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미국 연방대법원이 경찰의 공권력 집행과 관련해 한가지 판결을 내놓았습니다. 개인적으로 경찰출입 기자 생활을 오래해서인지 상당히 관심이 간 기사였습니다만, 국내 언론에는 그다지 소개가 되지 않았습니다.
내용은 이렇습니다.
지난 2001년 3월 미국 조지아주 코웨터카운티의 한 도로에서 당시 19살이었던 '빅터 해리스'라는 남성(이하 '빅터')이 과속으로 차를 몰았습니다.
제한속도가 시속 88킬로미터였는데, 빅터는 시속 117킬로미터로 운전을 했다고 합니다.
당연히 경찰 눈에 띄었겠지요.
경찰이 경광등을 반짝이며 뒤쫓아가자 빅터는 차를 세우기는 커녕 더욱 속도를 내, 시속 144킬로미터로 줄행랑을 쳤습니다.
경찰이라고 가만 있었겠습니까? 영화에서 자주 나오지 않습니까?
미국 경찰차들이 떼지어 용의자 차량 추적하는 장면 말입니다.
당시에도 경찰차 몇 대가 동원돼 빅터가 탄 자동차를 따라갔습니다.
영화에서는 대부분 경찰차들이 바보처럼 당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현실은 그렇지않나 봅니다.
빅터는 용감하게 2차선 도로를 요리저리 지그재그 운전을 하며 14킬로미터나 달아났습니다만, 거기까지였습니다.
더 빠른 속도로 뒤쫓아온 경찰 차량 한 대가 빅터가 몰던 차의 뒷부분을 일부러 들이받은 겁니다.
차의 중심을 잃게해서 운전자를 붙잡기 위해서죠.
미국에서는 경찰이 도주하는 과속차량이나 용의자 차량을 단속할 때 뒤에서 일부러 부딪혀서 붙잡는 게 보편화된 관행이라고 합니다.
달아나는 운전자들이 경찰의 경고를 무시한 만큼, 위험을 무릅쓰고 차량을 추돌해 운전자를 붙잡는 것도 정당한 공권력 행사로 간주된 것입니다.
문제는 과속으로 차를 몰아보시는 분들은 아시겠습니다만, 어떻겠습니까?
들이받는 경찰도 위험을 감수하고 들이받겠지만, 뒤에서 들이받힌 차량은 순간적으로 중심을 잃게 되고, 운전자가 어떻게 해 볼 도리도 없이 도로 옆으로 튕겨져 나가거나 도로 분리대 등을 들이받고 멈추게 됩니다.
이때 도주 차량 운전자가 안전벨트라도 했거나, 에어백이라도 장착된 차량이라면 운전자가 덜 다칠 수 있겠지만, 잘못하면 큰 부상으로 이어지기 쉬울 겁니다.
빅터 역시 운이 따라주지 않았나 봅니다.
경찰차에 들이받힌 뒤 빅터가 몰던 차는 도로 옆으로 튕겨나가 처박혔는데,
당시 충격으로 빅터는 사지가 마비되는 중상을 입게 됐습니다.
여러분이 빅터라면, 빅터 가족이라면 어떻게 했겠습니까?
과속운전 걸려 도망치다 경찰차에 받혀 팔다리가 마비돼버렸으니..
빅터는 경찰의 과잉단속이라며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시민자유연맹이라는 미국의 한 시민단체도 함께 소송에 참여했다고 합니다.
문제는 위에서도 잠깐 언급을 했습니다만, 미국에서 경찰의 차량 추돌 단속이 정당한 공권력 행사로 간주되다보니, 빅터처럼 도망가다 경찰차에 받혀 다치거나 사망한 운전자들이 잇따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 연방대법원 판결은 미국 사회에서 상당한 관심을 불러모았나 봅니다.
판결 여부에 따라 경찰의 차량 추돌 검거 관행의 존폐 여부가 달려있었기 때문입니다.
연방대법원은 이렇게 판결했습니다.
"과속 차량 단속을 위해 경찰차가 뒤에서 들이받아 차량 운전사가 중상을 입거나 또는 사망에까지 이르더라도 경찰관에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없다"
"다른사람에게 심각한 신체적 부상을 줄 수 있는, 용의자의 과속행위 때문에 경찰의 추격이 촉발되었으므로 경찰의 추격과 추돌 검거는 정당하다"
자, 어떻습니까? 우리나라라면 어땠을까요? 물론 우리나라는 차량 추돌 검거 관행이라는 게 없지만 말입니다.
언론은 어떻게 반응했을까요?
저도 미국의 공권력을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
지난 1997년 괌에서 대한항공 여객기가 추락했을 때 일입니다.
당시 취재기자로 출장을 갔었는데요, 합동 장례식장을 취재할 때였습니다.
저녁 7시쯤이 되자, 현지 경찰이 기자들은 장례식장에서 다 나가주라고 하더군요.
이유는 잘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제가 유가족을 조금이라도 더 취재하려고 나가지 않고 버텼는데, 현지 경찰이 어떻게 대응한 줄 압니까?
자신이 가지고 있던 수갑을 꺼내더니, 공무집행 방해라며 저를 그 자리에서 체포하려고 하더군요.
그 자리에서 사정사정 이야기를 하고 간신히 빠져나오기는 했습니다만, 휴...
우리나라 경찰은 어떤가요? 한가지 예를 들어볼까요?
2005년에는 농민 한분이 격렬한 시위도중에 진압경찰에 맞아 사망하면서 경찰청장이 옷을 벗었습니다. 당시 경찰청장은 폭력시위를 벌인 농민들에게도 책임이 있고, 경찰이 정당하게 폭력시위를 진압하다 생긴 일인데 왜 물러나야 하냐며 버텼지만, 여론의 뭇매를 감당하지 못하고 옷을 벗었습니다.
그런데 지난해에는 반대의 일이 일어났습니다.
경찰이 농민들의 폭력시위를 제대로 진압하지 못하자, 경찰은 뭐하냐는 욕을 잔뜩 먹었습니다.
어디다 장단을 맞춰야할지, 경찰도 난감할 겁니다.
경찰의 공권력 행사와 관련해, 우리사회는 아직도 과도기에 있다고 봐야할 것 같습니다.
어디까지가 정당하고 어디까지가 과잉인지, 객관적이고 구체적인 기준이 없습니다.
그때그때 다르고, 여론에 따라 틀려집니다.
경찰 공권력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정하는 것도, 민주사회, 법치사회로 가기 위한 하나의 과제일 것입니다.
동영상 기사
동영상 기사
동영상 기사
동영상 기사
동영상 기사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