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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패척결TF와 국정원법

부패척결이 국정원의 고유 업무라는 해석을 따져보니...

국가정보원의 정치사찰 여부가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국가정보원은 이명박 한나라당 경선후보의 처남 김재정씨와 관련된 부동산 자료를 열람했다는 사실을 시인했습니다. '부패척결 테스크포스' 소속인 6급 직원 (현재는 5급)이 자료를 열람했고 이는 정상적인 업무 수행 차원이었다는 겁니다.

국정원은 보도 자료도 냈는데 부패척결 TF 소속 A직원이 '부동산비리 수집업무'를 담당하면서 '수도권 공직자 부동산 투기사례' 보고서 작성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이 전 시장과 관련된 비리 첩보를 입수했고 이를 확인하기 위해 2006년 8월 행자부에 이 전 시장의 처남인 김재정씨의 자료 열람을 신청하여 관련 자료를 입수했다는 내용입니다. 이 보도자료는 국가정보원 인터넷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누구나 읽어볼 수 있습니다.

국정원은 그러나 이 직원이 2006년 8월에서 10월 사이에 열람 자료를 분석한 결과 부동산을 차명으로 숨겨놓았다는 등의 핵심 내용이 확인되지 않아서 보고서를 작성하지 않고 행자부에서 받은 자료도 상부에 보고하거나 외부 유출하지 않고 전량 폐기했다고 밝혔습니다. 국정원은 이 직원의 자료유출 여부를 '과학적인 조사 방법' (거짓말 탐지기 조사를 말합니다)을 동원해 조사했다는 사실까지 공개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실제로 이 직원이 자료를 유출했느냐는 부분 보다는 이러한 정보 수집과 조사 활동이 '정상적인 업무 수행'이었다는 부분이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국정원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참여정부 출범 이후 사회 각 분야의 고질적 비리에 관한 구조적 고리를 끊을 수 있는 급소 파악이 필요하다는 판단으로 부패척결 TF를 발족해 운영해 왔으며 이는 국정원법에 근거를 둔 거라는 것이죠. 그러면서 정부조직법 제16조 제1항과 국정원법 제3조 제1항 제1호를 근거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먼저 정부조직법 해당 조항입니다.

제16조 (국가정보원) ① 국가안전보장에 관련되는 정보·보안 및 범죄수사에 관한 사무를 담당하기 위하여 대통령 소속하에 국가정보원을 둔다.

② 국가정보원의 조직·직무범위 기타 필요한 사항은 따로 법률로 정한다.

다음으로 국정원법의 해당 조항을 직접 보시죠.

제3조 (직무) ① 국정원은 다음 각호의 직무를 수행한다.

1. 국외정보 및 국내보안정보(대공·대정부전복·방첩·대테러 및 국제범죄조직)의 수집·작성 및 배포

2. 국가기밀에 속하는 문서·자재·시설 및 지역에 대한 보안업무. 다만, 각급기관에 대한 보안감사는 제외한다.

3. 형법중 내란의 죄, 외환의 죄, 군형법중 반란의 죄, 암호부정사용죄, 군사기밀보호법에 규정된 죄, 국가보안법에 규정된 죄에 대한 수사

4. 국정원직원의 직무와 관련된 범죄에 대한 수사

5. 정보 및 보안업무의 기획·조정

그러면서 국정원은 정보기관의 비공개 활동의 특성을 고려해 국정원의 모든 직무 내용을 법률에 열거하는 것은 부적절하며, 직무 범위를 합목적적, 포괄적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한 서울중앙지법 판결(2005고단2570)까지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2005년 12월에 나온 이 판결은 과거 국가안전기획부 시절 정보수집 조직인 미림팀에서 생산한 도청 녹음테이프와 녹취보고서를 이용해 삼성측에서 돈을 받아내려한 전직 안기부 직원 등에 대해 유죄를 인정한 것인데 비록 이러한 업무가 국가정보원의 법령상 고유직무에 속하지 아니한 정치사찰을 목적으로 한 것이라 하더라도 적어도 국가정보원 직원의 외형상·사실상 직무수행의 범위에 속하는 것일 경우에는 이를 누설한 것도 직무상 기밀을 누설한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 핵심입니다.

좋습니다. 판례에 대한 해석은 다를 수 있다고 치죠. 하지만 조금 상식적으로 생각해 봅시다. 정부조직법에서는 국정원의 업무는 법률로 정한다고 했으니 굳이 정부조직법을 따로 거론할 필요는 없습니다. 따져볼 것은 국정원법 제3조 뿐이죠.

국어를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국정원법 제3조 제1항 제1호 "국외정보 및 국내보안정보(대공·대정부전복·방첩·대테러 및 국제범죄조직)의 수집·작성 및 배포"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여기에 사회 전반의 부패구조를 조사하는 게 해당이 될까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부패 문제를 조사하는 기관은 따로 있습니다. 감사원과 경찰, 그리고 검찰이죠.

