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은 키가 작고 친밀감이 가는 모습이다. 재능이 없는 사람은 아니다."
1899년 대한제국을 방문한 독일의 하인리히 왕자(1862-1929)는 고종에 대한 인상을 이렇게 표현했다.
당시 동아함대사령관 자격으로 대한제국을 국빈 방문한 하인리히 왕자가 친형인 독일 황제 빌헬름 2세에게 보낸 이와 같은 구절이 담긴 보고서가 발견됐다.
정상수 명지대 교수는 독일 외교부 정치문서보관소가 소장한 대한제국 관련 외교문서를 연구하다가 이 보고서 사본을 발견했다고 27일 말했다.
1899년 6월 29일 일본 요코하마에서 작성된 20여 쪽에 이르는 이 보고서에서 하인리히는 이 해 6월 8일 도이칠란트호를 타고 제물포에 도착해 며칠 간 조선에 체류하면서 파악한 대한제국의 상황을 자세히 적었다.
특히 도착 이튿날인 6월9일 궁궐을 방문해 고종과 황태자를 만난 그는 "고종은 키가 작고 나이는 약 48세에 매우 친밀감이 있으며 재능이 없지 않았다"며 "존경심보다는 연민을 불러 일으키는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이어 "내부 분열과 궁정 내 당파 싸움, 암살 시도, 불확실한 정치적 상황 등이 이 가엾은 왕을 의지할 곳 없는 처지로 몰아넣고 있다"고 말했다.
후에 순종이 되는 황태자에 대해서는 "바보 같은 인상이고 언어 능력과 논리적 사고력이 거의 없다"며 "최근 독살 시도를 당해 체력이 완전히 소실돼 시종이 부축해야만 서 있을 수 있다"고 묘사했다.
실제로 1년 전인 1898년 역관 김홍륙이 고종을 독살하기 위해 커피에 독약을 탄 사건이 있었는데 황태자가 이 때 커피를 마시고 피를 토하며 쓰러진 이후 신체적·정신적으로 큰 후유증을 겪은 것으로 전해진다.
셋이 함께 한 만찬 자리에서는 고종이 독일 군대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군대라고 여러 차례 칭찬했으며 특히 독일 군복에 큰 관심을 보였다고 하인리히는 적고 있다.
그는 이와 함께 대한제국의 정치·경제 상황도 소개했는데 그가 체류하는 동안에만 법무대신 등 고위관료를 대상으로 한 3차례의 암살 미수 사건이 있었다고 밝혀 당시 혼란스러웠던 정치 상황을 보여줬다.
하인리히 왕자는 특히 보고서 상당 부분을 대한제국의 군사제도와 더불어 대한제국에 진출한 독일 상사인 '세창양행'이 채굴하던 강원도 금성의 당현금광에 관해 설명하는 데 할애하고 있어 방문 목적도 금광 채굴권 관련 부분에 무게가 실린 것으로 정 교수는 설명했다.
최근 고종이 빌헬름 2세에게 보낸 밀서를 발견하기도 한 정 교수는 "이 같은 친밀한 관계가 있었기 때문에 이후 1906년 고종이 독일 황제에게 직접 밀서를 보내는 것도 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태진 서울대 교수는 "하인리히 방문 당시는 대한제국 수립 초기로 자생적인 근대 산업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하던 시점"이라며 "이후 일제가 대한제국의 근대 산업화 노력을 축소하고 서구 열강에 의한 이권 침탈로 몰아가려고 했는데 한·독이 우호적인 협력자적 관계를 갖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자료가 국외에서 발견된 것은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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