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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성, 그리고 '네 모녀 실종사건'

이호성.

1990년대 해태 타이거즈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강타자.

4번 타자로서는 그리 크지 않은 체격이었지만 내가 응원하던 팀과 해태가 경기하는 날이면 난 그가 타석에 들어설 때마다 어떤 타구를 날릴 지 늘 가슴 졸여야했다,

하지만 90년대 후반으로 접어들며 그의 성적은 하향 곡선을 그렸고 2001년 결국 은퇴 수순을 밟게 됐다는 기사를 스포츠 신문에서 봤던 것이 그에 대한 나의 마지막 기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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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에게서 서울 창전동에 사는 모녀 4명이 20일 가까이 실종됐단 사실을 처음 듣게 된 것은 지난 주 목요일쯤이었다.

후배는 40대 어머니와 20살, 19살, 13살인 딸 세 명이 지난 달 18일부터 연락이 끊겨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고 말했다.

단순한 실종 사건은 아닐까 범죄 가능성은 있는 것일까..

처음엔 많은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실종 사건의 용의자를 경찰에 확인하면서 난 그에 대한 기억을 다시 떠올리게 되었다.

이호성.

그가 모녀 실종 사건에 연루됐다는 사실을 처음엔 믿기 힘들었다.

경찰도 신중한 입장이라며 아직 단순 가출인지, 납치인지 실종인지 또 일가족이 살아있는지 확인할 수 없다고 했다.

다만 이호성을 유력한 용의자로 보고 쫓고 있다는 점, 실종된 김씨의 계좌를 추적해 범죄 연관 여부를 확인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실종 당일 밤 아파트 CCTV에 이호성으로추정되는 인물이 찍혔다는 사실은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런 취재 결과를 바탕으로 보도 여부를 선배들과 상의했지만 쉽사리 결정내리긴 힘든 상황이었다.

당시엔 나도 경찰도 어느 누구도 일가족의 생사 여부를 단언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만약  당시 일가족이 이씨에게 납치된 상태로 생존해 있었다면, 보도가 나간 뒤 일이 잘못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금 더 신중히 사실 관계를 확인하기로 하고 실종된 김씨의 아파트를 가보기로 했다.

후배에게 실종되던 날 밤 김씨의 아파트에서 이씨를 봤다는 목격자를 찾아보고 아파트 CCTV를 확인하라고 했다.

그리고 다행히도 아파트 CCTV를 구할 수 있었다.

아파트 CCTV를 보고 난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CCTV에 찍힌 남자의 모습은 내가 10년 전 그라운드에서 봤던 이호성, 바로 그였다.

얼굴은 확인할 수 없었지만 체격이나 걸음걸이는 내가 기억하는 그의 모습 그대로였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그가 5차례에 걸쳐 커다란 가방을 옮기는 모습이었다.

그 안에 뭐가 들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목격자의 말에 의하면 당시 이호성은 꽤 당황한 표정으로 무거운 물건을 옮기는 것처럼 보였다고 한다.

모녀 네 명이 집에 들어오지 않은 지 20일이 지났다는 주변 사람들의 말과 이호성이 찍힌 아파트 CCTV까지 확보한 이상 더 이상 보도를 미룰 수 없었다.

하지만 아직 일가족이 살아있는지 이호성이 진짜 범행을 저질렀는지 확신할 수 없는 상황이라 최대한 신중히, 조심스레 접근하기로 했다.

그렇게 지난 토요일 우리의 첫 단독보도가 나간 뒤 마포경찰서는 각 언론사에서 모인 기자들로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김씨가 살던 집, 김씨가 운영했던 음식점, 김씨가 아파트를 계약했던 부동산 등은 이씨와 김씨의 행적을 찾아온 기자들로 몸살을 앓았다.

국민들의 관심과 취재 열기가 높아지자 경찰은 결국 이호성을 유력한 용의자로 공개수배하고 피해자와 이호성의 사진이 실린 전단지를 배포했다.

전단지에 실린 단란한 네 모녀의 사진에 가슴이 찡했다.

공개수배 뒤 경찰과 언론은 이호성의 행적을 더욱 맹렬히 쫓기 시작했다.

이호성의 옛 동료 선수들과 실종된 김씨의 가족과 친구 등 사건의 실마리를 풀 수 있는모든 단서를 찾기 위해 매달렸다.

그리고 혹시...

일가족이 살아있지는 않을까 기대감도 가져봤지만..

공개수배한 지 채 하루도 지나지 않아 이호성은 차가운 한강물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일가족의 시신도 발견됐다.

네 모녀 실종 사건은 피해자와 가해자가 모두 숨지면서 그렇게 끝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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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이호성이 경찰에 붙잡혀 마포경찰서로 압송됐다면 난 그에게 묻고 싶은게 참 많았다.

그가 꼭 검거되기를 정말 바랬기 때문에 어제 그의 투신 자살 소식에 난 한참을 멍한 기분에 사로잡혀야 했다.

아직 범행 동기나 수법 등에 대해 경찰 수사가 진행 중이지만 이 사건은 앞으로 내 기자 생활에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을 것 같다.

사실 이번 보도는 선배의 자리가 부끄럽게 먼저 사건을 보고해 준 후배와 쉽지 않은 상황에서 아파트 CCTV를 구한 후배, 열심히 취재원들을 따라다니며 팩트들을 챙겨온 후배 등똘똘하고 성실한 후배들이 함께 만들어 준 것이라 생각한다.

끝으로 본의 아니게 폐를 끼친 아파트 주민과 음식점 사람들, 힘든 상황에서도 전화를 받아 준 김씨 가족들에게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특히 아파트 CCTV를 우리에게 처음 공개하는 바람에 일자리를 잃게 됐다는 아파트 관리사무소 직원 분께는 정말 죄송하다는 말을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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