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례적으로 노동절인 화요일에 개봉한 [스파이더맨3]의 돌풍이 거셉니다. 전국 615개 상영관에서 개봉 하루만에 50만 2천명의 관객을 동원했습니다. 개봉 첫날 신기록이었던 작년 [괴물]의 45만명 기록을 깼습니다. 대다수 직장인들이 쉬는 반 휴일 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폭발력이 두려울 정도로 강하군요. 올해 들어 볼만한 영화가 별로 없었다는 점, 다시 말하면 '볼만한 영화'에 대한 관객들의 갈증이 컸던 것도 원인이 될 것 같습니다.
이번 주말은 어린이날이 있어 극장가는 더욱 붐빌 것으로 보이는데 작년 [괴물]때와 마찬가지로 '싹쓸이' 논란이 나오고 있습니다. 극장측은 '우리는 뭐 땅파서 장사하냐? 한푼이라도 더 벌려면 손님 많이 드는 영화 더 많이 걸고, 안 드는 영화 내리는게 뭐가 문제냐'하고 배급사는 '극장들마다 프린트 한 벌이라도 더 달라고 아우성인데 어쩔 수 없다'는 것이고... 이런 가운데 먼저 개봉했거나 함께 개봉한 영화들은 우수수 떨어져 나가 관객과 접촉할 기회를 차단당하는 피해를 입게 됩니다. 관객이 원하는 영화, 재미있는 영화 걸고 보는데 무슨 상관이냐면 할말 없지만 문화상품의 특성인 '다양성'을 확보해 나가는데 걸림돌로 작용할 우려가 있습니다.
스파이더맨3
정의의 스파이더맨이자 타블로이드 신문의 말단 비정규직 사진기자 피터 파커, 문도 제대로 열리지 않는 허름한 아파트에 살지만 스파이더맨은 이제 뉴욕 시민의 사랑스런 영웅으로 확고하게 자리잡았고 피터도 의젓하게 받아들이며 영웅이 받는 환호와 찬사를 즐기기까지 합니다. 스파이더맨의 영원한 연인 메리는 뮤지컬 가수로 브로드웨이에 데뷔하지만 뛰어난 재능을 보여주지 못하고 좌절합니다. 피터는 메리의 이런 복잡한 심사를 헤아려주지 못하고 철부지처럼 청혼할 꿈에만 부풀어 있으니 서로 코드가 안맞아 심각한 위기에 봉착합니다. 그러는 사이 피터는 외계에서 온 정체불명의 검은색 끈끈이(심비오트)에 감염되는데 이 물체는 스파이더맨을 블랙 스파이더맨으로 업그레이드 시키며 능력을 몇곱으로 확대해 주지만 독선과 교만에 빠지고 폭력성을 드러내는 부작용을 함께 안겨줍니다.
스파이더맨이 맞서 싸우는 악의 세력은 더 강력해졌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다양해졌지만 강력해지지는 않았습니다. 악당으로서 보여주는 악의 카리스마가 1편이나 2편에 비해 한참 떨어집니다. 뉴 고블린으로 등장하는 친구이자 연적인 해리는 단기기억상실증에 걸렸다가 회복되며 우왕좌왕하고 피터의 삼촌을 죽인 살인범은 탈주범으로 ?i기다가 실험실에 잘못 빠져 샌드맨으로 변신해 무시무시한 위력을 발휘하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꼬리를 내립니다. 신문사에 경쟁 상대로 들어온 에디는 막판에 끈끈이에 감염돼 흉측한 유사 스파이더맨으로 변신합니다.
할리우드 사상 최대의 제작비 3억 달러를 들인 영화답게 비주얼은 시종일관 압도적입니다. 크레인에 메달린 H빔이 고층빌딩을 난도질하는 첫 액션장면에서부터 샌드맨이 변신하는 장면이나 지하철 선로 위에서의 대결, 날아다니는 보드를 타고 다니는 뉴 고블린과 스파이더맨의 공중 결투 등 지루할만하면 등장하는 액션은 상상한 것을 실제로 만들어내는 자본의 무한한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합니다. 모래인간이 탄생하는 장면의 컴퓨터 그래픽은 혀를 내두르게 합니다. 비주얼의 매력은 2시간 20분 가까이 되는 상영시간이 그다지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게 하지만 이야기 전개와 캐릭터의 허술함은 어쩔 수 없는 약점인지라 감안하고 보셔야 합니다.
탈주범이 철조망 하나 달랑 넘어 도망가다가 거대한 실험 장치에 빠지는데, 정확한 설명은 없지만 국가적으로 중요한 연구 시설인데도 경비와 보안은 허술하기 짝이 없고, 실험 개시 시점에 이상이 발견됐는데 그냥 진행하는 대충대충 정신도 이해하기 어렵더군요. 거기 빠뜨려서 샌드맨으로 만들려는 국가기관의 거대 음모(?)가 아닐까 생각도 해봤습니다. 클라이막스 대결의 결과가 너무 밋밋하게 끝나버리는 것도 아쉽습니다. 가장 인상적인 캐릭터는 주인공이나 악당 괴물들이 아니라 피터의 구애작전을 도와주는 프렌치 레스토랑의 프랑스인 지배인(브루스 캠벨)입니다. 억센 프랑스 억양과 우스꽝스런 코믹 연기로 액션을 제외하고는 가장 활기찬 장면을 만듭니다. (브루스 캠벨은 샘 레이미 감독의 대표작 이블 데드 주인공으로 나왔는데 그 인연으로 1편부터 3편까지 잠깐씩 카메오 출연을 하고 있습니다.) 검은 끈끈이 때문에 수줍은 성격을 벗어버린 피터가 길거리에서 여성들에게 작업을 걸거나 클럽에서 춤을 추는 장면도 나름 귀엽습니다. 청춘영화, 성장영화로도 읽힐 수 있는 이 블록버스터는 미국에서 가장 대중적인 아이콘인 스파이더맨을 머나 먼 한국 젊은이들에게도 친숙한 영웅으로 안착시키고 있습니다.
