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화당국이 시중의 자금난을 해소하기 위해 전방위적인 유동성 공급에 나섰다.
글로벌 신용경색으로 외화유동성이 악화된 상황에서 원화유동성마저 나빠질 조짐을 보이고 있는 데 따른 것이다. 이성태 한은 총재는 지난 19일 기자회견에서 "원화 유동성의 지나친 긴축으로 금융이 잘 돌지 않는 일이 없도록 한은이 충분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통화옵션상품인 '키코'에 가입한 우량 중소기업의 흑자도산이 잇따를 수 있다는 점에서 이들 업체를 위해 총액한도대출을 늘리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어 효과를 거둘수 있을지 주목된다.
일각에서는 이런 유동성 공급이 무분별한 지원으로 이어지면 업체의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를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을 내놓고 있다.
◇ 외화·원화 유동성 일제히 공급
22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한은은 오는 23일 금융통화위원회 회의를 열어 총액한도대출 규모를 늘리는 방안을 논의한다. 기존의 6조 5천억 원에서 8조 5천억 원으로 2조 원 가량 확대하는 방안이 유력한 상태다.
금통위가 총액한도대출 규모를 이번에 확대하면 9.11테러가 발생했던 지난 2001년 10월 이후 7년 만의 증액이다. 무엇보다 총액한도대출을 통해 키코 피해기업에 자금이 지원되도록 금통위 규정의 개정안을 상정하는 것도 검토 중이다.
은행채를 공개조작대상 증권에 포함시켜 원화를 공급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은행채가 환매조건부채권(RP) 방식 공개조작 대상 등에 들어가면 시장에서 은행채에 대한 수요가 늘면서 은행에 자금이 공급된다.
이와 함께 23일 오전 통화안정증권 7천억 원어치에 대한 중도환매 입찰을 할 예정이다. 한은이 통안증권을 중도 환매하는 것은 2003년 3월 이후 처음이다. 기관투자가들이 보유하고 있는 통안증권을 한은이 사들이면 시중에 원화 유동성이 공급된다.
추가 금리인하가 점쳐지는 점도 유동성 확대의 '결정판'으로 해석된다. 이 총재는 20일 국정감사에서 "물가 불안은 여전히 남아 있지만 경기도 상당히 안 좋을 것 같고 경상수지도 그렇게 안심할 상황은 아니다"면서 "그런 점을 고려해 경기가 과도하게 위축되지 않도록 유념하겠다"고 말해 금리인하 가능성을 시사했다.
가장 심각한 문제로 여겨지는 외화유동성 부분에서도 강도높은 지원이 예고돼 있다. 앞서 정부는 내년 6월 말까지 은행의 해외차입을 3년간 지급 보증하기로 하고 총 보증 규모를 1천억 달러로 설정하고 한은과 공동으로 300억 달러를 직접 풀기로 했다.
이와 별도로 21일에는 한은이 경쟁입찰을 통해 3개월 물 외화자금 15억2천만 달러를 직접 시중은행에 공급했다. 한은은 매주 정례적으로 달러 입찰을 실시할 계획이다.
◇ 막대한 유동성 공급…부작용 없나
전폭적인 유동성 공급은 미국발(發) 금융위기로 전 세계 각국이 적극적으로 유동성 공급에 나서고 있는 가운데 국내 자금시장도 한계점으로 치닫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개별 업체나 금융기관의 자체적인 유동성 문제라기보다는 글로벌 신용경색이라는 외부충격의 측면이 크다는 설명이다.
환율의 비정상적인 급등으로 '키코' 계약업체의 환차손이 갈수록 불어나고 있어 우량 중소기업의 흑자도산이 우려되는 점도 배경이 됐다는 분석이다.
당장 총액한도대출을 통해 키코 피해기업에 자금이 지원되면 즉각적인 혜택이 있을 것으로 은행권은 보고 있다. 총액한도대출은 한은이 시장 금리보다 훨씬 낮은 금리로 자금을 배정해 주는 것으로 그만큼 키코 피해기업에 낮은 금리로 자금이 지원된다.
하나은행 중소기업추진부 이장우 차장은 "지금도 시중은행들이 키코 피해기업에 유동성을 지원하고 있지만 금리가 크게 낮은 총액한도대출이 지원되면 해당 기업에는 더욱 직접적인 도움이 될 것"이라며 "다만 개별 업체당 한도를 얼마나 배정해주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막대한 유동성공급이 업체나 금융기관의 모럴해저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다. 금융권이 중소기업의 유동성을 지원하면서 4단계로 등급을 나눠 선별 지원키로 한 점도 이런 점을 의식한 조치였다.
김현욱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평상시라면 굉장히 정당화되기 어려운 조치들"이라며 "지금은 위험에 대한 우려가 위험을 증폭시키는 극히 불확실한 상황이어서 가능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그는 "다만 모럴해저드를 엄단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밝히고 이에 대한 사후 수급대책을 마련한 뒤 지원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배민근 LG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일각에서 '긴급 상황을 빙자해 낮은 비용으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할 수 있을 것"이라며 "현재로서는 상황 자체가 워낙 급박하기 때문에 오히려 유동성 지원이 실효를 거둘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고 설명했다.
시중유동성 증가가 물가 불안을 가중시킬 수 있다는 점도 우려되는 대목이다. 이와 관련 이성태 총재는 국감에서 "유동성이 부족한 부분이 좀 더 잘 흐를 수 있도록 하다 보면 전체적으로 물가를 자극할 가능성이 있는데 (유동성이) 남는 부분은 다시 거둬들일 것"이라고 밝혔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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