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인터뷰 기사에서 기자 출신 소설가인 김훈 선생이 "앞으로 기자들을 다룬 소설을 쓰는게 목표다"라고 한 걸 봤습니다. 예술가가 자신이 몸 담고 있는 세계를 창작의 소재로 삼는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속 사정을 잘 아니까 더 현실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반면 창작하는 내내 창작자와 직간접적으로 관계를 맺고 있는 '관계자'들의 시선이 뒷통수를 간지럽힐 것이기 때문이죠.
자신이 몸담고 있는 세계는 아니더라도 내가 쓴 대본으로 만든 연극의 주인공과 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이나 집단이 그 공연을 보러 왔다면? 기분이 어떨까요.
지난 9일 한국 소극장 뮤지컬의 대표작이랄 수 있는 '지하철1호선' 객석에 특별한 손님들이 찾아왔습니다. 3천5백회째 공연날 노숙자, 실직자, 외국인 노동자 같은 '지하철1호선'의 진짜 주인공들이 극단 학전과 아름다운 재단의 초대를 받아 구경온 것이죠.
개인적으론 10년 만에 '지하철1호선'을 다시 봤는데, 사실 보는 내내 객석에서 어떤 반응을 보일까 제가 괜히 안절부절했습니다. 우리 사회의 온갖 인간 군상들이 등장하는 '지하철1호선'은 노숙자, 외국인 노동자, 불량 학생, 소시민, 강남 부인 등을 '특별히' 미화하거나 추하게 그리지 않습니다. 극이란 건 어느정도 전형성 없이는 전개가 어렵다는 걸 감안하면 비교적 담담하게 이들을 묘사하고 있죠.
초반에는 다소 굳어있던 '진짜' 주인공들도 20분쯤 지나자 웃기도 하고 박수도 치고 점점 공연에 몰입하는 것 같았습니다. 사실 이 날 오신 분들이 연극이니 뮤지컬이니 공연을 접할 기회가 보통 사람들 보다 적었겠죠. 그래서인지 아주 큰 박수나 환호는 나오지 않았는데 공감의 크기는 그런 걸로 가늠하는 건 아니겠죠? (요즘 공연장에 가면 너무 몰입하시는 분들 때문에 괴로울 때가 많습니다. 별 것도 아닌 것 같은데 오버해서 박수치고, 휘파람불고 환호하고)
공연이 끝난 뒤 연출자인 김민기 씨는 배우들과 함께 무대에 나와 말했습니다.
"늘 가슴 한구석에 불안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혹시 저희가 여기에 등장하는 분들과 같은 처지에 있는 분들을 욕보이는 건 아닌지, 또 그분들을 빙자해서 관객들한테 허튼 짓을 하는 것은 아닌지..."
"어쩌다가 어렵고 힘든 상황에 처했더라도 그것 때문에 남한테 함부로 무시당하거나 홀대받거나 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는 배우들과 함께 객석에 앉아있던 한 사람, 한 사람... 모두에게 장미꽃을 나눠줬습니다. 보통은 관람객이 배우들에 꽃을 주는데 김대표는 이날 찾아왔던 관객들이 뮤지컬 '지하철1호선'의 진짜 주인공이기 때문에 꽃을 받아야한다고 생각한거죠.
김민기 대표는 지난 14년동안 쉼없이 달려온 '지하철1호선'을 일단 4000회까지 운행한 뒤 계속할지 고민해볼 것이라고 합니다. 관객이 찾는다면 계속 해야하지 않느냐는 뉘앙스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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