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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하드 4.0 : 아날로그 액션의 매력

극장에서 한 번 보았던 영화를 DVD나 TV로 다시 접했을때 가장 많이 느끼는 것은 ‘분명히  내가 본 영화인데 저런 장면이 있었나’하는 생각입니다. 2-3주 전 홀드백이 풀렸는지 케이블 TV 영화 채널에서 류승완 감독의 ‘짝패’를 자주 틀어주더군요. 다시 보았는데 대략 6-70%는 새로 보는 것 같았습니다. 사실 한번 본 영화라면 대략적인 줄거리와 인상적인 장면과 대사 내지는 ‘그 영화에서 그 배우 멋졌다.’ 정도의 이미지만 남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브루스 윌리스의 ‘다이하드’는 제게 조금 예외적인 경우입니다. 말 그대로 쌍팔년도인 1988년에 선보인 [다이하드]는 지금 봐도 시대에 뒤떨어지는 면이 별로 없는 잘 만든 영화입니다. 처음 본 이후에도 지상파 방송이나 케이블에서 틀어줄 때마다 집중해서 다시 봐 1-2년에 한 번씩은 봐 온 것 같군요. 볼 때마다 손에 땀을 쥐면서...

고립된 초고층 첨단 빌딩인 나카토미 빌딩에 아내가 인질 가운데 한명으로 잡혀있고 외부와 연락이 두절된 상태에서 극악한 악당들과 홀홀 단신 맞대결을 벌이는데, 거친 입담으로 신세한탄 하면서 넓은 오지랖으로 악당을 하나씩 처치하고, 실수로 소년을 총으로 쏜 아픈 과거가 있는 흑인 경찰과 교류하고, 끝으로 마지막 장면에서 영화 내내 촐싹대 인질들을 위험에 빠뜨렸던 방송기자 귓방망이를 후려친 뒤 풀샷 화면에 흥겨운 캐롤송이 울려퍼지며 영화는 끝납니다. 이후 한겨울 공항을 무대로 한 2편은 업그레이드 돤 면모를 보였지만 3편은 다소 실망스러웠습니다. [다이하드]의 인기 요인의 핵심은 철저한 ‘독고다이’ 정신 때문인 것 같습니다.

최초 시리즈가 만들어진지 19년만에 52세의 브루스 윌리스가 4편을 찍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다이하드 팬으로서 걱정스러운 부분이 많았습니다. 소재고갈에 우려먹기로 전작의 명성에 의존한 졸작이 나오지 않을까하는 염려였는데 어제 시사회에서 공개된 [다이하드 4.0]은 이런 우려를 말끔하게 씻어줍니다. 이런 우려는 2년전 폭스사의 제안을 받은 브루스 윌리스도 심하게 했습니다. 결국 [워터월드]의 랜 와이즈먼을 영입하고 훌륭한 시나리오가 완성되고 나서야 출연을 결정했다고 합니다.

뉴욕 경찰 존 맥클레인(브루스 윌리스)은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기 거부하는 반항적인 딸 루시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데, FBI 사이버 수사대가 해킹을 당하고 본부에서는 용의선상에 오른 해커 매튜 파렐(저스틴 롱)을 FBI로 압송하라는 임무를 받습니다. 여기서 존은   임무를 시키는 반장에게 ‘내 짬빱이 몃갠데 새벽 3시에 그런걸 시키느냐. 그런건 신참 시키면 안되겠냐‘며 중견을 넘어선 노땅 형사로서 의미심장한(?) 반항을 하기도 합니다. 하여튼 매튜를 데리러 갔는데 그 현장에서 무시무시한 전문가들과 심한 총격적을 벌이고 이 사건에 거대한 음모가 숨어있음을 동물적인 감각으로 눈치챕니다.

그 뒤는 역시 언제나처럼 한심하고 답답한 FBI와 국토안보부를 뒤로하고 혈혈단신으로 나라도 구하고 딸도 구하는 외로운 싸움을 벌인다는 이야기입니다. 디지털 시대의 아날로그 형사’라는 메인 카피처럼 이번에 등장한 악당 테러리스트는 미국의 통신망과 육상, 해상, 항공 교통을 일거에 마비시키며 혼란에 빠뜨리는데 정작 악당의 목적은 다른데 있습니다.

현란한 기교와 눈속임으로 표현하는 컴퓨터 그래픽 대신 대부분의 액션 장면들을 위험을 무릅쓰고 ‘아날로그 적’으로 실제 촬영 했다고 합니다. 자동차로 헬기를 부수고, 전투기가 고가도로를 부수는 등 찍기는 힘들지만 보기에는 시원시원한 장면들이 펼쳐집니다. 지구를 구하겠다는 거창한 사명감이 아니라 그냥 귀찮긴 하지만 그래도 직접 나서서 어쩔 수 없이 악당들과 맞서는 존 맥클레인이라는 캐릭터의 매력도 그대로 살아남아 있습니다. 디지털 감성으로 무장한 젊은 파트너 매튜와 아날로그적 감성을 선보이며 티격태격 하거나 서로 아이디어를 짜내는 장면도 재미있습니다. 악당과 통화하던 화상전화 렌즈를 슬며시 가리며 동료에게 중요한 말을 건네는데 악당이 바로 ‘이보쇼, 화상전화 렌즈 가려도 소리는 들리거든..’하는 매서운 질책을 받는 장면 같은 것은 참으로 적절한 유머입니다. 존의 딸도 아버지 못지 않게 한 성질 하는 모습도 인상적이면서 귀엽구요.

[다이하드]의 상업영화로서의 매력에 푹 빠져있으며 이번 영화에 흡족한 만족으로 극장 문을 나서는데 앞서가던 젊은 여성들이 ‘아~ 쫌 지루하더라. 난 중간에 졸았어’하는 말을 듣고 영화 감상에도 세대에 따른 감수성 차이는 건널 수 없는 강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악당의 캐릭터가 1,2편 만큼 징글징글하지 않은 것 같고, 악당 두목의 애인으로 나오는 매기 큐는 미모뿐 아니라 훌륭한 쿵푸 솜씨까지 선보이는데 캐리비안의 해적 3편의 주윤발 처럼 너무 일찍 사라져 아쉽습니다. [미션 임파서블3]보다 덜 섹시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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