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 없어 한국에 온 사람들에게 자비로 먼저 치료비를 낸 뒤에 국가에 청구하라니요? 당장 먹고 살 돈도 없는데…"
전남 여수시 화장동 출입국사무소 외국인보호소에서 화재가 발생해 이주 노동자 10명이 숨지고 17명이 다친 지 11일로 만 1년을 맞는다.
그러나 당시 보호소 바닥에 깔려있던 우레탄의 유독가스를 흡입한 외국인 노동자들은 지금까지도 호흡기 장애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등 후유증으로 고생하고 있다.
작년 2월 여수 보호소 304호에 있다가 부상한 리궈호우(李國厚.44)씨는 호흡곤란과 불면증 등의 치료비로 한달에 20여만원이 필요하지만 직업도 없고 모아놓은 돈도 없어 치료도 생활도 힘겹기만 하다.
자신을 간호하기 위해 중국에서 온 부인과 함께 생활하려면 돈을 벌어야 하지만 몸도 성치 않은 자신을 인력시장에서 사용할 사람도 없고 비자도 치료와 소송 목적인 G-1이기 때문에 노동 자체가 불법이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태다.
여수 화재 뒤 경기도 평택시 송탄지역에서 리씨와 함께 생활하는 루보(盧波.45)씨와 우찌엔칭(宇建淸.35)씨는 자신도 연기 흡입으로 몸이 좋지 않지만 연방 답답하다며 가슴을 치는 등 상태가 더 안 좋은 리씨를 위해 작년 11월 1달치의 약값을 리씨에게 주기도 했다.
리씨는 현재 아침, 점심, 저녁에 매번 6알씩 약을 먹어야 한다.
2002년 6월 입국해 경남 김해시 공장에서 근무하다 출입국관리사무소의 단속에 걸려 작년 2월 여수 보호소에 입소하게 된 슈레이(徐磊.32)씨.
슈씨도 리씨 등 다른 외국인 노동자 8명과 함께 304호에 있다가 `불이 났다'는 소리에 잠을 깬 뒤 시꺼먼 연기를 피해 화장실로 대피, 필사적으로 물을 얼굴에 적셔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그는 화재가 난 지 1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종종 끔찍했던 당시 상황이 꿈에 나타나 식은 땀을 흘리며 잠에서 깬다고 하소연했다.
호흡기 장애와 PTSD 판정을 받은 그는 현재 경남 창원시 외국인보호센터에서 생활하며 2주에 한번씩 치료를 받고 있다.
화재 직후 배상금으로 받은 1천만원은 6년 전 한국에 입국하기 위해 중국인 브로커에게 진 빚 800여만원을 갚는 등 전부 사용해 치료비는 커녕 자신을 간호하려고 입국한 누나와 함께 쓸 생활비도 없다.
리씨와 슈씨 등 여수 화재 피해자들은 치료비 지급과 관련해 정부의 무관심, 자신과 간호 목적으로 입국한 친척의 체류비용을 국가가 부담하지 않는 점 등이 문제점이라고 입을 모았다.
피해자들과 법무부가 작년 3월 체결한 양해각서에 따르면 부상자는 치료비를 국가배상신청에 의해 간접적으로 받을 수 있으며 동반 입국한 친척 1명의 입국과 체류 비용은 정부가 부담하지 않는다.
안현숙 이주여성상담소장은 "정부가 치료비의 수령권한을 지닌 병원에 협조요청을 제대로 하지 않아 부상자들이 제 때 치료를 받지 못하는 등 2차 피해를 보고 있다"며 "당장 생활할 돈도 없는 사람들이 어떻게 치료비를 낼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러나 정부는 치료비 사후지급은 이미 양해각서에서 합의한 내용으로 원칙에 따라 치료비를 지급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법무부 출입국기획과 김영근 사무관은 "치료비는 국가배상절차에 의해 지급된다"며 "치료 목적으로 재입국한 피해자 14명 중 4명이 치료비 1천320만원 배상신청을 했고 조만간 병원으로 돈이 지급될 것"이라고 말했다.
여수 참사 피해자들은 불법체류자 신분이기때문에 작년 4월11일 일괄적으로 출국한 뒤 작년 5월부터 지난달까지 후유증 치료를 목적으로 모두 14명이 재입국했으며 최대 3년까지 한국에 체류할 수 있다.
배상은 여수 보호소의 관할 검찰청인 광주고검에 배상신청을 하면 국가배상법에 의해 배상심의회가 열리며 이후 양해각서에 따라 치료비가 진료 병원에 지급된다.
경남외국인노동자상담소 이철승 소장은 "현재 불법체류자가 23만명으로 추산된다. 이런 환경을 개선하지 않으면 `여수 참사'는 언제든지 재발할 수 있다"며 "이들이 자진귀국시 재입국 비자를 제공해 일정기간 취업을 허용하는 등 불법체류자 문제를 양성화해서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창원=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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