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고 (産苦)
그것은 진통이었다.
남북의 철마가 철조망을 뚫고 반도를 내달리기까지 고통과 기다림, 설렘의 연속이었다.
열차 시험운행에 필요한 군사보장이라는 것을 취재하려 판문점 군사분계선을 넘나들며 '남분북주(南奔北走)'했었다.
그리고, 합의문이 나오기를 기다리며 국방부 기자실에서 밤을 지샜다.
마치 새 생명이 태어나기를 기다리며 밤을 지새듯.
군사보장합의서라는 것은 참 각박하기도 했다.
경의선과 동해선이 지나가는 비무장지대의 군사분계선을 딱 10미터씩 열기로 했다.
2007년 5월 17일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다.
행여 늦기라도 한다면 통문은 닫혀버리고 만다.
군사보장이 유효한 건 이날 하루 뿐이다.
열차 시험운행이 있기까지 지난 며칠을 되새기며 16일 저녁 동(東)으로 향했다.
내일이면 종일 생방송을 해야하니 전날 밤에는 휴전선 아래 최북단 제진역 가까운 어딘가에 도착해 있어야 했다.
거진의 허름한 여관에서 하룻밤을 묵고 일찌감치 7번국도를 내달렸다.
잠시 상념이 짙푸른 동해 바닷물에 빠져있는 사이 민통선에 이르렀다.
민통선은 민간인 출입 통제선. 미리 출입허가를 받아두어야 했다.
민통선을 지나 통일전망대 쪽으로 내달리자 왼쪽으로 마침내 제진역이다.
역사(歷史)의 현장인 역사(驛舍)다.
그런데, 날씨가 좋지 않다. 하늘이 시샘이라도 하는 것일까?
몰아치는 비바람에 몸을 가누기가 불편했다.
'이렇게 쏟아지다가 선로가 물에 잠기기라도 한다면...'
걱정이 앞섰다. 바람이 워낙 거세 생방송도 어려울 것 같았다.
하나의 생명을 탄생시키는 것이 쉽지만은 않은 일이었다.
기적 (汽笛)
오전 11시 30분.
서쪽 문산역에서는 경의선 열차가 힘찬 기적을 울리며 북으로 출발했다.
아련한 기억 속의 문산역이다. 어렸을 적 파주의 외갓댁에 가려 방학마다 경의선 열차를 탔었다. 문산역이 늘 종착역이었다.
'부산 가는 기차는 경부선, 춘천 가는 기차는 경춘선인데 문산 가는 기차는 왜 경의선일까, 경문선도 아니고?'
그런 철 없는 의문은 자라나면서, 분단의 현실을 깨달으면서 풀렸다.
그리고, 이날 그런 경의선 열차가 문산을 출발해 북을 향한 것이다.
비록 신의주가 아니라 개성까지지만 말이다.
문산역과 도라산역도 바쁘지만 제진역이 분주하다.
하늘도 시샘을 접었는지 비바람이 잦아들고 간간이 햇살까지 비친다.
'반~갑~습~니다, 반~갑~습~니다~'
고적대의 신명나는 연주소리가 신바람을 타고 SBS 스튜디오까지 들려온다.
문산역에서 기적이 울릴 무렵 휴전선 너머 금강산역에서도 기적이 울렸을 것이다.
동해선 열차는 금강산역을 출발해 남쪽의 이곳 제진역까지 오게끔 되어 있었다.
그러나, 기차가 제때 떠났는지 볼 수가 없으니...
"금강산 역에서 생중계를 해드릴 수 없어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생방송을 통해 답답함과 안타까움을 토로하는 사이, 금강산역을 떠난 동해선 열차는 삼일포와 감호역을 거쳐 비무장지대 북방한계선을 지나 남으로 남으로 내달리고 있을 것이었다.
기다림의 초조함이 제진역 구내를 가득 메울 무렵, 드디어 동해선 열차의 모습이 707 OP (관측소)와 비무장지대에 나가있는 공동취재단의 카메라에 잡혔다.
경의선과는 거꾸로 남으로 군사분계선을 뚫고 내려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제진역 플랫폼에서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도로, 직항로에 이어 분단 반세기 57년만에 또 하나의 생명줄이 이어진 것이었다.
