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스카우트 - 잘 버무려진 허구와 현실

[스카우트]의 김현석 감독은 야구광입니다. 사회인 야구 팀에서 선수로 활약하고 있고, 그가 각본을 맡았던 [해가 서쪽에서 뜬다면]도 야구와 관련 있고, 감독 데뷔작인 [YMCA 야구단]은 아예 일제 강점기 야구 도입기를 다루었고, [슈퍼스타 감사용]에는 왕년의 '오리궁둥이' 김성한 역으로 우정출연 하기까지 했습니다. 이번 작품 [스카우트]는 오래전에 구상해놓고 내심 데뷔작으로 만들려고 계획했었지만 여의치 않다가 이번에 꿈을 이뤘습니다. [광식이 동생 광태]를 볼 때 김현석 감독이 만든건지도 모르고 사전정보 전혀 없이 보았는데 '참 남자의 심리와 남녀 관계를 섬세하게 잘 표현하는구나.'하고 느꼈습니다.

 1980년 5월 9일, 왕년에 잘나가던 언더핸드 투수였지만 지금은 대학 체육부 직원인 호창은 부장이 광주일고 3학년 특급투수 선동열을 데려오면 자기가 타던 '브리사'를 주겠다는 말에 무작정 광주로 내려갑니다. 하지만 이미 라이벌 대학에서 물밑작업을 벌여논 터라 선동열을 만나기는커녕 어디에 있는지조차 파악할 수 없습니다. 여관방에서 만화책 빌려보며 자장면으로 끼니를 해결하고 있는데 YMCA에서 교사로 일하고 있는 세영을 만납니다.

 세영은 7년 전 광주에서 올라와 대학 신입생 시절 호창과 알콩달콩 사귀며 잘 나가다가 이소룡이 죽던 날, 일방적으로 호창에게 이별을 통보해 가슴에 아픈 못을 박았던 사연 있는 여인입니다. 왜 자신에게 일방적으로 이별을 통보했는지 세영은 그날이후 여태까지 속 시원한 이유를 설명해주지 않습니다. 게다가 일편단심 세영을 짝사랑하는 서곤태라는 남자가 있는데 현재는 당구장을 운영하지만 예비군 훈련만 아니었더라면 서방파 두목 김태촌 자리에 있었을 거라며 콧수염도 자기가 먼저 길렀다고 주장하는 회개한 조폭이 일방적인 애정공세를 벌이고 있는데, 서울에서 나타난 호창을 곱게 볼 리가 없습니다. 곤태는 어떻게든 호창을 빨리 서울로 올려보내버리기 위해 스카우트 작업을 은밀하게 돕기로 결정하는데 은밀하기는커녕 별 도움이 못됩니다. 호창은 선동열 부모님에게 먼저 접근해 환심을 사기 위한 작전을 벌이는데 라이벌 대학의 물밑작업이 워낙 탄탄해 도저히 가망은 안보이고, 그날 5월 18일이 다가오면서 광주 분위기는 점점 뒤숭숭해집니다.

 [스카우트]는 국보급 투수 선동열이 1980년 5월 광주에 있었다는 사실에서 출발합니다. 그 사실만 빼놓고는 90%가 꾸며낸 이야기라고 영화 앞부분에 밝히고 들어갑니다. 야구선수 스카우트가 소재라서 야구 경기 장면이 나오겠거니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학교 운동장에서 연습하는 장면, 선동열집 마당에서 투구 연습하는 장면 정도만 나옵니다. 유명 운동선수와 스카우터, 매니저의 세계를 파고 들어간 톰 크루즈 주연의 [제리 맥과이어]와 흡사한 면도 있지만 그런 스타일도 아닙니다.

