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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 막판 읍소도 허사…'식물대통령' 가속화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에게 '2008년 9월29일'은 '2001년 9월11일'만큼 잊혀지지 않는 날이 될 것으로 보인다.

'2001년 9월11일'은 부시 대통령이 테러조직 알카에다로부터 예상치 못한 '테러'를 당한 날이고, 하원에서 7천억달러 규모의 구제금융법안이 부결된 '2008년 9월29일'은 부시 대통령으로선 정치적 동지인 공화당 의원들의 믿는 도끼에 발등이 찍힌 날이 됐기 때문이다.

좀 더 의미를 부여하자면 내년 1월20일 퇴임을 앞둔 부시 대통령은 발등을 찍힌 정도가 아니라 '정치적 사망선고'나 다름없는 상황이 됐다.

이날 오전까지만해도 부시 대통령으로선 '설마'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부시 대통령으로선 이날 하원에 상정되는 구제금융법안이 위기에 처한 미국 금융시장을 안정시키고 더이상의 파국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하고 가장 효과적인 카드라고 믿었음에 틀림없다.

부시 대통령은 7천억달러의 공적자금을 쏟아붓는 것을 골자로 한 구제금융안에 대해 산고 끝에 전날 민주·공화당 지도부로부터 합의도 이끌어냈다.

따라서 그는 압도적 표차는 못되더라도 통과는 무난할 것으로 생각했을 법하다.

부시 대통령은 그동안 금융위기사태가 심각해지자 지난 주 거의 매일 연설이나 회견 형식은 물론 직접 민주·공화 양당의 지도부를 만나 구제금융안에 대한 의회동의를 호소했다.

부시 대통령은 23일 유엔총회 연설에서 금융위기에 대한 신속한 대처를 강조하면서 미 의회가 비상상황에 대처하는 데 필요한 구제금융법안을 처리할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 다음날 저녁 '골든 타임'엔 미 전역에 생중계된 TV 연설을 통해 구제금융이 없으면 고통스런 경기침체에 빠질 수 있다고 호소하며 국민을 직접 설득하는가 하면 의원들에게도 구제금융법안 처리가 "나라를 구하는 것"이라고 읍소했다.

25일 저녁엔 이례적으로 백악관에서 민주·공화 대통령 후보인 버락 오바마, 존 매케인 상원의원,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 해리 리드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 등 여야 지도자들과 회동, 금융구제안 합의도출을 시도했다.

비록 성공하진 못했지만 이런 회동 자체가 처음 있는 일이라는 점에서 부시 대통령이 금융위기 해결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는 이미지를 국민에게 강하게 심어줬다.

부시 대통령은 27일 주례 라디오 연설에서도 "구제금융안이 월스트리트가 아니라 메인스트리트(중소상공입과 서민)을 구하기 위한 것"이라며 구제금융안의 의회통과를 거듭 호소했다.

부시 대통령의 이 같은 노력의 결실로 행정부와 민주·공화 양당 지도부는 진통을 거듭한 끝에 28일 구제금융안에 합의하는 큰 진전을 이뤘다.

하지만 부시 대통령의 이 같은 '정성'도 선거를 앞둔 의원들의 마음을 바꿔놓지 못했다.

특히 민주당 의원들보다도 공화당 의원들이 자신이 속한 당의 최고지도부인 대통령에게 등을 돌림으로써 부시 대통령이 처한 '정치적 현실'을 가차없이 드러냈다.

부시 대통령으로선 자기당 의원들조차 설득못하는 '식물 대통령'임이 입증된 것이다.

이번 사태로 인해 퇴임을 4개월 앞둔 부시 대통령의 '레임 덕(Lame Duck.권력누수현상)'은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선 레임덕이 아니라 이미 '브로컨 덕(Broken Duck.권력통제불능상태)'이라는 지적까지 나온다.

공화당 마이크 펜스 의원은 이날 하원에서 구제금융법안을 부결시킨 뒤 "국민이 이번 구제금융법안을 반대했으며 의회도 마찬가지로 거부했다"고 말했다.

이날 표결 결과가 대통령의 뜻을 거부한 것이라기보다는 국민의 뜻을 따랐음을 강조, 자신의 선택을 합리화한 것으로 분석된다.

공화당 의원들의 대규모 반란은 오는 11월 선거를 앞두고 부시 대통령과 부시 대통령의 정치적 유산이 선거에 부담이 된다고 판단, 부시 대통령과 차별화하기 위한 포석으로 읽힌다.

그러나 펜스 의원의 이 같은 주장으로 부시 대통령은 '국민의 뜻을 모르는 대통령'으로 두 번 죽임을 당한 셈이 됐다.

(워싱턴=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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