생방송 마이크를 넘겨받은 SBS 제진 스튜디오가 바빠졌다.
현지 앵커를 맡은 양만희 기자와 호흡을 맞추며 북측 열차 도착의 감격을 생생히 전하다보니 기자 또한 감격이 북받쳤다.
섭섭
이호철 소설가를 스튜디오로 모시는 일은 막내 권기봉 기자의 몫이었다.
기자는 사흘 전 동해선 탑승객 명단에서 그의 이름을 발견했고, 전화를 걸어 출연 약속을 받았다.
진보와 보수를 떠나 6.25를 몸소 겪은 '분단작가'로서 감회가 남다를 것이었다.
또 비록 열차는 고향인 원산까지 못 가지만 고향을 향해서 달릴 수라도 있으니 내심 경의선보다는 동해선을 원했을 것이었다.
소감을 묻는데, 그는 원산에서 고성까지 3백리가 옛부터 아름다운 곳으로 이름이 나 있다며 감격스러워했다.
원산에서 갈마, 배화, 안변, 석봉, 자산, 흑곡, 패천, 고전... 옛 동해선의 역이름을 줄줄 외웠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서운함에 감격은 반감된 모양이었다.
열차 시험운행이 지나치게 행사화되고 자연스럽지 못했다는 것이다.
"속도를 더해서 평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편편하게 참여할 수 있기를 바란다"말로 섭섭함을 나타냈고, 이는 들떠있는 기자에게도 따끔한 충고로 다가왔다.
소망
방송이 잠시 중단된 틈을 타 플랫폼으로 달려갔다.
북에서 내려온 열차는 어떻게 생겼나, 기관사나 승무원들은 무슨 말을 하려나 알고 싶은 게 많았다.
기념 촬영도 놓칠 수 없었다.
제진역 구내를 뛰어다니는데 벌써 시간은 저만치 가 있었다.
열차는 다시 북으로 떠날 것이었고, 그 아쉬움을 생생히 전하는 것 또한 방송기자의 몫이었다.
고적대가 '우리의 소원은 통일'과 '고향의 봄'을 연주하며 이별의 시간을 예고하는 사이 제진역 플랫폼은 환송 인파로 가득 찼다.
그리고 북녘에서 온 열차는 남녘 땅에서 반나절도 채 머물지 못하고 시간에 쫓기듯 다시 기적을 울려댔다.
비무장지대의 통문이 닫히기 전 약속된 시간에 군사분계선을 넘어야 했다.
서쪽의 경의선도 개성에서 이별의 기적을 울리고 있을 것이었다.
떠나는 열차의 뒷모습은 어느새 가시권을 벗어났다.
남북 열차운행이 더 이상 뉴스가 아닐 날은 언제나 올까?
그 때 기자는 두 딸아이와 함께 여행을 떠나리라!
'밤늦게 청량리역을 출발해 정동진에서 일출을 보고 동해선 열차로 갈아타야지.
제진역에 도착해 2007년 5월 17일을 떠올리며 아침식사를 하겠지.
그리고 원산과 청진, 나진을 지나 시베리아횡단열차(TSR)를 탈 것이다.
돌아오는 길은 경의선이 좋겠지?
중국횡단열차(TCR)을 타고 단둥과 신의주를 지나 평양에서 점심식사를 하겠지.
그리고 개성과 도라산, 문산을 거쳐 집으로 오면 어떨까?'
행복한 상상에서 깨어나보니 벌써 한바탕 잔치는 끝나 있었다.
눈 앞에 서 있는 것은 다시 부딪쳐야 할 현실이었다.
7월 장성급회담을 취재하며 또 밤을 지새야 할지 모르겠다.
제진역에서 강릉역까지 동해선 철길은 언제나 놓일까?
철책선 통문이 닫히지 않도록 항구적인 군사보장을 해낼 수 있을까?
산고 끝에 열차 시험운행이라는 신생아를 탄생시킨 주역에게 축하와 찬사를 보낸다.
튼튼히 자라나 분단의 철조망을 뚫고 두만강과 압록강을 건너 저 넓은 유라시아 대륙을 향해 힘차게 달려가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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