 영화는 호창과 세영의 이야기가 중심축이고 호창의 직업 내지는 과제가 스카우트이고 세영이 몸담고 있는 시민단체는 80년 5월 광주의 현실을 반영하는 장치로 작용합니다. 스포츠 자본주의의 핵심인 스카우트 이야기와 남녀 간의 멜로, 또 광주 민주화 운동까지 함께 담긴다고 했을 때 솔직히 그것을 어떻게 잘 버무려냈을까 우려가 앞섰습니다. 하지만 모든 소재가 제 맛을 잃지 않고 영화 속에 잘 버무려졌다는 생각입니다. 매번 비슷한 캐릭터에 비슷한 연기로 일관하고 있어 살짝 걱정되는 측면이 있는 임창정은 이번에도 무사히 잘 넘어갑니다. 웃기려고 쓸데없이 오버하지 않고, 적재 적소에 타고난 순발력으로 애드리브를 구사하며 매끄럽게 넘어가고 마지막 한 방울 눈물이 필요할 때 제대로 터뜨려줍니다. [똥개]를 제외하고는 그동안 비련의 여인을 넘어 궁상맞기까지한 캐릭터만 맡았던 엄지원도 이번에는 적극적이고 능동적이고 구체적인 여성 역할을 잘 소화해 냅니다. '뽀뽀를 좋아하는 운동권 여대생'이라는 홍보문구가 있는데 왜 그런지는 영화 속에서 직접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모든 남자들이 한 번 해보고 싶은, 말도 안 되는 남녀간의 게임이 등장합니다. 호창과 세영의 관계에서 막판에 밝혀지는 이별의 이유도 당시 시대상황과 밀접한 관련이 있고 또 많은 궁금증을 유발하다가 '아! 그래서 그랬구나!'하게 만드는 장치로 적절하게 배치되었습니다.

 [화려한 휴가]에서 온몸으로 심각함을 덜어주는 코믹 파트를 맡았던 박철민은 여기서는 부담 없이 힘빼고 자신의 장기를 유감없이 발휘합니다. 시인 지망생으로서 세영에게 건네는 자작시 '비광송'은 정말 압권입니다. 이 비광은 후반부에 다시 한 번 웃음을 주는 장치로 작용합니다. 이 비교는 영화에도 적용될 수 있습니다. 광주의 5월을 정면으로 다룬 [화려한 휴가]가 역사적 중압감에 눌리는 바람에 여러 가지 성과물에도 불구하고 입체성 획득에 성공하지 못했다고 평가할 수 있는 반면, [스카우트]는 한발 살짝 물러서 많은 부분을 픽션으로 구성하는 바람에 오히려 시대상황에 짓눌리지 않고, 적절히 녹여낼 수 있다고 봅니다. 치열한 그 시절이 지난 뒤를 슬쩍 보여주는 에필로그도 야구 경기장면과 잘 어우러져 콧날을 찡하게 울립니다. (당초 설정됐던 시나리오와 다른 결말이라는데 바꾸기를 정말 잘했다는 생각입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선동열이 우리나라 최고 투수였다는 사실 정도만 알고 야구에 대한 아무 사전 지식 없이도 즐겁게 즐길 수 있는 스카우트 소동과 남녀관계의 섬세한 심리 묘사, 코미디와 액션에 이은 가슴 찡한 결말까지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잘 만들어진 영화라는 생각입니다.

(**[화려한 휴가] 개봉 당시 장점과 성과는 감추고 단점을 부각시키는 어정쩡한 리뷰기사를 실었던 모 신문은 이번에도 기자시사 이틀 뒤 바로 '시작은 깔끔했다.(중략) 하지만 요상하게 광주와 뒤범벅된다……. 광주라는 역사적 무게감에 짓눌리는 바람에 스토리가 방향을 잃고 만다.어정쩡한 멜로라인과 더불어 영화의 본질을 흐렸다…….'는 내용의 리뷰를 실었더군요. 광주를 껄끄러워하는 이 신문에서 일하는 기자들은 입사 후 단체로 의식 교육을 받는 것인지, 아니면 입사전형때 이 분야에 대한 응시자의 입장과 회사의 입장을 명확히 확인한 뒤 선발하는 건 아닌지 고개가 갸웃거려집니다.)

Copyright Ⓒ SBS.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오늘의 숏뉴스

많이 본 뉴스

스브스프리미엄

스브스프리미엄이란?

    댓글

    방금 달린 댓글
    댓글 작성
    첫 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0 / 300

    댓글 ∙ 답글 수 0
    • 최신순
    • 공감순
    • 비공감순
    매너봇 이미지
    매너봇이 작동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