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기름띠가 바다를 뒤덮었던 사고 당시의 악몽은 어느 정도 잊어가고 있지만 이젠 머리가 텅 빈 것처럼 멍한 상태입니다. 뭘 어떻게 해서 먹고 살아야 할 지를 생각하면 답답하기만 합니다".
지난해 12월7일 해안가로 몰려온 기름덩어리의 직격탄을 맞았던 충남 태안군 소원면 의항리 이충경 어촌계장(37)은 4일 사고후 6개월이 지난 요즘의 심경을 이렇게 토로했다.
"삼성이든 정부든 뭐 하나 확실한 답을 해주는 사람이 없고, 매번 그얘기가 그얘기이니 이젠 우리 스스로 살길을 찾아야겠지요".
전날 유류오염사고 피해주민 지원과 환경 복원을 위한 특별법 시행령이 국무회의를 통과하고 관계부처 장관 등으로 구성된 특별대책위원회도 20일께 첫 회의를 열기로 일정이 잡혔지만 이씨를 포함한 태안지역 주민들에게서는 '이제 뭔가 될 것 같다'는 기대보다는 냉소적인 분위기가 감지된다.
사고후 지난 2일까지 115만6천여명에 달하는 자원봉사자들을 포함해 모두 184만4천여명의 복구인력이 기름띠 제거작업에 매달린 결과 이제 태안 지역 바닷가는 사고 전과 같이 눈부시도록 푸른 물빛을 되찾아가고 있다.
해경과 국토해양부, 충남도 등으로 구성된 방제당국은 오염이 극심한 해상과 해안에 대한 1·2단계 방제작업을 마치고 작업조건이 열악한 섬과 해수욕장 암반 구간 등에 대한 마무리 방제작업을 진행중인 가운데 '방제종료선언'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다.
태안군은 관내 32개 해수욕장중 소원면 구름포·의항·백리포·천리포 해수욕장 등 4곳을 제외한 나머지 해수욕장을 예년처럼 7월1일부터 정상 개장하겠다고 선언한 상태다.
지난 4월18일부터 고기잡이배들의 조업이 공식적으로 재개되고 지난달 19일부터는 피해가 상대적으로 적었던 천수만과 근소만 지역에서 굴과 바지락 등의 양식어업도 허용됐다.
또 피해보상을 위한 증거자료로 남기기 위해 흉물처럼 방치됐던 굴 양식장 시설 철거도 지난달 20일부터 시작됐다.
그러나 소원면과 원북면, 이원면 등 기름띠 '융단폭격'을 맞은 지역에서는 아직도 곳곳에서 사고의 흔적이 배어나오고 있다.
소원면 의항리의 한 주민은 "겉으로 보이는 곳은 어느정도 깨끗해졌지만 철거중인 굴 양식장에서는 여전히 유막이 뜨고 자갈층과 뻘밭을 걷어내면 아직도 기름이 많다"고 전했다.
닦아내도 닦아내도 묻어나오는 유막과 함께 피해 주민들의 가슴을 짓누르는 것은 앞으로 생계를 어떻게 꾸려갈지에 대한 고민이다.
의항리 이충경 어촌계장이 사고후 정부 등으로부터 지원받은 돈은 1차 생계비 470만원과 2차 생계비 350만원, 작년 12월치 방제작업비 80만원을 합쳐 900만원 정도.
그는 "아이가 어리고 평소에도 별달리 쓰는 것 없이 살아오던 터라 이 돈으로 지금까지 생계는 그럭저럭 꾸려왔지만 다른 집들은 대부분 수협 등 금융기관에 피해사실 확인서를 내고 대출을 받아 하루 하루 살아가고 있다"면서 "적게는 몇백만원에서 많게는 2천만원에 이르는 대출금은 언제 받게 될지도 모르는 피해보상금을 미리 당겨 쓰고 있는 셈"이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지난 2월부터 시작된 삼성중공업 해상크레인 예인선단과 허베이스피리트호 선장 및 선원들의 1심 재판은 이제 마무리단계에 접어들어 내주중 검찰의 구형이 이뤄지고 이달 중순에는 판결이 내려질 예정이다.
그러나 삼성중공업과 유조선사의 '책임 떠넘기기' 공방속에 주민들의 주장처럼 삼성중공업측의 무한책임을 이끌어낼 수 있는 판결이 나올 가능성은 희박한 상태다.
태안군 유류피해복구 연합대책위 간부들이 서울 이태원동 삼성 이건희 회장 집무실앞과 태평로 삼성본관 앞에서 지난달 28일부터 8일째 단식농성을 이어가고 있는 모습은 사고후 반년이 지나도록 앞날에 대한 불안과 시름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는 태안 주민들의 답답한 심경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태안지역의 한 주민은 "이런 답답한 상태가 계속된다면 다시 대규모 시위라도 벌이며 목소리를 내야 하는 것 아닌 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태안=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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