공직자의 부패가 국가 안위에 관련된 것 아니냐고 하면 참 할 말이 없습니다만 그런 확장 해석을 피하기 위해 국내 보안 정보의 범위를 괄호 안에 분명하게 적어 놓았습니다. 바로 대공, 대정부전복, 방첩, 대테러, 국제범죄조직에 관련된 정보입니다. 공직자의 부패 문제가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건 자명한 사실입니다.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은 언론 브리핑에서 "국정원의 부패척결 TF 운용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기자: 국정원의 부패척결 TF 운용에 대한 입장은?

천 대변인: 검찰의 판단이 있기 때문에, 그 문제에 대한 법적 적합성, 적법성은 저희는 당장은 명료하게 하지 않을 생각이다. 그런 얘기하는 것 자체가 검찰에 부담 줄 수 있어서. 국정원은 정치 중립을 지켜왔고 정치 사찰은 없다. 지금 제기된 사안들을 그것과 연결시키는 것은 비약이라고 보고 있다. 

기자: 국정원의 직무 범위 안에 있다는 것인가?

천 대변인: 국정원의 해석을 현재로선 존중한다.

기자:  국정원법 제3조를 근거로 하는데, 부패 척결은 이 조항 어디에 포함되나?

천 대변인: 국정원이 해명하지 않았나? 자기 해석 포함한 보도자료 낸 것으로 알고 있다.

기자: 국정원의 활동 내용은 대통령에게 보고하나?

천 대변인: 국정원의 정책 관련 보고는 있다. 유전 사업 보고도 있었고, 제이유 보고도 국정원이 시작했다. 항운노조 비리도 국정원이 기초 조사했다. 부패 정보를 국정원이 조사하고 수사기관에 넘기는 것은 문제가 없다고 본다. 대통령에게 일일이 직보되지 않는다. 민정에서 필요한 것에 한해 대통령에게 보고한다. 청와대 내에서 정책 과정에 반영한다. 흔히 상상하듯 특정한 보고가 바로 중간 가공 없이 대통령에게 직보된다는 이미지는 갖지 않는 게 좋겠다. 그렇게 보고되는 것은 거의 없다. 국정원이 입수한 정보를 수사기관에 넘기는 것, 부패 관련 부분이라도 정당하고 유익한 활동이라고 본다. 국정원이 밝힌 내용을 그대로 믿는다면, 그 내용은 그 궤를 넘지 않는다고 본다. 검찰이 정확하게 조사해서 판단할 것. 검찰의 판단을 기다려봐야 할 문제라고 본다.

문답 내용 가운데 부분적으로 동의할 수 있는 부분도 있고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습니다. 국정원이 광범위한 정보 수집 활동을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합니다. 하지만 그 업무는 법에서 정하고 있는 것으로 제한되어야 합니다. 그 점에서 부패 정보를 국정원이 TF까지 만들어서 조사한 것은 법이 정한 업무 범위를 넘어서는 겁니다. 따라서 위 대화 내용 가운데 ①번 부분은 동의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법 테두리 안에서 정보수집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부패 관련 정보를 비롯한 각종 범죄 단서를 확보한 경우는 어떻게 될까요. 그것이 정당한 업무 범위를 벗어나는 것이라고 해서 그냥 묻어둬야 할까요? 그건 당연히 아니죠. 그 점에서 그렇게 입수한 정보를 수사기관에 넘기는 것, 부패 관련 부분이라도 정당하고 유익한 활동이라고 한 ②번 부분에는 동의합니다.

하지만 그 둘이 합쳐지면 어떻게 될까요. 직접 부패정보를 업을 삼고 조사해서 수사기관에 넘기는 것은 출발이 잘못된 것이므로 동의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위의 두 대목이 합쳐지면서 전체적으로는 법이 정한 업무 범위를 넘어서게 되는 겁니다.

만약 천호선 대변인의 말에 우리 사회가 동의한다면 국정원은 모든 국가사정기관의 역할을 포괄하는 '빅 브라더'가 되고 말 겁니다. 우리는 그러한 기관을 두는 폐해를 너무나 분명하게 봐 왔기 때문에 국정원법에서 국내 부문에 대한 수사 기능을 최대한 제한하도록 법을 개정했던 겁니다. 기관의 명칭조차 과거 중앙정보부, 국가안전기획부와의 단절을 분명히 하기 위해 국가정보원으로 바꾼 것 아닙니까.

당장 편리하고 필요하다고 해서 권력이 국가 정보기관을 이렇게 사용하면 안 됩니다. 군사 정부가 그런 식으로 쓰면 안 되고 우리는 국민이 뽑은 민주 정부이니 그래도 된다는 식이라면 정말 위험하기 짝이 없는 발상입니다. 만약 국정원이 이번처럼 공직자에 대한 사찰을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있다면 왜 정보기관과 수사기관이 따로 있는 것인지, 그리고 왜 우리가 그동안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국가 정보기관의 국내 기능을 제한해 왔는지를 되새겨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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