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점기인 1926년 경성부 청사로 지어진 서울시청 본관 철거를 놓고 논란이 한창입니다. 시청 본관은 지난 1995년 8월 15일 광복절을 기해 철거된 옛 조선총독부 건물과 함께 일본 침략의 상징물로 손꼽히는 건물입니다. 시청사는 위에서 보면 일본의 본(本)자 모양을 하고 있는데, 총독부 건물의 일(日)자 형태와 북악산의 대(大)자 모양을 합쳐 일제가 서울 중심부에 대일본의 상징을 새겨뒀다는 설(說)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일제 잔재의 청산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철거가 마땅하다는 여론이 나오고 있는 배경입니다.
그럼 서울시가 시청사를 철거하려는 이유는 뭘까요? 서울시는 일제 잔재 청산이 아니라 신청사 건립을 위해 구청사를 철거하려고 합니다. 신청사를 짓는 과정에서 태평홀을 비롯해 본관 일부가 걸림돌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지요. 실제로 정밀안전진단을 해본 결과, 구조물에 심각한 결함이 있는 E급 판정이 나왔기 때문에 일단 철거한 뒤, 원형대로 다시 짓겠다는 게 서울시의 계획입니다. 건물을 철거한 뒤 원래 형태대로 다시 짓는다면 일제잔재 청산은 아니겠지요.
다음 쟁점으로는 문화재를 마구 훼손해도 괜찮냐는 지적이 나올 수 있겠지요? 이에 대한 해답은 시청 본관이 '문화재'냐 아니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어제 문화재위원회가 열리기 직전까지 서울시청 본관은 국가지정 문화재가 아니었습니다. 어제 오후 뒤늦게 국가지정문화재인 '사적'으로 가지정 받았지만, 그 전에는 등록문화재에 불과했습니다. 등록문화재는 개화기부터 6.25 전쟁 시기까지 근대 문화유산을 자발적으로 보존하기 위해 만든 제도적인 장치입니다. 관리책임을 맡고 있는 자치단체가 원형을 변경할 경우 문화재청장에게 신고만 하도록 돼 있습니다.
서울시는 지난 2002년 시청 본관과 시의회에 대해 문화재청에 등록문화재 등재를 신청했습니다. 그러나 문화재청은 시의회 건물만 등록문화재로 지정하고, 시청 본관은 반려했습니다. 이후 이듬해인 2003년 시청 본관을 등록문화재로 지정했는데, 당시에도 문화재로서의 가치에 대한 논란이 적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국가지정 문화재도 아닌데다, 등록문화재의 경우 관리 주체가 자치단체에 있기 때문에 안전을 위해 구조물의 결함이 있는 건물을 철거할 수 밖에 없다는 게 서울시의 입장입니다.
신청사 건립과정에서 본관 건물에 대한 정밀안전진단을 벌인 결과 당장 철거가 필요한 E급 판정을 받은 서울시는 전격적으로 본관 철거를 결정했습니다. 현행법인 '시설물 안전관리에 관한 특별법'에 따르면, 시설물의 구조상 공중의 안전한 이용에 미치는 영향이 중대할 경우 시설물의 철거 등의 조치를 하도록 돼 있습니다. 등록문화재의 원형 변경은 법적 강제력이 없지만, 시설물 안전관리에 관한 특별법은 법적 의무사항이기 때문에 서울시는 원형 보존이 가능한 중앙홀과 돔, 시장 집무실을 제외한 나머지는 안전을 위해 철거하고 원형대로 다시 짓기로 한 것입니다.
문화재청에서 시청 본관을 뒤늦게 국가지정문화재로 가지정했습니다. 앞으로 6개월간 현장답사와 구조물 안전진단 등을 검토한 뒤 정식으로 사적으로 지정하는 절차를 밟게 됩니다. 일제 잔재를 국가지정 문화재로 정하는 일이기 때문에 일제 청산에 대한 여론도 이 과정에서 충분히 검토해야 하겠지요. 안전을 위해 구조물을 철거해야 한다는 서울시의 입장도 면밀하게 조명될 것입니다. 시청 본관의 운명은 앞으로 6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러봐야 정확히 알 수 있습니다. 물론 본관 일부가 허물어진 상태여서 100% 원형보존은 불가능하지만 말입니다.
조선시대 서울 시청 자리에는 무기를 제조, 보관하는 '군기사(軍器사)'라는 관청이 있었다고 합니다. 당시 사람들은 '군기사'를 무고(武庫)라고도 불렀는데, 지금은 무교(武橋)동이라는 지명만 남아 전해지고 있습니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 후세 사람들이 지금의 서울시청을 어떤 모습과 이야기로 기억하게 될까요? 역사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와의 대화라는 얘기가 새삼 의미있게 다가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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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14년차의 경력에도 왕성한 취재력을 과시하는 유희준 기자는 현재 사회1부 소속으로 서울 시청을 출입하고 있습니다. 굵직한 특종과 호소력 짙은 시사다큐로 2002년 한국방송대상과 2003, 2005년 한국기자상을 두번이나 수상하며 SBS 탐사보도의 위상을 높인 베테랑 방송기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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