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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록버스터 코메디가 되고 있는 역사 교과서 분쟁

역사 교과서를 둘러싼 논란과 혼동은 이제 하나의 거대한 코메디가 되고 있습니다. 몇차례 얘기했듯이 이렇게까지 우리 사회의 정력과 힘을 낭비할 꺼리조차 되지 않는 문제였습니다. 하지만 정체조차 불분명한 이념의 자양분을 먹고 쑥쑥 크고 자라더니 이제 어떻게 결론이 나든 간에 우리 사회에 깊고 아픈 상처를 남기게 됐습니다.

우선 현재 상황부터 정리해볼까요?

교육 당국은 현재 금성 교과서에 대해 양면 공격을 가하고 있습니다. 한쪽은 금성 교과서 불채택 압력입니다. 잘 아시는 대로 서울시교육청이 지난달 서울 시내 고교 교장들과 학교운영위원회 위원들을 줄줄이 불러들여 금성 교과서의 편향성을 자세히 알려주고 이미 선정한 학교는 다른 교과서로 바꾸도록 권유했습니다.

그리고 교육과학기술부는 각 시·도 교육청에 어제인 12월2일까지 역사 교과서 채택 상황을 보고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인사와 재정 지원 권한을 쥐고 있는 교육 당국이 이렇게 압박을 가하니 어느 교장이 버틸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도 어제까지 금성출판사 역사 교과서를 채택한 서울 시내 124개 고교 가운데 3분의 1 수준인 30~40개 학교만이 수정 채택을 통보해왔습니다. 거의 다 사립 고교라고 합니다. 그만큼 교장이 교사와 학운위에 대한 영향력이 크기 때문이겠죠. 어떻든 예상보다는 많은 학교에서 역사 과목 교사들과 학생, 학부모의 반발로 수정 채택 시도가 무산된 셈입니다.

그러자 교과부는 결과 통보 기일을 12월10일로 연기했습니다. 한마디로 일주일 이상 더 교과서 수정 채택을 독려하라는 싸인으로 해석됩니다. 일선 고교의 교장들만 교육청과 교사들 사이에 끼어서 마음 고생을 더 하게 생겼군요.

교육 당국의 또다른 공격은 교과서 수정 압력입니다. 확인하지는 못했습니다만 근현대사 교과서를 내는 5개 출판사에 각종 기관으로부터 무시못할 압력을 받았다는 전언입니다. 역사 교과서 저자들이 영 말을 듣지 않자 출판사를 몰아 세우는 것이죠. 그리고 효과를 봤습니다. 5개 출판사 모두 교과부의 수정 지시를 받아들이기로 했고 특히 가장 문제가 됐던 금성출판사도 수정 요구를 받아들이겠다고 굴복했습니다. 그리고 금성출판사는 저자들의 동의 없이 임의로 교과부 요구를 거의 다 받아들인 교과서 수정 내용을 교과부에 제출했다고 합니다.

자! 이제 새로운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집필진 동의 없이 교과서 수정 강행

출판사가 교과서 저자들의 동의 없이 내용을 고친 것은 명백한 위법 행위라는 것입니다. 법률 전문가들은 특별한 별도 약정 없이 일반적인 출판사와 저자와의 계약만 했다면 저작물, 즉 교과서 내용에 대한 저작권은 집필자에게 있고 따라서 출판사측의 임의 수정은 저작권법 위반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래서 금성 출판사측에 혹시 저작권에 별도 약정이 있었냐고 확인해봤더니 분명하게 '없다'고 대답하더군요. 그리고 '저작권은 저자에게 있다'고 스스로 밝혔습니다.

금성출판사 내부 사정을 잘아는 소식통이 전하는 바로는 출판사가 더이상 압력을 견디지 못해 저자들에게 고소를 당해 형사처벌과 민사상 배상을 하는 한이 있더라도 수정 요구를 받아들이기로 결정했다고 합니다. 정부가 출판사에게 위법 행위를 요구하고 조장한 셈입니다.

학교 현장은 교과서를 바꾸려는 교장 등 학교측과 이를 반대하는 교사들의 갈등이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일부 학교의 역사 교사들은 3가지 교과서를 추천해야 학운위가 결정할 수 있도록 한 교과서 채택 절차를 이용해 아예 추천 자체를 거부하고 있답니다. 어떤 역사 선생님은 학교 앞에서 1인 피켓 시위를 하고, 또다른 역사 선생님들은 다른 교사들의 수정 채택 반대 서명을 받아 교장의 의지를 꺾기도 했다고 합니다. 역사 교과서를 둘러싸고 일선 학교들이 전쟁터가 된 것이죠.

그런데 지금은 양측 다 당혹스러운 상태입니다. 교장의 입장에서는 '이미 금성출판사가 교과서를 수정하기로 했다면 굳이 금성출판사 교과서 대신 다른 교과서를 채택하라고 교사들과 싸울 필요가 없는 것 아닌가'하는 것입니다. 교사들 입장에서는 '싸워서 지키려던 교과서가 이미 내용을 바꾸기로 했으면 지켜낼 실체가 없어진 것 아닌가'하는 점에서 고민입니다. 말 그대로 뺏을 것도, 지킬 것도 없어진 것입니다. 그런데도 교과부와 교육청은 여전히 역사교과서를 놓고 싸우라고 독려합니다. 도대체 이런 상황을 어떻게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요?

지금 논란을 벌이고 있는 근현대사 교과서는 내년 1년만 더 쓰고 나면 그 자신이 역사 속으로 사라집니다. 2010학년도 부터는 근현대사 과목이 없어지고 다시 국사로 통합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보수 진영이 보기에 시뻘건 교과서라고 하더라도 1년만 참으면 자동으로 폐기되고 새로 국사 교과서의 검인정 절차를 거치면서 자신들의 가치관을 반영할 수 있는 문제였습니다. 또 지난 취재파일에서도 밝혔듯이 교과부가 최종적으로 고치라고 하는 내용도 대단히 지엽적이고 부차적인 문제들입니다.

그런데도 정부가 나서서 위법 행위를 부추기고, 절차와 제도를 무시하고, 교육 현장의 극심한 갈등을 부르는 행위를 해서 악순환의 고리를 만들어가는 이유를 저는 정말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이명박 정부가 내세우는 실용 정신과 경제적 마인드에 입각해 아무리 따져봐도 이건 완전히 손해보는 짓입니다.

 

[편집자주] '보도국의 신사'로 불리는 우상욱 기자는 1995년 SBS 공채로 입사해 사회, 정치,경제부를 두루 거치며 지금은 사회1부의 교육담당 기자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국민들의 관심이 큰 교육현장의 이야기를 차분하고 성실한 취재로 전해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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