자자 보호도 강화됐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런데 뉴스가 강조하는 투자자 보호 장치라는 것은 투자성향 파악 절차를 반드시 거쳐, 투자자의 성향이 안정적이라고 나왔다면 투자위험이 높은 상품은 권유할 수 없고, 그래도 투자자가 원할 경우 각서까지 써야한다는 것뿐이었습니다. 이날 뉴스는 자통법의 또 다른 측면인, 입법화 과정에서 벌어졌던 치열한 논란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정부의 금융정책과 다른 입장을 견지했던 이동걸 금융연구원장이 지난 1월 말 사퇴했다는 소식도 뉴스는 보도하지 않았습니다.
이동걸 원장은 "자통법이 추구하는 시장 형 금융시스템의 위험 요소를 파악해 법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면서 비판적인 의견을 공개적으로 밝혀왔던 사람입니다. 금융위기를 맞아 전 세계가 규제 강화 쪽으로 가고 있는데 왜 우리만 낡은 미국식 투자은행 모델을 가져오려고 하느냐 하는 걱정은 여전합니다. 자통법의 밝은 측면뿐만 아니라 어두운 측면도 함께 비추는 뉴스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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