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결혼했다(감독: 정윤수, 주연: 손예진, 김주혁, 18세 관람가)
일부일처제와 가부장제를 뒤집는 발상으로 화제가 됐던 동명 소설을 영화로 만들었습니다. 책을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있는데 문자를 보며 상상하고 길더라도 논거를 명확히 대며 또 상당한 전문가 수준에서 중간 중간 언급하는 축구 이야기 등으로 잡자마자 단숨에 읽게 만드는 그런 책이었습니다. 영화화한 수준은 영화의 기본 얼개를 거의 그대로 따라갑니다. 하지만 같은 내용이더라도 영화는 시청각을 모두 자극하는 매체이기에 받아들이는 느낌은 상당히 다르더군요.
소심하고 평범한 직장남 덕훈(김주혁)은 쿨하고 자유분방한데다 축구까지 좋아하는 여성 조인아(손예진)를 만나 사귀다가 결혼에 성공해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는데 어느 날 그녀가 다른 남자하고도 결혼하겠다는 폭탄선언을 합니다. 덕훈과 헤어지고 새로 결혼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일처다부제를 몸소 실천하겠다는 것이지요. 그 다음은 이어지는 갈등과 새로운 상황이 전개되면서 덕훈의 재사회화(?)과정이 계속됩니다. 충격-분노-이해-수용, 대충 이런 순서지요.
영화 자체는 깔끔한 로맨틱 코미디로 보면 손색없습니다. 맛깔 나는 상황대사가 계속되고 주연 배우들의 연기가 훌륭하기 때문이죠. 김주혁은 [싱글즈]에 이어 약간은 소심한 듯 하면서 순수함을 간직한 훈남으로 말랑말랑한 로맨틱 코미디나 멜로물에 최적이다 싶은 생각이 다시 들더군요. 같은 남자가 봐도 귀엽게 느껴지니까요. 그의 입으로 말해지는 대사와 내레이션으로 깔리는 독백이 구체적이고 생생해서 많이 웃게 됩니다. 남자로서는 절대 맡아서는 안 될 역할이라고 농담 비슷하게 이야기하던데 특이한 역할을 대중적으로 잘 소화시켰습니다. 손예진은 여기서 너무 귀엽고 예쁘게 나옵니다. 여기서 이 영화의 딜레마가 생겨납니다. 기존 제도를 뒤집는 구도가 손예진의 매력적인 모습 때문에 흐려진다는 거죠. 손예진 정도면 두 남자를 거느려도 괜찮다거나하는 관습이 작용하게 됩니다. 흥행을 생각해야하는 상업영화이기 때문에 로맨틱 코미디라는 외피로 잘 포장한다는 것이 그만 매체의 특성과 어우러지며 이상한 효과를 냅니다.
이런 말랑한 외피로 감쌌지만 남자인 저로서는 이중결혼까지는 그럭저럭 재미있게 봐줄만했지만 임신과 출산의 단계로 넘어가는 갈등에서는 불편해지더군요. 당당하게 이중결혼을 선언한 인아가 양쪽 집 부모들에게는 이 사실을 철저히 숨기며 현모양처 행세를 하는 것도 그렇구요. 이런 불편함은 앞에서 말씀드린 손예진의 매력과 김주혁의 자연스러운 생활연기가 어느 정도 상쇄시키기는 합니다만 소설의 주제가 흐릿해지는 부작용을 낳는 것 같습니다.
(* 손예진의 '노출'에 대해 질문을 많이 받는데, 너무 몸 사리는 스타급 여배우들에 비해 박수를 쳐주고 싶을 만큼 과감하긴 합니다만 영화 흐름에 걸맞다 싶을 선에서 조금 아쉬운 정도라고 생각되오니 너무 큰 기대는 안 하시는게 좋을 듯.... )
바디 오브 라이즈(감독:리들리 스콧, 주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러셀 크로우, 15세 관람가)
감독과 주연 뿐 아니라 각본에 [디파티드]로 유명한 윌리엄 모나한까지, 이 정도면 할리우드 드림팀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듯 합니다. 영화사에 길이 남을 걸작까지는 아니더라도 약간 실망스러운 구석도 없지 않지만 꽤 볼만한 첩보 스릴러입니다.
극악무도한 테러집단과 그 지도자를 잡기 위해 중동 구석구석을 누비며 첩보활동을 벌이는 페리스(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근성과 집념이 대단한 일급 요원입니다. 페리스를 지휘하는 것은 워싱턴 본부의 전략책임자 호프만(러셀 크로우)으로 이런 일급 요원을 거느렸으니 승진은 따 놓은 당상이죠. 그래도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해야 하는지라 현장의 페리스가 요청하는 인도주의적인 조치 등에 대해서는 냉정하게 잘라버리며 페리스와 갈등합니다.
요르단의 정보부 수장과 손을 잡고 테러집단 지도자의 소재 파악에 들어가는데 좀처럼 잡히지 않자 페리스는 호프만의 묵인 아래 북풍공작을 뛰어넘는 도를 넘는 공작에 들어갑니다. 이 부분은 스포일러가 될까봐 언급하기는 그렇지만 아무튼 나중에 문제 삼으면 목이 달아날 만큼 비윤리적입니다.
소말리아 내전을 다룬 [블랙 호크 다운]과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첫 액션 장면부터 위성으로 잡은 상세한 화면과 휴대폰을 이용한 통신으로 폭격 요청을 하고 본부에서 조종하는 무인 폭격기를 동원하는 첨단 첩보전의 위력을 실감나게 보여줍니다. 이후 이들이 벌이는 활동이 대 테러 전쟁이라는 것이 세계 평화를 위한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데 첩보전 와중에 현지 여인과 사랑에 빠진다든지, 마지막 위기일발의 해소 장면 등은 고루한 007 영화식 해법을 선택하는 안일함을 보여줘 다소 실망스럽게 만듭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볼만한 것은 두 배우의 연기 대결인데요. 이 영화를 위해 20킬로그램을 찌운 러셀 크로우가 이어폰을 귀에 꼽고 비정한 지시를 내리는데 이런 부분이 아들 차로 등교시키거나 피크닉 장소에서 이뤄지는 등 지극히 평범한 상황을 설정합니다. 감독의 역량이 돋보이는 장면은 역시 액션 장면으로 하늘의 위성과 정찰 항공기에서 잡아내는 카메라와 순식간에 벌어지는 액션의 빠른 편집 등은 긴박감과 비정함을 효과적으로 보여줍니다. 여기에 중후하게 성장한 디카프리오와 느글느글한 크로우의 연기 대결이 괜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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