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울적한' 성탄절 보내는 소외계층들

크리스마스 이브인 24일 찾아간 서울 강북구 수유동의 '한빛맹아원'에는 매년 식당에 크리스마스트리가 세워졌지만 올해에는 찾아볼 수 없었다.

후원금이 작년보다 10% 정도 줄어들어 운영비 사정이 여의치 않은 이유도 있지만 어느 해보다 성탄절의 흥겨운 분위기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맹아원은 매년 크리스마스에 인근 교회 청년회 신도들이 찾아와 피자 파티를 열고 원생들과 놀이시간을 가졌으나 올해에는 이 행사도 취소됐다.

맹아원의 유경화 국장은 "매년 교회 청년회에서 돈을 모아 피자 파티를 해줬는데 올해에는 취소됐다"며 "대신 원생들에게 목도리를 선물해 주기로 했지만 아이들은 내심 같이 놀아줄 사람이 없어서 섭섭해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모든 이들에게 사랑과 행복이 충만해야 할 성탄절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음에도 경기 불황의 여파로 보육원과 양로원 등 소외 계층들은 올해 어느 때보다 썰렁한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있다.

가뜩이나 경기 침체가 계속되면서 후원의 발길이 해마다 감소하는 추세이기는 했으나 올겨울에는 후원이 눈에 띄게 줄어 세상의 온정을 그리워하는 이들의 몸과 마음이 얼어붙고 있다.

서울 시내 보육원과 양로원, 맹아원 등 복지시설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최근 몇 년간 경기 침체의 영향 때문인지 정기 후원자들도 발길을 끊고 있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후원이 갈수록 줄면서 이들 복지시설은 새로운 단체나 후원자를 찾기보다 기존의 후원자를 유지하는데 전전긍긍하고 있다는 것이다.

동작구 상도동 '청운보육원' 장미라 대리는 "요즘 후원이 없어도 너무 없는 편"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장 대리는 "경제가 어려워 그런지 올해뿐 아니라 작년부터 정기후원을 하는 소액기부 계좌 수가 줄어들었고, 예전에는 익명으로 아이들에게 학용품 등 선물을 보내오시는 분들이 많았는데 올해는 이마저 줄었다"고 전했다.

올해 크리스마스에는 익명으로 어떤 독지가가 목도리와 장갑 한 상자를 사서 보냈지만 보육원 아이들이 총 80명인데 전달된 물품은 40명분밖에 안돼 결국 어린 아이들에게만 나눠줘야 할 형편이다.

관악구 남현동 '상록보육원' 부청하 원장도 "정부 지원금으로 아이들 교육시키는 것은 문제가 없지만, 난방비나 가정해체로 정서장애나 우울증이 있는 아이들을 치료하는 데 드는 비용은 턱없이 부족하다"고 어려움을 호소했다.

장애인재활시설 '엠마오의 집' 백승대 원장도 "크리스마스 선물은 고사하고 연말인데도 후원이 거의 끊겼다. 작년에는 그나마 두어군데서 성탄절 선물도 전해주고 지원금도 줬는데 올해는 사회 분위기 때문인지 성탄절 분위기를 거의 느낄 수 없을 정도"라고 탄식했다.

봉천동 '실로암시각장애인' 복지관도 요즘 후원이 부쩍 줄어 쌀과 김치가 부족한 상황이라고 한다.

복지관의 안연광 활동보조담당자는 "시각장애인들도 직장에서 구조조정을 당하는 경우가 많이 생겨 경제적 어려움이 더해졌지만 후원은 더욱 줄어들어 최근에는 쌀이나 김치 지원도 끊겼다"고 말했다.

요양원에서 말년을 보내는 노인들도 어느 때보다 쓸쓸한 연말을 보내고 있다.

동대문구 장안동 '은천소규모요양센터'는 올 연말 농협에서 10㎏ 쌀 20포대를 기부받은 것을 제외하면 후원이 없어 '적막한' 크리스마스를 맞이해야 할 형편이다.

요양센터 이병만 회장은 "올 연말에 받은 기부금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며 "최근 몇년간 노인시설에는 전체적으로 기부금이 많이 몰리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들뿐만 아니라 집을 나와 거리에서 사는 노숙자들도 올해 유난히 추운 성탄절을 보내고 있다.

예전에는 간혹 교회나 여러 자선단체들이 성탄절을 맞아 옷가지 등을 선물로 나눠주는 경우가 있었지만 올해에는 이런 행사가 뚝 끊겼기 때문이다.

영등포역 인근에서 만난 노숙인 김모(57) 씨는 "작년에는 교회 등에서 큰 것은 아니더라도 양말과 수건, 옷가지, 세면도구 등을 많이 나눠줬는데 올해는 성탄절과 관련한 행사는 물론 선물이 일절 없어졌다"며 "우리도 사회가 점점 우울해지고 있다는 점을 실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역 앞에서도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실감할 수 없었다.

노숙자 강모(40)씨는 "연말연시라 기대를 하고 서울역 쪽으로 옮겨 왔는데 아직 별달리 받은 것이 없다"고 말했고, 이름을 밝히지 않은 70세 남성은 "오전에 역 앞에서 빵과 우유를 나눠줘 받아먹었는데 성탄절이라고 급식이나 반찬이 달라진 것은 없다"고 언급했다.

(서울=연합뉴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오늘의 숏뉴스

많이 본 뉴스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댓글

    방금 달린 댓글
    댓글 작성
    첫 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0 / 300

    댓글 ∙ 답글 수 0
    • 최신순
    • 공감순
    • 비공감순
    매너봇 이미지
    매너봇이 작동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