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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교과서 기술, 어떻게 변해왔나

4.19 의거→4.19 혁명, 여순반란→여순사건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를 둘러싼 논쟁이 좌우 이념 대립으로 번지면서 과거에도 이와 비슷한 사례가 있었는지, 세월이 변화하면서 역사 교과서 기술이 어떻게 바뀌어왔는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교육과학기술부와 한국교과서역사재단 등에 따르면 역사학계의 보수, 진보 논쟁으로 인한 `국사교과서 파문'은 14년 전인 1994년에도 있었다.

1994년 3월 국사교육내용전개 준거안 연구위원회가 학술회의에서 제주도 4ㆍ3 사건과 대구폭동사건 등 일부 현대사 용어를 `4ㆍ3 항쟁', `10월 항쟁' 등으로 표기하자는 안을 제시하면서 학계에 파문이 일었다.

1994년은 오랜 군사 정권을 끝내고 소위 `문민정부'로 통하는 김영삼 정부가 출범한지 1년째 되던 해였다.

논란 끝에 당시 교육부는 연구위원회의 연구 보고서와 국사편찬위원회 의견서 등을 토대로 1996학년도부터 적용될 교과서 개편안을 확정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우선 학계에서 논란이 됐던 근현대사 일부 용어를 수정키로 했다.

이에 따라 교과서에서 `4ㆍ19 의거', `5ㆍ16 군사혁명'으로 표기되던 용어가 `4ㆍ19 혁명', `5ㆍ16 군사정변'으로 바뀌었다.

`여수ㆍ순천반란사건'은 지역 이미지를 고려해 `반란'이란 단어를 빼고 `여수ㆍ순천사건'으로 수정했다.

그러나 제주도 4ㆍ3 사건과 대구폭동사건, 10ㆍ26 사태, 12ㆍ12 사태, 5ㆍ18 광주 민주화 운동 등은 학계의 이견, 사회적 통념 등을 고려해 이전처럼 표기토록 했다.

표기 문제 외에 1960년 3ㆍ15 부정선거의 실상과 이에 항거해 일어난 `마산의거'에 대한 기술을 새롭게 포함시키고 노동운동 부분에서 노사협조 체제의 구축, 노사관계의 합리적 조정 등의 중요성을 부각한 것도 달라진 부분이다.

이런 내용으로 개편된 교과서는 1996년 3월부터 발행돼 전국 중ㆍ고교에서 사용됐다.

학계의 논쟁 때문이 아니더라도 국사 교과서는 세월이 변화하고 정권이 바뀌는 과정에서 그 내용도 크고 작은 변화를 겪었다.

공산주의와 관련한 서술만 보더라도 1990년 9월 당시 문교부가 발행한 고교 국사 교과서에는 해방이후 `공산주의자들의 공작 활동이 심해지면서 사회 불안은 날로 고조되었다', `공산주의자들은 민족을 분열시키는 행동을 계속함으로써 사회 질서가 더욱 어지러워졌다', `공산주의자들의 책동으로 심각한 사회 혼란이 야기되었다' 등 공산주의자들의 `공작', `책동' 등을 비난하는 표현이 다수 등장했으나 1996년 발행 교과서에는 이런 표현들이 대부분 삭제됐다.

표현 수위가 완화된 것도 눈에 띄는 부분이다.

국토 분단과 신탁통치를 다룬 부분에서 1990년 교과서에는 `(신탁통치 결정에)온 국민은 분노하였으며…공산주의자들은 찬탁으로 돌아서 많은 국민의 빈축과 실망을 샀다'라고 돼 있었다.

그러나 1996년 발행 교과서에는 `우리 민족에게는 모욕으로 생각될 수밖에 없었다…대다수 국민들은 공산주의자들의 이러한 태도에 실망하였다'로 표현이 한층 부드러워졌다.

제주 4ㆍ3 사건과 관련해서도 1990년 교과서는 `공산주의자들이 남한의 5ㆍ10 총선거를 교란시키기 위해 일으킨 무장 폭동이었다. 그들은 한라산을 근거로 관공서 습격, 살인, 방화, 약탈 등 만행을 저질렀다'고 돼 있지만 1996년 교과서에는 `무장 폭동 진압 과정에서 무고한 주민들까지도 희생되었다'는 표현이 추가됐다.

이밖에도 1996년 교과서에는 정부 수립 후 반민특위의 활동에 대한 기술이 추가됐으며 4ㆍ19 혁명에 대해 `학생과 시민들이 중심이 되어 독재 정권을 무너뜨린 민주 혁명으로서 우리 민족의 민주역량을 전 세계에 보여주었다'고 표현됐다.

1996년 교과서는 5ㆍ18 민주화운동에 대해서도 `민주화를 열망하는 국민의 요구는 광주에서 비롯된 5ㆍ18 민주화 운동으로 이어졌다. 이 때 민주헌정 체제의 회복을 요구하는 시민들과 진압군 사이에 충돌이 일어났으며 이 과정에서 다수의 무고한 시민들도 살상되어 국내외에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등 5ㆍ18의 의미, 실상 등을 구체적으로 묘사한 부분이 새롭게 포함됐다.

그런가 하면 김대중정부 후반기인 2002년 발행된 고교 국사 교과서에는 `북한의 변화'라는 소주제 아래 천리마 운동, 4대 군사노선, 주체노선에 대한 언급이 포함돼 눈길을 끈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금성출판사의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의 경우 남북 관계나 좌우 이념 대립의 문제에서 이전의 교과서들과는 다소 다른 시각에서 서술을 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예를 들어 8ㆍ15 광복을 다루면서도 `연합군이 승리한 결과로 광복이 이루어진 것은 우리 민족 스스로 원하는 방향으로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는데 장애가 되었다', `일장기 대신 올라간 것은 태극기가 아니라 성조기였다. 광복을 공식적으로 확인하는 역사적 순간은 자주 독립을 위한 시련의 출발점이기도 하였다' 등 광복의 기쁨과 함께 그 이면도 소개하는 식이다.

역사에 대해 한층 객관적이고 균형잡힌 서술을 했기 때문이라는 게 집필진의 의견이지만 보수단체의 시각에서 보면 `객관적 서술'이 아니라 `좌편향된 서술'이라고 지적할 수 있는 부분이다.

`좌편향'이라고 주장하는 보수단체의 시각을 거꾸로 보면 그만큼 그동안 우리 교과서가 `우편향'돼 있었다는 것을 반증한다는 지적도 있다.

성공회대 조현연 교수는 "잘못된 과거가 있다면 솔직히 인정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동안 우리는 미국에 대해 `영원한 우방', 공산주의자에 대해 무조건 `빨갱이'란 시각에서만 접근하지 않았느냐"며 "좀더 균형잡힌 시각에서, 다른 측면에서도 볼 필요가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전의 고교 국사 교과서와 비교해 금성출판사의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 내용이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다.

국사 교과서는 2002년까지 국정 1종만 발행돼 왔으나 2003년 고교선택과목이 도입되면서 고1학년까지 국정 국사교과서를 쓰고 고2,3학년은 선택과목으로 `근.현대사' 검정교과서(6종)를 사용해오고 있다.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는 특정 출판사가 발행한 검정 교과서이고 이전의 고교 국사 교과서는 국사편찬위원회가 발행한 국정 교과서이므로 일단 발행 주체부터 다르다.

또 이전의 국사 교과서는 우리나라 역사 전체를 다루고 있어 근현대사 부분은 30여쪽 분량에 불과하지만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는 300쪽이 넘는 책 전체가 근현대사만 다루고 있기 때문에 기술이 훨씬 구체적이고 상세할 수 밖에 없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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