아들
강우석 감독의 과감한 맞불 전략으로 [스파이더맨3]에 대항마로 개봉된 한국영화입니다. TV시트콤, 연극에서 시작해 영화로 활동무대를 넓힌 재주꾼이자 이야기꾼 장진 감독이 4,50억대의 과중한 제작비 부담에 시달리며 만든 [거룩한 계보]뒤에 힘빼고 즐기며 저예산으로 만든 소품같은 영화입니다. 충무로에서 출연료라면 1,2위를 다투는 차승원씨가 평소의 절반 정도의 출연료를 받았다고 합니다. 거룩한 계보 개봉 즈음 만났을때 장 감독은 [아들] 의 아이디어가 번뜩 생각났고 그 자리에서 줄거리를 쓰고 시나리오도 단 며칠만에 후다닥 써버렸다고 했습니다.
강도 살인을 저지르고 무기수로 복역중인 아버지(차승원)가 15년 만에 귀휴를 얻어 갓난 아기때 헤어졌다가 고등학생으로 커버린 아들을 만나는 단 하루를 그리고 있습니다. 만나러 가는 설레임, 처음에는 어색했다가 점차 마음의 문을 여는 아버지와 아들의 심리를 섬세한 나레이션으로 묘사합니다. 한없이 귀엽기만한 아기의 손이 나오는 장면이 인상적이고 장거리 여행을 떠나는 기러기떼 가족에 정재영, 공효진 등 배우들이 목소리로 우정출연한 부분은 의외의 웃음을 선사합니다.
한밤중에 교도관 몰래 부자가 집밖으로 나가 밤거리를 뛰어가는 장면은 적절한 음악과 어우러지며 묘한 카타르시스의 감동을 안겨줍니다. 숱한 영화에 나오는 달리기 장면인데 이 영화처럼 이렇게 큰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영화는 본 적이 없습니다. 목욕탕에서 잠수한 뒤 판타지로 이어지는 장면의 환상성도 좋습니다. 지나치게 많은 나레이션은 관객이 절제와 침묵을 통해 영화를 느끼는 미덕을 빼앗아가는 단점이 있고, 막판 반전은 그런대로 괜찮다거나 적절하지 않다는 격렬한 찬반논란이 있지만 어린이날과 어버이날이 있는 가정의 달에 가족의 의미에 대해 한번 생각하게 해주는 푸근한 영화입니다. 재능많은 장진 감독, 재능에 걸맞는 관록과 경륜을 쌓아가는 숙성의 기간을 잘 거치기를 바랍니다.
이대근, 이댁은
영화배우 이대근은 8,90년대 한국 영화의 커다란 상징이었습니다. 수많은 액션 영화와 [뽕],[변강쇠]같은 코믹 사극에서 정력의 화신 내지는 상징으로 ‘남성성’을 대표했었지요. 90년대 쯤인가 배우 잔뜩 주고 ‘마님!’하는 이대근 흉내를 내는데 어찌나 똑같던지 박장대소를 한 기억이 납니다
젊은날 악극단 따라다니며 가정을 내팽개치다시피 살아온 이대근은 나이들어 2남 1녀 자식들은 대처로 떠나보내고 시골에서 도장파는 일을??일을 맞아 큰아들 부부와 딸 내외가 함께 모여 제사를 지내는데 가장 귀여워해서 다른 형제들의 마음에 상처까지 안겨주게 만든 귀염둥이 막내아들은 가출해서 연락이 끊긴 상태고 이대근은 막내 아들을 찾기 위해 심부름 센터에 부탁하는데 마침 아내의 제삿날에 행방이 파악됐다는 연락을 받습니다.
이대근 선생의 연기는 관록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안정감 있고 이두일, 정경순, 박원상, 박철민, 안선영 등 자식역할로 나오는 배우들도 이름값을 합니다. 그러나 가족의 의미라는 영화의 주제가 효과적으로 전달되지 못해 관객들의 공감을 얻기가 힘듭니다. 이 영화에도 역시 막판 반전이 존재하는데 전반부에 그에 대한 어떤 암시도 없어 앞부분은을 볼때는 좀 이상하고 반전과 결말에서는 생뚱맞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이밖에 남장 여자의 축구도전기를 그린 [쉬즈 더 맨]과 [수]를 선보였던 재일동포 최양일 감독의 초기 대표작인 [달은 어디에 떠있는가], 파트리스 르콩트 감독의 [마이 베스트 프렌드], 불면증 몽상가를 소재로 한 영국영화 [캐쉬백]등이 개봉됩니다. 어린이날, 어버이날이 줄줄이 이어지는 5월 초반이네요. 의미있고 좋은 계획으로 부모 역할, 자식 역할 차질없이 잘 수행하시면서 좋은 주말 보내시기 바랍니다. 저는 어린이날 어딜 가야할지 뭘 해야 할지 아직 결정하지 못하고 고민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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