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방학 성수기인데도 극장가의 관객은 폭발적으로 늘어나지는 않고 있습니다. 지난주에는 가족용 애니메이션 [꿀벌 대소동]이 1위를 차지하는 등 할리우드 영화들이 강세를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판타지 영화인 [황금 나침반]은 그렇다 치고 [내셔널 트레져2]가 강세를 보이는 것을 보니 관객들의 성향이 안전하게 최소한 볼거리는 건질 수 있는 영화 쪽으로 쏠리는 것 같습니다. 이번 주 예매율을 보니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 30% 대에서 1위를 [무방비 도시]가 그 뒤를 이어 2위에 올라 있어 한국영화가 회생할 수 있을지 기대됩니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전체관람가)
앞선 글에서 자세히 말씀드렸지만 이번 주 제일 먼저 추천해드리고 싶은 영화입니다. 익숙하게 봐온 할리우드 스포츠 영화와는 사뭇 다릅니다. 전통적인 스포츠 영화라기보다는 스포츠를 소재로 한 휴먼 드라마에 가깝습니다. 보약 에피소드가 무척 재미있고 등장인물들의 편안하고 솔직한 대화도 귀 기울여 들을 만합니다. 저는 주말에 가족과 한 번 더 볼 계획입니다. 다시 한번 곰곰이 음미할 만한 대사와 장면이 많은 것 같거든요.
무방비 도시(15세 관람가)
소매치기를 소재로 한 범죄 액션극에 끈끈한 혈연이라는 신파를 버무렸습니다. 소매치기들의 리얼한 범죄행각과 형사와 범죄자들, 범죄자들끼리의 액션과 폭력이 이어지는 중반까지는 훌륭한데 인간의 의지로는 어찌할 수 없는 혈연의 숙명을 처연하게 그리고자 의도한 후반부는 과도한 감정으로 넘칩니다. 너무 쉬운 선택을 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무리 영화라지만 등장인물들이 맘대로 죽여도 죄책감을 느낄 수 없는 좀비들이 아닌 이상 그들을 죽이고 살리는 것에 대한 선택을 쉽게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 그것 이외에는 대안이 없는 상황이어야 그 인물의 죽음에 공감하거나 동정을 하게 됩니다.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불치병이나 불의의 사고 같은 것은 손쉬운 해결 방법이지만 영화를 망치는 독성은 치명적입니다. 여기서도 주요 등장인물의 죽음이 100% 황당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100% 공감하기도 어려운 어정쩡한 상태입니다.
미모와 지략으로 소매치기 업계를 평정해나가는 백장미를 연기한 손예진은 청순녀에서 팜므파탈로 변신해 새로운 매력을 발산합니다. 손짓 몸짓 하나하나에 요염함을 담고 있고 수시로 갈아입고 나오는 의상과 머리 모양도 볼거리를 줍니다. 그런 소매치기를 잡으려 노력하는 형사 조대영의 캐릭터는 불만스러운 부분이 많습니다. 잡범이나 잡아들이는 말단 형사도 아니고 광역수사대에 몸담으며 굵직한 사건을 수사하는 형사치고는 너무 멍청하게 나옵니다. 백장미의 유혹에 힘없이 무너지고 소매치기 조직을 일망타진하려는 의지도 없어 보입니다. 한마디로 프로의식이 없어보여 매력도 없습니다. 로맨틱 코미디라도 선남선녀들이 제대로 일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데 하물며 범죄 액션물인데…….[하얀 거탑]의 똑똑하며 야망이 넘치는 장준혁의 이미지가 아직 강하게 남아있어서 그런지 [리턴]때도 그렇고 이번에도 아쉬움을 느낍니다.
조대영의 어머니로 나와 파격적인 연기 변신을 보여주는 김해숙의 연기가 눈에 뜨이지만 역시 백장미 앞에서 면도날을 씹는 강한 모습을 보여줬으면 끝까지 독하게 나가야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점도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나중에 그녀의 도움으로 가게를 차리는 등 캐릭터의 일관성이 흐트러집니다. 손병호, 김병옥 같은 탄탄하고 무게감 있는 조연들의 호연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인 짜임새의 미흡함 때문에 개운한 맛을 느끼기 어렵습니다. 배우들의 탓이라기보다는 인물과 인물들의 관계를 구축한 감독과 시나리오 탓이라는 이야기입니다.
써티 데이즈 오브 나이트(18세 관람가)
알래스카 북쪽에 일 년에 한 달 동안이나 밤이 지속되는 마을에 나타나는 흡혈귀라는 착상이 훌륭한 호러물입니다. 해가 없는 30일 동안은 꼼짝없이 흡혈귀 세상이고 인간은 무한공포에 떨어야 하니까요. 신체 절단 같은 장면도 등급에 걸맞게 확실하게 보여주는데 가장 압권은 하늘 꼭대기에서 부감으로 마을을 비추며 흡혈귀들의 학살행각을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중반 이후부터 해가 뜨기까지 30일이라는 긴 기간을 버티는 인간들의 저항에 대한 묘사는 재미가 확 떨어집니다.
더 재킷(15세 관람가)
일단 고통스러운 시간여행이라는 착상에서 [나비효과]와 많이 닮았습니다. 걸프전에서 민간인 소년이 쏜 총에 머리를 맞았는데도 기적적으로 살아난 잭 스탁스는 몇몇 사건을 거친 뒤 정신병원에 수감되는데 그곳에 사명감을 가진 한 의사의 특별한 치료법을 시술받는데 이상한 약물을 투여한 뒤 저항방지용 재킷으로 온몸을 묶은 다음 몇 시간씩 시체 보관 캐비닛에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잭은 그곳에 누워있는 동안 미래로 시간여행을 다녀오고 자신과 주변 사람들의 불행한 운명을 조금이라도 바꿔보고자 노력한다는 내용입니다. 에이드리안 브로디, 키이라 나이틀리를 비롯해 제니퍼 제이슨 리, 대니얼 크레이그, 크리스 크리스토퍼슨 등 화려한 캐스팅을 자랑하는데 그 재미나 짜임새는 [나비효과]보다는 덜한 듯 합니다. (큰 키와 개성있는 눈을 가진 에이드리안 브로디는 아무리 봐도 마음 착해 보이는 기린을 닮은 것 같습니다.)
이밖에 동화속 공주가 뉴욕 한복판에 떨어져 벌어지는 소동을 그린 디즈니의 실사와 애니메이션 합성영화 [마법에 걸린 사랑]과 스티븐 킹의 원작소설을 오랜만에 제대로 스크린에 옮겼다는 평을 듣는 [미스트]와 일본 청춘영화 [붕대클럽], 'FUCK'이라는 단어에 대한 인터뷰와 애니메이션으로 구성된 다규멘터리 [그것에 관하여] 등이 개봉됩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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