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이 마음 놓고 때릴 수 있는 몇 안 되는 대상 중에서도 첫 번째 꼽히는 것이 아마도 국회일 것입니다. 문자 그대로 다사다난했던 올해를 보내는 지난 한 주 동안에도 언론은 국회를 마음껏 두들겼습니다. 크리스마스인 25일 SBS 뉴스는 "해머 국회, 소화전 국회로 전 세계의 웃음거리가 되었다"는 말로 끝났습니다.
그보다 한주일 전인 지난 18일 SBS 뉴스에 따르면 이날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격렬한 몸싸움 끝에 한나라당이 한·미 FTA 비준동의안을 국회 상임위에 단독으로 상정했습니다. 뉴스는 국회가 '영락없는 전쟁터'였다고 보도했습니다. 다음 날인 19일 뉴스는 "국회는 이제 국민의 시선은 안중에도 없는 무법천지가 되어가고 있다"고 비판했습니다. 이날 뉴스는 여야가 한 치 양보 없는 정면 대결로만 치닫는 이유가 여야의 주도권 싸움 때문이라고 분석했습니다. 뉴스는 20일 "이게 국회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합의 원칙이 실종된 우리 국회의 난장판이 결국 국제망신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뉴욕타임스는 "과격하고 싸우기 좋아하는 민주주의"라고 비꼬았고, LA타임스는 "한국 의회의 오래된 병폐로, 한국에서는 흔한 일"이라고 지적했다는 것입니다.
여야가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대타협을 이뤄내지 못하고 물리적 충돌을 일삼는 것이 국회와 정치에 대해 얼마나 큰 실망을 불러오고 있는지 모릅니다. 시민들은 이제 국회에 대해 실망을 넘어 절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언론의 국회 비판은 몇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우선 여야 구별 없이 한 묶음으로, 대안 없는 비판을 합니다. 여야가 싸우는 쟁점을 깊이 파고들면 어는 쪽이 사태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는지 판단이 섭니다. 당면한 경제 살리기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고, 엄청난 사회적 논란을 불러오고 있는 사이버 모욕죄나 신문법 방송법 개정 등을 의석수의 힘으로 밀어붙이려는 여당이 열쇠를 쥐고 있는지, 아니면 자신의 의사를 관철하기 위해 회의장 농성밖에는 할 수 없는 야당이 열쇠를 쥐고 있는지는 자명합니다. 뉴스는 여야가 무조건 타협하라고 다그치지 말고, 타협가능한 선을 제시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언론의 또 다른 문제는 일부 외국신문들의 국회 비판을 들어 국제망신이라는 자기비하를 한다는 점입니다.
국회가 국제망신을 당했다고 걱정한 지난 20일 뉴스는 일본과 타이완 인도네시아, 볼리비아, 멕시코, 러시아 등의 의회 난투극은 그동안 심심치 않게 보도돼 왔지만, 민주주의 선진국으로 꼽히는 미국과 유럽은 의회 폭력을 엄격하게 규제하고 있다는 소식도 전했습니다. 민주주의 선진국들의 의회모습을 따라가지 못해 안달하기 보다는 지금 국회를 공전시키는 쟁점과 외국 언론에 비친 우리 국회모습 중 어느 쪽이 더 중요한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지난 18일부터 22일까지 보도된 부동산관련 SBS 뉴스의 초점은 서울 강남과 서초 송파 등 강남 3구가 투기지역에서 해제되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18일 뉴스는 강남 3구의 투기지역 해제를 추진한다는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의 말을 전했습니다. 반면에 22일 뉴스는 이명박 대통령의 유보 지시로 강남 3구의 투기지역 해제와 분양가 상한제 폐지가 일단 없던 일이 됐다고 보도했습니다. 그러나 SBS 뉴스만으로는 정부가 부동산 규제를 당장 전면 해제할 듯이 서두르다가 왜 대통령의 지시로 갑자기 유보했는지를 알 수가 없습니다. 국토해양부가 협의 없이 서둘렀기 때문이라는 뉴스의 설명은 설득력이 약합니다. 부동산 규제 해제 방침의 유보를 가져 온 배경에 대한 뉴스의 집중적인 추적보도와 분석이 뒤따라야 했습니다.
지난 15일 SBS 뉴스는 부시 미국 대통령이 이라크에서 기자회견을 하다가 갑자기 날아온 신발에 맞을 뻔 해 속된 말로 임기 말에 스타일 구겼다고 보도했습니다. 뉴스는 16일 부시 미국 대통령에게 신발 세례를 퍼부은 이라크인 기자가 아랍권의 영웅으로 떠올랐다고 전했습니다. 하지만 19일 뉴스는 이 이라크 기자가 자신의 행동을 후회한다며 선처를 호소했다고 보도하면서 형벌의 가능성 앞에서 마음이 약해진 것인지, 그가 태도를 바꾼 이유는 아직 알려지지 않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그러나 상황은 또 반전됩니다. 23일 뉴스는 그가 고문에 못 이겨 사과편지를 쓴 것이라는 가족의 말을 보도했습니다. 그런데 신발투척 사건은 부시의 스타일을 구긴 것이 아니라 부시와 미국에게 정치적 치명상을 입힌 사건입니다. 또한 아랍권의 영웅으로까지 떠오른 기자가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는 편지를 보낸 것에 대해 "형벌의 가능성 앞에서 마음이 약해졌을" 가능성을 제시한 것도 상황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던 보도였습니다.
언론이 국회의 싸우는 모습이 아니라 국회에서 논란이 된 쟁점에 대한 분석과 이를 풀기 위한 대안들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하면 국회에 대한 시민들의 인식도 달라질 것입니다. 시민들의 정치 불신과 혐오감을 부추긴 책임이 언론에게 있습니다. 그럼에도 언론은 시민의 혐오감을 들어 다시 국회를 비판하는 순환논리에 빠졌습니다. 새해에는 국회뿐만 아니라 언론의 국회보도도 따뜻한 시선을 회복하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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