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완연한 봄이네요. 봄은 왔지만 극장가는 좀처럼 움추린 어깨를 펴지 못하고 있습니다. 전에 말씀드린대로 3,4월이 극장가의 전형적인 비수기인데다 그다지 화제작이나 문제작도 별로 없습니다. 이런 가운데 [추격자]가 4백만 관객을 돌파하고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의 기록도 깨트리고 지금까지 올해 최고 흥행작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이번 주말 예매율을 보니 여전히 상위권에 머물고 있네요.
이번 주에는 9개의 영화가 개봉되는데 저는 단 두편만 봤습니다. 영화와 함께 취재를 맡고 있는 문화체육관광부에 일이 좀 많아서 여러 시사회를 놓쳤습니다. 권상우, 송승헌이 나오는 [숙명]도 못봤고, 나탈리 포트만, 스칼렛 요한센의 연기 대결이 기대되는 [천일의 스캔들]도 못본지라 불완전한 뉴스레터를 보내게 되는 점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또 다음 주에는 제가 일주일 동안 출장을 가게 되서 한 주 거르게 될 것 같네요.
워터호스(감독:제이 러셀, 주연:에밀리 왓슨, 벤 채플린, 전체관람가)
영국 네스호에 산다는 괴물에 착안해 만들어진 영화입니다. 2차 대전 당시 군에 입대한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소년이 호숫가에서 이상한 알을 주워왔는데 그 알에서 전설의 착한 호수 괴물이 깨어나고 소년과 교감한다는 내용입니다. 무섭게 생긴 불독에게 아기 괴물이 쫓기는 장면이 재미있고 괴물과 실사를 합성한 장면의 완성도도 썩 괜찮습니다. 괴물과 소년의 이야기로만은 심심할 것 같아 전쟁과 군인들을 끼워넣은 것도 적절합니다. 전체관람가 등급에 걸맞게 착하고 따뜻한 이야기에 반전 메시지까지 살짝 곁들여져 부모님들과 초등생과 유치원생 정도 아이들이 보면 딱맞을 영화입니다.
어메이징 그레이스(감독:마이클 엡티드, 주연:요안 그리피스, 마이클 갬본, 전체관람가)
영국 하원의원으로 노예무역 폐지에 앞장섰던 윌리엄 윌버포스의 일대기를 영화로 만들었습니다. 귀족들과 상인들의 탐욕의 제물로 짐짝보다 못한 취급을 받으며 여기저기로 팔려나가는 흑인 노예제도의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사회를 움직이는 가장 정점에 서있는 정치의 기능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알려줍니다. 노예선 선장으로 일하다가 자신이 얼마나 비인간적인 일에 종사했는지를 뒤늦게 깨닫고 청빈한 수도사로 생을 마감하는 인물도 멋있습니다. 노예제의 비인간성을 고발하는 감동적인 연설에 모두 동조해 의원들이 즉각 법안을 폐지한다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마는 당시 현실은 그러지 못했습니다. 자신의 건강 나아가서는 목숨까지 바치는 지난한 투쟁을 거쳐 의미있는 일을 해낸 집념의 사나이의 모습이 교훈적입니다.
다소 딱딱하기 쉬운 전기 영화지만 탄탄한 연기력을 갖춘 조연들의 카리스마 덕분에 영화는 생기를 얻습니다. [어톤먼트]에서 18세 브라이오니 역을 맡았던 로몰라 가라이가 윌리엄의 연인이자 평생 반려로 나옵니다. 백인 여자 치고는 넙데데한 얼굴인데도 매력과 기품이 넘치는 모습입니다.
이밖에 리얼돌을 여자친구로 삼아 동네에서 인정받는다는 [내겐 너무 사랑스러운 그녀]와 배우 유지태가 연출을 맡은 단편영화 [나도 모르게], 노곤함이 밀려오는 얼굴을 지닌 스티브 부세미가 연출한 [인터뷰] 등이 개봉됩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시기 바랍니다. 출장 다녀와서 다시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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